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기자 코너] 조2중을 떠나며… 조선족 학생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을 일컫는 애니깽,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지칭하는 라이따이한,러시아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 조선족,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등 독립국가연합 내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를 뜻하는 고려인….

이들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핏줄'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 사는 우리 핏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두 번의 도전 끝에 행정안전부 KADO의 '한민족정보화지원단-중국'에 선발됐다.

처음 '한민족정보화지원단'에 선발됐을 때 나의 머릿속은 많은 생각들로 복잡하게 얽혔다.

1년을 휴학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 등 불안들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한 달 반의 준비 과정을 마쳤고 9월27일 하얼빈 조선족제2중학교로 떠났다.

처음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 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 눈물을 찔끔 흘렸었다.

내가 제대로 교편을 잡을 수 있을까,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등등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마중 나오신 이 선생님의 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길에서도 걱정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학교에 도착해 학생들을 보는 순간 내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 학예회가 있어 학생들은 학예회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어디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것은 대장금 OST '오나라'였다.

나는 어눌한 발음으로 그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 때문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무엇보다 고마웠던 것은 나를 반기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보고 열정이 샘솟았다.

한국의 모든 것을 알리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곧 나에겐 큰 난제들이 주어졌다.

몇 명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여 속상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학생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중국 동북삼성(東北三省)에서 두 번째로 큰 하얼빈에는 조선족 학생들을 위한 학교인 조선 제1중학교와,조선 제2중학교가 있다.

내가 있는 조선 제2중학교는 직업고중으로(초중은 직업학교가 아니다),조선족 학생보다는 한족 학생이 훨씬 많다.

지금은 초중(중학교),고중(고등학교)을 합쳐서 조선족 학생이 30명이 채 되지 않지만 그중 부모님과 같이 사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부모님은 다들 한국에서 돈을 버느라 할아버지나 할머니 손에서 길러지고 있다.

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처음 몇몇 학생들은 나를 모른체 했고 인사도 건성으로 하곤 했다.

나중에 이곳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조선족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 조선족 학생들이 '한국은 부모님을 빼앗아간 나라'로 인식하고 한국을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족 학생들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기껏해야 영하 20도를 웃도는 추위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옛날 영하 50도나 되는 그 추위를 감내하면서까지 중국에 와서 살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때 이주한 분들이 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는데 손자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하고 다니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민족만 고집할 시기는 지났지만 조선족 학생들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한족,몽골족 학생들과 차별을 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내심 조선족 학생들이 잘 되기를 바랐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위해 일부러 학생들과 같은 기숙사를 썼고 자습시간에 참여해 학생들에게 한국어 지도를 해주었다.

고환율 때문에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지만 학생들과 학교를 위해 투자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시계 3개를 구입해 학교 로비에 걸어 두었다.

그 시계는 예쁜 그림이 있고 은은한 빛이 나는데 공부하고 학생들이 돌아갈 때 어두워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틈이 날 때마다 대회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사 온 선물을 주고,어려운 학생들에게 다른 친구들 몰래 밥을 사주곤 했다.

그렇게 노력을 하니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마음이 굳게 닫혀 있던 학생들과 정이 너무 많이 들어 정을 떼기가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몇몇 학생들은 나에게 언니,누나라고 부른다.

남몰래 나에게 편지도 보내고 조그마한 선물도 주었다.

내게 이번 조2중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말해보라 한다면 글쎄,잃은 것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얻은 것이 그 잃은 것에 견줄 수나 있겠는가.

며칠 후 나는 정든 조2중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지만 그 만남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떠나는 것이 솔직히 두렵다.

하지만 내가 가르친 조선족 학생들이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 중국과 한국을 잇는 동량지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만약 내년 '한민족정보화지원단'에 지원하고 싶은 대학생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지원하길 바란다.

중국어를 못하고 IT 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괜찮다.

나는 내년에 더 훌륭한 선생님이 올 것이라고 한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학생들을 위한 사랑이 가득하다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구슬 생글기자(충북대 경영정보학과 1년) happy278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