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교과 논술이 학교 수업 방식 ‘개혁의 열쇠’
「구운몽」이란 소설이 있다.
조선 숙종 때 남해 노도로 귀양을 떠난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한글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구운몽」은 고등학교 국어(상) 교과서에 실려 있다.
교과서 단원으로는 '대단원 5. 능동적인 의사소통'의 두 번째 소단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구운몽」이란 소설과 '능동적인 의사소통'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지금 현장에 있는 국어 교사들은 그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수업에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기본적인 교육과정에 충실한 수업이다.
이러한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해 현행 국어 교과서의 체제와 목표를 살펴본다.
현행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10학년 국어과 교육 과정의 여섯 영역(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 지식·문학)에 포함된 교육 내용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해 총 15개(상권 8개,하권 7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대단원은 2~5개의 소단원으로 구성하였으며,단원의 성격과 목표가 드러날 수 있도록 대단원명을 제시하고 있다.
대단원은 학습의 과정을 고려하여 '단원의 길잡이-소단원 학습-단원의 마무리-보충·심화 학습'의 순으로 구성되었다.
'단원의 길잡이'에서는 단원의 학습 내용과 목표를 아우르면서 그 필요성과 가치를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단원 학습 결과 도달해야 할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준비 학습'은 단원의 학습 방향과 내용에 대한 실마리를 이전에 학습한 내용이나 생활 경험에서 학습자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단원 학습'은 활동 중심의 원칙에 의거하여 학습 목표 달성에 필요한 제재와 학습 활동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아두기' 항목을 두어 학습 활동의 수행에 요구되는 개념적 방법적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였고,'학습 활동' 역시 제재 중간에 배치하여 제재의 구체적 국면에서 다양한 학습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단원 학습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단원의 마무리'는 '정리하기'와 '점검하기'로 되어 있다.
'정리하기'를 통해 단원 전체의 학습 내용을 확인·정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점검하기'는 단원의 학습 내용을 세분화하여 점검표로 제시하여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성취 수준을 점검할 수 있게 하였다.
'보충·심화 학습'은 '점검하기'의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성취 수준을 고려하여 보충 학습과 심화 학습을 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위에 제시한 교과서의 체제는 국어 교과서 '일러두기' 항목에 제시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현행 교과서는 활동하는 과정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이 활동의 주체는 학습자인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교과서를 싫어한다.
사실 학생들이 교과서를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과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배제된 수업방식 때문이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왜 「구운몽」이란 고전적인 작품을 '능동적인 의사소통'이란 대단원의 구체적 예시 작품으로 제시한 것일까?
독서를 한다는 것은 작자와 독자의 끊임없는 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와 다른 점은 반드시 책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특히 「구운몽」을 쓴 김만중은 이미 300여년 전에 죽은 사람이다.
당연히 질문과 대답은 모두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듣기와 말하기보다는 읽기와 쓰기 방향으로 대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읽기와 쓰기의 본질이 듣기와 말하기와 크게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듣기와 말하기처럼 읽기와 쓰기도 의사를 전달하고 교환하는 행위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구운몽」은 불가(佛家)에 적을 둔 성진이 스승인 육관 대사의 명을 받아 동해 용궁에 다녀오던 중 8선녀와 만나 희롱하다가 인간 세상에 대한 집착을 느끼고,꿈을 통해 그 집착에 대한 성취를 이루었으나 결국 꿈을 깨고 그러한 집착이 모두 허망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소설이다.
결국 「구운몽」의 주제를 소박하게 표현한다면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고 할 수 있다.
세밀하게 분석한다 하더라도 「구운몽」에서 작가가 제시하려고 한 궁극적인 의도는 비슷한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를 찾고 거기에 공감하는 것만이 독서의 전부는 아니다.
더욱 차원이 높은 독서활동은 공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독서로 나아가는 데서도 이루어진다.
그것은 김만중이 작품을 통해 의도한 바와 김만중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더 본질적인 내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겉으로 표현한 현실세계에 대한 부정이라는 의도와는 달리 김만중이 「구운몽」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아름답다.
서술의 분량도 김만중의 궁극적인 의도가 담긴 이상세계의 10배를 넘는다.
그래야 한다는 당위와 그렇다는 실제가 달랐던,머리의 판단과 가슴의 느낌이 달랐던 김만중의 본질을 의외로 「구운몽」의 심층적인 독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머리로는 현실세계를 부정했지만 가슴으로는 현실세계를 동경한 김만중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모든 독서는 현재 자신의 삶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능동적인 의사소통'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
친절하게도 국어 교과서는 그러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구운몽」의 학습 활동에 이런 문제가 있다.
학생이 쓴 독후감인데 뒷부분을 자유롭게 이어서 써 보라는 문제이다.
누구나 화려한 삶을 꿈꾼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고 신나게 사는,그런 화려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불은 다 타 버리고 나면 재만 남는다.
