이스라엘, 가자지구 맹폭…글로벌 경제 엎친데 덮치나
[Global Issue] ‘세계의 화약고’ 중동 다시 불 붙었다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스라엘이 지난해 12월27일(현지시간) 강경 무장단체인 하마스가 지배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한 것이다.

이번 공습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를 밀어올리는 등 위기 속의 글로벌 경제에도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우려된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30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나흘째 이어지며 사망자는 345~364명, 부상자도 700~1550명에 달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처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41년 만이다.

지난달 9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거점을 둔 무장단체 하마스와 6개월간 휴전 종료 이후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80여발의 로켓포를 발사하면서 고조된 위기가 결국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대규모 공습을 단행한 배경엔 올 2월로 예정된 총선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도 성향의 카디마당과 노동당이 이끄는 현 연립정부의 지지율이 낮아 재집권이 불투명해지자 가자지구에 대한 '강공'으로 정치적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지적이다.

작전명 '캐스트 리드'(CAST LEAD)로 알려진 이번 공습은 27일 오전 11시 30분께 공군기지를 발진한 전투기 60대가 가자지구 남부지역을 강타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중·북부 지역으로 확대됐다.

공습은 경찰본부 등 하마스의 보안시설 50여곳이 주요 목표물이었고, 무장단체들의 로켓탄 진지 50여곳도 폭격의 대상이었다.

하마스 내무부는 가자지구의 모든 보안시설물이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28일에도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재개해 TV 방송국과 이슬람사원(모스크) 등을 폭격했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29일 하마스가 무기류를 반입해온 것으로 알려진 가자지구의 터널과 하마스 내무부 건물 등을 폭격했다.

하마스의 문화적 상징인 이슬람 대학에도 폭격이 가해졌다.

이스라엘은 공습을 시작한 27일 정오 이후 무려 300여 차례의 폭격을 단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면전을 선언한 뒤 탱크 수백대와 공수여단 등 중무장한 병력을 가자지구 외곽에 집결시키고 있는 이스라엘은 30일 가자지구와 인접한 지역을 '폐쇄 군사구역'으로 선언하고 언론의 취재 활동까지도 봉쇄했다.

지상군 투입을 위한 막바지 수순에 돌입한 모습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관련한 모든 건물을 폭파할 계획이라고 영국의 더 타임스는 전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로켓 공격도 이어졌다.

폭격이 시작된 27일 이후 30일까지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250발 이상의 로켓과 박격포 공격을 가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발생한 이스라엘인 사망자도 4명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 위기로 치닫는 양상이다.

예루살렘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은 곧 지상군이 투입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북부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공격에 대비해 비상령을 발동했다.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가자지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헤즈볼라 전사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비하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전투 태세에 돌입함에 따라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가자지구는 요르단강 서안과 함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속하는 곳으로 이스라엘 남부 해안도시들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다.

제1차 중동전쟁이 끝난 뒤 이집트로 넘어갔다가 1956년 2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재점령과 재반환을 거쳐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차지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건설했던 유태인 정착촌 21곳의 주민 8000여명을 2005년 8월 모두 이주시킨 뒤 그해 9월 12일 군 병력의 철수를 끝으로 38년간의 점령에 종지부를 찍었다.

1967년 당시 약 40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은 150만명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2007년 6월 하마스가 친서방 성향의 파타 계열의 보안군을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모든 국경을 봉쇄하고 하마스 체제의 고사작전에 들어가기도 했다.

가자지구 공습에 대한 이슬람권 국가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이란 파르스통신은 이란 '전투성직자연합(CCS)'이란 단체가 인터넷을 통해 가자지구에 파병할 전사들을 모집하는 데 1100명 이상이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예멘에서는 3만여명이 축구 경기장에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었고, 이집트에서는 8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열렸다.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성명을 통해 "모든 폭력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가자지구 내 모든 군사행동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30일 가자지구 공습 이후 세 번째로 발표한 성명에서 "지역 및 국제사회의 당사자들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폭력행위를 끝내야 하며 그렇게 된 이후에만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촉구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중재를 위해 긴급 전화통화를 갖고,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이 이날 파리에서 모임을 갖는 등 국제사회의 중재 움직임도 빨라졌다.

아랍연맹 소속 22개국 외무장관들은 28~29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가자지구 문제를 논의했다.

반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일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가 '하마스 해체'나 '가자지구 탈환'이 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자지구 탈환의 경우 엄청난 비용에 비해 실익이 거의 없는 데다 섣불리 '하마스 해체'라는 강수를 둘 경우 헤즈볼라의 전력을 얕잡아보고 레바논으로 진격했다가 역습을 허용한 2006년의 레바논 전쟁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군사작전을 통해 하마스의 위세를 꺾은 뒤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멈출 수 있는 '보다 진전된 휴전 협상'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국가안보연구소의 마크 헬러 선임연구원은 "지난 몇 년간 이스라엘에서는 '더 이상 누구도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며 이스라엘의 이번 군사 작전은 철저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아랍 산유국이 석유를 정치무기로 활용하거나 무력 충돌로 국제무역이 위축받을 경우 글로벌 경제에 '엎친데 덮친 격'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동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도 요동쳤다.

29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 원유(WTI) 2월물은 2.31달러(6.0%) 오른 배럴당 40.02달러에 거래됐다.

안전자산인 금값도 크게 치솟았다.

올 2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은 4.10달러(0.5%) 상승한 온스당 875.30달러로 마감됐다.

장중 한때 온스당 892달러까지 치솟으며 10월10일 이후 2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