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이카루스의 날개’가 아름다운 이유

[한준희 선생님의 재밌는 논술세상] ⑤ 논술이 어려워 포기하고 싶다고?
선아야,오늘 논술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네 편지를 받고 선생님도 힘들었구나.

논술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

그런데 알고 보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니?

어렵다고 지금 포기하면 다른 상황에서도 포기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지 않겠니?

비상(飛上)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새들이 날아오르는 순간을 보지 않았니?

거기에는 날기 위한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해.

힘들지만 그러한 반복적인 날갯짓이 비상을 만들어내잖아.

더불어 수없이 추락을 경험하기도 할 것이고.

추락하는 것도 최소한 비상에 대한 날갯짓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니?

오늘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이카루스의 날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볼게.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와 트로이젠의 왕의 딸 아이트라의 아들이었어.

여행 도중 우연히(하지만 신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이미 운명적으로) 아이트라와 하룻밤을 지낸 아이게우스는 장정 서넛이 들어도 들릴까 말까한 왕궁 객사의 섬돌 한 귀퉁이를 들고 그 밑에 가죽신 한 켤레와 칼 한 자루를 놓았지.

고구려 '유리왕' 이야기와 정말 흡사하지 않니?

그리고는 아이트라에게 은밀하게 당부했어.

아이가 자라거든 신표를 가지고 아버지를 찾게 하라고.

그 이후에 아테네로 돌아와 아이게우스와 해후하는 테세우스의 모험은 생략하기로 하자.

당시 아테네는 크레타섬의 미노스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는데 이 조공은 크레타섬에 있는 미노타우르스라는 괴물의 먹이를 위해 일곱 명의 소녀와 소년을 보내는 일이었어.

이 괴물은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다는 명공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갇혀 살았는데 이 미궁은 구조가 매우 교묘하여 일단 들어가면 다시는 탈출할 수 없었다고 해.

또 괴물은 미궁을 돌아다니며 이 안에 바쳐진 소녀와 소년들을 잡아먹고 살았어.

테세우스는 이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청해서 조공의 일원으로 크레타섬으로 갔어.

한편 미노스왕에게는 아름다운 아리아드네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테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거야.

정의와 모험에 가득 찬 멋진 남자와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공주라는 또 다른 이야기의 법칙이 적용되는 거지.

아리아드네는 결국 미궁을 건설한 다이달로스의 정보를 받아 칼과 실타래를 테세우스에게 주어 괴물을 죽이고 실타래를 이용해서 미궁을 빠져 나오게 하였어.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들의 사랑은 행복할 수가 없었어.

부모와 형제를 배신한 사랑이었기 때문이지.

문득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가 떠오르는구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조국과 부모를 배반하고 자명고(自鳴鼓)를 찢었다는.

어쨌든 테세우스는 일을 성공하고 그녀와 함께 아테네로 돌아오게 되었어.

돌아오는 도중 테세우스는 닉소스 섬에 잠시 머물렀는데 이 곳에서 그는 꿈에서 현신한 아테네 여신이 아리아드네를 섬에 두고 떠나라는 명령을 듣고 그녀를 섬에 홀로 버려둔 채 아테네로 돌아가 버렸어.

다이달로스는 솜씨가 대단한 발명가이며 건축 기술가였어.

다이달로스의 아들이 이카루스지.

이들은 자유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비행한 최초의 인간이야.

아테네 왕족 집안 출신의 다이달로스는 여신 아테네의 후원까지 더해져 기술자로서의 명성을 떨쳤지만,조카가 톱을 발명하여 더 유명해지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조카를 신전 위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여 버렸어.

이 죄로 그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크레타 섬으로 쫓겨 가게 되었지.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에게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낳은 황소의 머리가 달린 흉측스러운 아들,미노타우루스가 있었어.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그 미노타우루스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

그런데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 사람이 다이달로스였어.

다이달로스는 실타래에 대한 정보를 아리아드네에게 제공한 죄로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아들과 함께 미궁의 꼭대기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어.

감옥 속에서 다이달로스는 기술을 발휘하여 새의 깃털을 모아 큰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루스에게도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완성된 날개를 밀랍으로 몸에 붙이고 탈출을 감행했어.