활활 타오를 때에는 멋진 불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뜨거운 열과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다 타 버리고 나면 시커먼 재밖에 남지 않는다.
'구운몽'의 주제는 이처럼 인생의 허무함이라고 한다.
즉 인생의 외적인 화려함이니 불우함이니 하는 것들은 한갓 그림자에 불과하고 본질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림자가 아무리 화려해도 실체가 사라지면 그 또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인데,그 그림자에 현혹되어 인생의 참된 길을 잃어서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상 215쪽,학습 활동)
마지막에 '그런데'라는 접속부사를 제시한 것은 반론을 제기해 보라는 것이다.
과연 인생은 허무한 것인가?
'그림자에 현혹되어 인생의 참된 길을 잃어서야' 되지 않지만 '그림자'와 '인생의 참된 길'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모두가 부처의 길을 찾는 그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현실적인 삶에 충실하고 일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것도 '인생의 참된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입을지라도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그것이 역설적으로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논술 이야기에 갑자기 왜 국어 교과서를 가져왔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국어 교과서의 학습 과정인 '단원의 길잡이-소단원 학습-단원의 마무리-보충·심화 학습'은 논술문 쓰기의 과정과 너무나 닮아 있다.
'단원의 길잡이'가 논제에 대한 분석이라면 '소단원 학습'은 제시문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단원의 마무리'가 논술문 쓰기라면 '보충·심화 학습'은 자신이 작성한 논술문을 검토하고 심화시키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다른 교과 교과서에도 단원의 학습 목표와 본문,그리고 보충·심화 문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과정에만 충실하다면 정규수업과 논술수업은 결코 별개의 수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통합교과논술은 모든 교과의 통합된 사고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통합된 사고는 기본적으로 개별화된 교과목의 학습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통합은 아이들의 몫이기도 하다.
교사보다도 아이들의 지식이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개방되어 있기도 하고 모든 교과목을 현재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통합시키는 것을 도와주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논술 수업은 모든 교과의 정규수업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가장 좋은 논술수업 자료는 물론 교과서이다.
문제는 통합교과논술에 대한 이론이나 수업과정이 아니라 정규수업 자체가 지니는 수업 방식의 문제이다.
지난날의 수업 방식,즉 주입식,일방통행식 수업은 지양되어야 한다.
실제로 서울의 D고등학교에서는 수험생인 3학년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2시간씩 작문 시간을 활용해서 토론 수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수업이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성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업 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어쩌면 통합교과논술이 거기로 갈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
「구운몽」이란 소설이 있다.
조선 숙종 때 남해 노도로 귀양을 떠난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한글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구운몽」은 고등학교 국어(상) 교과서에 실려 있다.
교과서 단원으로는 '대단원 5. 능동적인 의사소통'의 두 번째 소단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구운몽」이란 소설과 '능동적인 의사소통'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지금 현장에 있는 국어 교사들은 그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수업에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기본적인 교육과정에 충실한 수업이다.
이러한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해 현행 국어 교과서의 체제와 목표를 살펴본다.
현행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10학년 국어과 교육 과정의 여섯 영역(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국어 지식·문학)에 포함된 교육 내용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해 총 15개(상권 8개,하권 7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대단원은 2~5개의 소단원으로 구성하였으며,단원의 성격과 목표가 드러날 수 있도록 대단원명을 제시하고 있다.
대단원은 학습의 과정을 고려하여 '단원의 길잡이-소단원 학습-단원의 마무리-보충·심화 학습'의 순으로 구성되었다.
'단원의 길잡이'에서는 단원의 학습 내용과 목표를 아우르면서 그 필요성과 가치를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단원 학습 결과 도달해야 할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준비 학습'은 단원의 학습 방향과 내용에 대한 실마리를 이전에 학습한 내용이나 생활 경험에서 학습자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단원 학습'은 활동 중심의 원칙에 의거하여 학습 목표 달성에 필요한 제재와 학습 활동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아두기' 항목을 두어 학습 활동의 수행에 요구되는 개념적 방법적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였고,'학습 활동' 역시 제재 중간에 배치하여 제재의 구체적 국면에서 다양한 학습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단원 학습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단원의 마무리'는 '정리하기'와 '점검하기'로 되어 있다.
'정리하기'를 통해 단원 전체의 학습 내용을 확인·정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점검하기'는 단원의 학습 내용을 세분화하여 점검표로 제시하여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성취 수준을 점검할 수 있게 하였다.
'보충·심화 학습'은 '점검하기'의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성취 수준을 고려하여 보충 학습과 심화 학습을 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위에 제시한 교과서의 체제는 국어 교과서 '일러두기' 항목에 제시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현행 교과서는 활동하는 과정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이 활동의 주체는 학습자인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교과서를 싫어한다.
사실 학생들이 교과서를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과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배제된 수업방식 때문이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왜 「구운몽」이란 고전적인 작품을 '능동적인 의사소통'이란 대단원의 구체적 예시 작품으로 제시한 것일까?
