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총 노동비용 시간당 69弗…국내 車업계 ‘타산지석’삼아야
[Focus] 천국을 만들려다 지옥을 만든 GM 노동조합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3' 자동차회사들이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9월 금융시장 경색과 곧 이은 경기 침체로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이에 미국 정부는 자동차 구제금융 법안을 만들어 빅3를 지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지난 11일 상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현재 미국 정부는 이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 놓은 다른 구제금융 자금을 활용해 빅3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구제금융 법안은 왜 미 상원에서 부결됐을까?

핵심 이유는 빅3의 종업원을 주축으로 한 미 자동차노동조합인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임금 삭감을 거부했던 것이었다.

미 공화당 의원들은 정부가 돈을 지원해 주는 대신 내년 중 빅3 종업원의 임금과 복지를 미국에 있는 일본 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는 종업원 수준으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UAW는 올해는 안 되고 오는 2011년부터 임금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주장하자,미 상원의 공화당 의원들이 즉각 구제금융을 부결시킨 것이다.

⊙ 파멸 자초한 과잉혜택 중독증

물론 한 세기 동안 번영을 구가하던 미국 자동차산업이 몰락한 모든 책임이 노조에 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연료효율이 낮은 대형차에 집착하는 등 경영진의 그릇된 판단과 방만한 경영이 기본적 원인을 제공한 것은 맞다.

하지만 강성 노조가 몰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직원은 물론 퇴직자와 그 가족에게까지 연금·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토록 경영진을 몰아붙인 강성 노조의 고비용 구조가 경쟁력을 갉아먹었다는 지적이다.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최근 빅3가 설령 정부로부터 구제금융 지원을 받더라도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재 고임금 구조를 갖고서는 구제금융을 아무리 줘봤자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GM과 도요타자동차 미국 공장에서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각각 29.78달러와 30달러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연금과 의료비를 포함한 1인당 총 노동비용은 GM이 69달러,도요타가 48달러에 달한다.

빅3는 퇴직자에게도 회사가 의료비를 지원하고,해고자에 대해서도 실직 기간 동안 임금을 주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한마디로 강성노조로 인한 '과잉 혜택 중독증'이 자승자박이 돼 회사의 몰락을 부추긴 것이다.

⊙ 경영 화두가 된 '노조 경제학'

노조의 임금 삭감 반대로 자동차 구제금융 법안이 부결되고 빅3의 위기가 가중되면서 '노조 경제학'이 새삼 국내 산업계의 경영 화두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계도 빅3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빅3 파산 위기는 노조 문제가 기업을 어떻게 죽이고 살리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빅3의 위기를 교훈으로 노사 관계를 보다 생산적 협력적인 방향으로 재구축하고 생산성 향상 한도 내에서 임금 인상이 이뤄지는 노사 관행을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노동 비용'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차별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세계 일류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현대중공업 등은 모두 무(無)노조 또는 안정된 노사관계를 통해 회사와 노조가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포스코가 단적인 예다.

포스코의 영업이익률은 2006년 20.5%로 일본 신일본제철(14.1%),미국 US스틸(10.7%),중국 바오산강철(13.2%) 등 경쟁업체보다 월등히 높다.

반면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5.7%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근 세계 철강산업이 글로벌 철강제품 감산 열풍에서 유일하게 예외가 될 정도로 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바탕으로 기술개발과 품질 개선에 나선 것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국내 차 업계,"남 얘기 아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산업으로 눈을 돌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 수준의 노사관계와 이로 인한 낮은 생산 유연성이 지속되면 국내 자동차산업도 빅3의 전철을 밟을 것이 확실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럽 일본 등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한 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함께 만들고 근로자를 다른 조립라인에 배치해 생산효율을 극대화한 지 오래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회사들은 생산 유연성이 떨어지고 자연적으로 생산성은 낮다.

현대차는 생산량 조정,신차종 양산,시간당 생산대수 결정 등 핵심 분야가 모두 노사 사전협의 사항이다.

지난 2006년 기준으로 현대차와 기아차의 '조립생산성'(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총투입시간)은 각각 31.1시간과 37.5시간이었다.

도요타(22.1시간) 혼다(21.1시간) 등 일본업체는 물론 GM(22.1시간) 포드(23.2시간)보다도 생산성이 월등히 낮은 것이다.

1인당 생산대수도 그렇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1인당 생산대수는 29.6대와 34.9대로 도요타(68.9대)의 42.9%와 50.6%에 불과하다.

국내 자동차회사의 임금 비중은 경쟁업체보다 더 높다.

현대차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2005년 11.0%로 두 자릿수대에 진입해 2006년에는 11.4%로 높아졌다.

하지만 도요타(2006년 7.25%) 혼다(8.02%) 등은 아직도 한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기아자동차는 대형차인 카니발 생산라인에서 소형차인 프라이드를 함께 생산하는 혼류생산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도 단종된 에쿠스 라인의 남는 인력을 다른 공장에 배치하는 등 노사가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1950년대 도요타,1990년대 폭스바겐은 노사 대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자동차회사로 도약했다"며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몰락도 노사가 얼마나 서로 협력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상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