"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야 한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기에 네 날개의 밀랍이 녹아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너무 낮게 날면 파도가 날개를 적실 거야."

그러나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것에 몰두해서 아버지의 충고를 잊어버렸어.

태양을 향해 높이 오르다가 밀랍이 녹아 바다에 추락하여 죽고 만 것이지.

선아야,왜 논술 이야기를 하면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이카루스의 날개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까?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는 말은 아주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나 해결을 도와주는 물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결국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성취했어.

하지만 이카루스의 추락은 흔히 인간 욕망의 무모함을 경계하는 데 인용되지.

사람들이 작은 재주나 능력을 믿고 오만하게 굴거나 자만심 때문에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할 때 이카루스의 추락을 말하곤 했어.

그의 추락은 날개가 잘못된 탓이 아니라 통제되지 못한 과욕 때문이고,기술적인 결함이라기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문제라는 것이지.

통제되지 못한 욕망은 결국 비극을 가져온다는 거지.

결국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외부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면,다시 말해 해결의 열쇠를 타인이 제공한 것이라면 '이카루스의 날개'는 자신의 판단에 의한 것,다시 말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

과연 이카루스의 추락이 절망적이기만 한 것일까?

오히려 이카루스는 인간이 이룰 수 없다고 포기한 비상의 꿈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인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결국 이카루스의 날개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인간들의 꿈과 이상을 펼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두 개씩 품고 있는 비상에의 갈망,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현재와는 다른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열정,그런 것들이 이카루스의 날개로 펼쳐진 것이 아닐까?

이카루스의 날갯짓은 비록 무모해 보이긴 하지만 자기 내면의 열정에 따라 삶의 방향을 능동적으로 결정한 것이었기에 황홀하고 아름다운 거지.

선아야,'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이 있어.

날갯짓을 해 본 사람만이 추락도 할 수 있겠지.

많은 사람들이 '추락하는 것'만 보고 두려워하지만 사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날개'일 거야.

물론 추락마저도 아름답지 않냐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한번 생각해 봐.

우리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있지 않으며,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고 싶어하지 않아.

우리 몸에 있는 30조 개의 세포가 3년마다 새롭게 탈바꿈한다는 사실은 우리 존재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도전하도록 규정지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거야.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살아 있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날갯짓이 아닐까.

태양을 향한 날갯짓,서투르지만 서서히 날아가는 훤한 날갯짓.

이카루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지.

어떠니? 이카루스가 무척 매력적이지 않니?

삶에 대응할 때 가능하면 이카루스가 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이카루스가 지닌 행위의 능동성과 다소의 무모함,그리고 사고의 창의성 말이야.

추락이 무서워 자신만이 지닌 사고의 자유로움을 드러내지 못하고 경직되어 버린다면 우린 영원히 비상의 꿈을 꿀 수 없는 거야.

네가 논술이 어려운 건 그만큼 네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야.

생각의 문을 활짝 열어보렴.

그러면 신기하게도 논술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비상하는 이카루스와 논술을 준비하는 우리가 차이가 있다면 우린 많은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니?

많은 연습을 통해 추락의 가능성을 줄일 수만 있다면 창의성이 단순한 무모함이 되지는 않을 거야.

논술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 도전적인 발걸음이라고 난 믿어.

논술은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야.

텍스트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석하고 주어진 문제에 대한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배움을 위한 모든 행위가 그렇겠지만 최소한 논술을 준비할 때만이라도 우린 마음을 완전히 열 필요가 있어.

논술을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스승은 논술을 잘 쓸 수 있도록 글 쓰는 기교를 가르치는 논술지도교사가 아니야.

바로 너 자신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아니라 '이카루스의 날개'가 필요한 거지.

학문의 세계에서 남을 쫓는 자는 영원히 남을 뒤쫓게만 된다고 해.

아인슈타인이 보통 사람처럼 뉴턴의 고전역학이 지닌 절대성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면 상대성 이론이 나올 수 있었을까?

난 믿어.

21세기를 이끌 수 있는 인재는 이카루스와 같이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사고에서 탄생한다는 것 말이야.

---햇살 고운 겨울날,논술이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다는 선아에게,선생님이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