독서를 한다는 것은 작자와 독자의 끊임없는 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와 다른 점은 반드시 책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특히 「구운몽」을 쓴 김만중은 이미 300여년 전에 죽은 사람이다.
당연히 질문과 대답은 모두 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듣기와 말하기보다는 읽기와 쓰기 방향으로 대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읽기와 쓰기의 본질이 듣기와 말하기와 크게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듣기와 말하기처럼 읽기와 쓰기도 의사를 전달하고 교환하는 행위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구운몽」은 불가(佛家)에 적을 둔 성진이 스승인 육관 대사의 명을 받아 동해 용궁에 다녀오던 중 8선녀와 만나 희롱하다가 인간 세상에 대한 집착을 느끼고,꿈을 통해 그 집착에 대한 성취를 이루었으나 결국 꿈을 깨고 그러한 집착이 모두 허망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소설이다.
결국 「구운몽」의 주제를 소박하게 표현한다면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고 할 수 있다.
세밀하게 분석한다 하더라도 「구운몽」에서 작가가 제시하려고 한 궁극적인 의도는 비슷한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를 찾고 거기에 공감하는 것만이 독서의 전부는 아니다.
더욱 차원이 높은 독서활동은 공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독서로 나아가는 데서도 이루어진다.
그것은 김만중이 작품을 통해 의도한 바와 김만중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더 본질적인 내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겉으로 표현한 현실세계에 대한 부정이라는 의도와는 달리 김만중이 「구운몽」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아름답다.
서술의 분량도 김만중의 궁극적인 의도가 담긴 이상세계의 10배를 넘는다.
그래야 한다는 당위와 그렇다는 실제가 달랐던,머리의 판단과 가슴의 느낌이 달랐던 김만중의 본질을 의외로 「구운몽」의 심층적인 독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머리로는 현실세계를 부정했지만 가슴으로는 현실세계를 동경한 김만중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모든 독서는 현재 자신의 삶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능동적인 의사소통'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
친절하게도 국어 교과서는 그러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구운몽」의 학습 활동에 이런 문제가 있다.
학생이 쓴 독후감인데 뒷부분을 자유롭게 이어서 써 보라는 문제이다.
누구나 화려한 삶을 꿈꾼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고 신나게 사는,그런 화려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불은 다 타 버리고 나면 재만 남는다.
활활 타오를 때에는 멋진 불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뜨거운 열과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다 타 버리고 나면 시커먼 재밖에 남지 않는다.
'구운몽'의 주제는 이처럼 인생의 허무함이라고 한다.
즉 인생의 외적인 화려함이니 불우함이니 하는 것들은 한갓 그림자에 불과하고 본질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림자가 아무리 화려해도 실체가 사라지면 그 또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인데,그 그림자에 현혹되어 인생의 참된 길을 잃어서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상 215쪽,학습 활동)
마지막에 '그런데'라는 접속부사를 제시한 것은 반론을 제기해 보라는 것이다.
과연 인생은 허무한 것인가?
'그림자에 현혹되어 인생의 참된 길을 잃어서야' 되지 않지만 '그림자'와 '인생의 참된 길'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모두가 부처의 길을 찾는 그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현실적인 삶에 충실하고 일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것도 '인생의 참된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입을지라도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그것이 역설적으로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논술 이야기에 갑자기 왜 국어 교과서를 가져왔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국어 교과서의 학습 과정인 '단원의 길잡이-소단원 학습-단원의 마무리-보충·심화 학습'은 논술문 쓰기의 과정과 너무나 닮아 있다.
'단원의 길잡이'가 논제에 대한 분석이라면 '소단원 학습'은 제시문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단원의 마무리'가 논술문 쓰기라면 '보충·심화 학습'은 자신이 작성한 논술문을 검토하고 심화시키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다른 교과 교과서에도 단원의 학습 목표와 본문,그리고 보충·심화 문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과정에만 충실하다면 정규수업과 논술수업은 결코 별개의 수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통합교과논술은 모든 교과의 통합된 사고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통합된 사고는 기본적으로 개별화된 교과목의 학습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통합은 아이들의 몫이기도 하다.
교사보다도 아이들의 지식이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개방되어 있기도 하고 모든 교과목을 현재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통합시키는 것을 도와주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논술 수업은 모든 교과의 정규수업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가장 좋은 논술수업 자료는 물론 교과서이다.
문제는 통합교과논술에 대한 이론이나 수업과정이 아니라 정규수업 자체가 지니는 수업 방식의 문제이다.
지난날의 수업 방식,즉 주입식,일방통행식 수업은 지양되어야 한다.
실제로 서울의 D고등학교에서는 수험생인 3학년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2시간씩 작문 시간을 활용해서 토론 수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수업이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성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업 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어쩌면 통합교과논술이 거기로 갈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