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서머·대마불사·스와프 삼국지… 촌철살인 ‘입담’ 무성

[Make Money] 고통받는 주식 시장… 자조섞인 ‘말 잔치’만
주식시장은 밑도 끝도 없는 루머와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말들이 풍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더라도 투자자들이 그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고, 이에 따라 주가가 출렁일 수 있기 때문에 '말의 성찬'이 벌어진다.

또 주식시장을 둘러싼 경제환경과 각 종목을 분석하는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들도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색적인 표현을 애용하고 있다.

최근 증시에서 관심을 모은 말과 표현을 알아보자.

⊙ 이달 증시 반등은 '인디언 서머'

코스피지수가 12월 초 나흘 연속 하락해 장중 1000선까지 내줬지만, 지난 12일 1100선을 회복하면서 반등하자 한 투자자문사 사장은 이를 가리켜 '인디언 서머'라고 지적했다.

인디언 서머란 가을 추위로 넘어가기 전 찾아오는 '반짝 늦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번 반등이 추세적인 상승이 아니라 앞으로 길게 이어질지 모를 경기침체 이전에 잠시 찾아온 기술적 반등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내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정책 방향에 대해선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분석이 등장했다.

씨티그룹 등에 대한 미국 정부의 유동성 지원을 '큰 말은 살 길이 생겨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풀이한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씨티그룹의 일부 사업부문을 인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을 때는 미국의 유명 TV드라마인 '섹스 앤 더 시티'를 연상시키는 '삭스 앤 더 씨티'(Sachs & the City)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외환시장과 관련해서는 '스와프(swap) 삼국지'란 표현이 등장했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에 이어 한·중·일 간 통화스와프 규모가 확대될 것이란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펀드에 투자해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답답한 심정은 '추불과 환매 사이'로 표현됐다.

적립금을 추가 불입해 단가 낮추기에 나설 것인지,아니면 일정 부분 손실을 감안하고서라도 반등기에 환매할지를 두고 고민하는 투자자들의 모습이 담긴 말이다.

⊙ 증권사 보고서에 담긴 이색 표현들

증권사 보고서에도 톡톡 튀는 표현들이 잇따랐다.

증시 전망과 관련해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연상시키는 '주식 자연선택설'(미래에셋증권)이 등장했다.

부모의 형질이 자손에게 물려질 때 주위환경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는 형질이 결국 선택돼 살아남는다는 '자연선택설'처럼 채권이나 다른 자산보다 주식의 매력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자산과의 경쟁에서 이겨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란 주장이다.

불황기에 경기방어주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인동초'(忍冬草)나 '안전지대'같은 말들이 쏟아진 것도 눈에 띈다.

또 소비침체에도 주가가 오르는 종목은 있다는 뜻으로 '햄과 자전거에 길을 묻다'(대우증권),경영실적이 안정적이라는 의미에서 '속이 꽉찬 참붕어 싸만코같다'(빙그레·굿모닝신한증권)는 표현도 등장했다.

디스플레이 업종이 지금은 고전 중이지만 내년 2분기 이후엔 나아질 것이라며 '지하실에도 볕들 날 있다'(대우증권)는 분석도 나왔다.

'과감한 말'을 앞세우며 종목 추천에 나선 애널리스트들도 눈길을 끌었다.

한화증권은 현대건설을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칭했다.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외쳤다는 이 탄생게는 '하늘아래 존엄한 존재'란 뜻이다.

건설업종에 대한 우려감이 크지만 올해 현대건설의 해외수주액이 61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업종 대표주로서의 매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부증권은 최근 주가가 오른 KTF를 추천하며 '하늘이 무섭지 않은 실적'이라고 표현했다.

또 '업종의 전화(轉禍)는 한섬에 위복(爲福)이라'(한섬·동부증권) '잠시 움츠리는 것은 멀리 뛰기 위한 것'(LG전자·키움증권) '속 편한 주식'(코리안리재보험·하나대투증권) '환율로 울었지만,환율로 웃으리라'(KPX화인케미칼·키움증권) 'IT수요 우려에 정면으로 맞설 거인'(삼성전자·NH투자증권) '빈곤 속의 풍요'(신세계·동부증권) '씽크 빅,넓게 생각하면 보이는 희망'(웅진씽크빅·LIG투자증권) '니치 프론티어,비싼 것은 제값을 한다'(삼성중공업·LIG투자증권) '불황에도 가치가 높아지는 명품 주식'(에스원·대우증권) 등이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 내년 증시를 전망하는 사자성어

애널리스트들은 직접적인 표현보다 의미를 더 함축적이고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어 사자성어를 즐겨 쓴다.

특히 내년 증시 전망을 사자성어로 표현한 사례가 잇달았다.

'과난성상'(過難成祥). 온갖 어려움을 거친 후에야 좋은 일이 이뤄진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하나대투증권이 내년 국내 증권시장을 전망하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경기침체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증시가 어렵겠지만 하반기부터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란 의미다.

HMC투자증권은 내년 증시를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표현했다.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뜻으로,올해 증시는 부진했지만 내년에는 하반기로 갈수록 주가가 힘을 얻을 것이란 메시지다.

삼성증권은 '땅을 말아 일으킬 것 같은 기세로 다시 온다'는 뜻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제시했다.

내년 하반기에는 'V'자형의 강한 반등장세가 가능하다는 전망에서다.

또 내년 은행업 전망은 '공사다망'(公社多忙)으로 표현됐다.

하나대투증권은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로 바쁘다는 의미의 '공사다망'(公私多忙)에서 '사'의 한자를 바꿔 공은 정부,사는 은행을 뜻하는 의미로 살짝 틀어 썼다.

내년에는 정부와 은행이 부실기업 정리와 손실 축소 등으로 바쁜 한 해를 보낼 것이란 전망을 담고 있다.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증권사가 처한 상황은 '사면초가'(四面楚歌·푸르덴셜투자증권)로 지적됐다.

한편 증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는 연·기금에 대해서는 '이중지련'(泥中之蓮·진흙땅 속에 핀 연꽃)이라는 사자성어(IBK투자증권)가 등장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