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최저임금 너무 높아 취약계층 고용기회 줄어"

반 "나이 많다고 인간적 생활까지 포기하라는 것"

정부의 최저임금법 개정 문제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근로자가 동의할 경우 최저임금을 감액 적용하고 수습근로자의 최저임금 감액 적용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며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를 받을 경우 숙박 및 식사비를 임금에서 공제하도록 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최저임금법의 개정 방안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셈이다.

노동부 쪽에서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하기를 원하는 고령 근로자와 저숙련 근로자의 고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현행 최저임금제를 손질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경제계 또한 "우리 최저임금은 저임 근로자 보호라는 애초 목적을 벗어나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라며 정부 방침을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노동계와 민주노동당 등에서는 "이러한 최저임금법 개정은 저임금 취약계층의 임금 하락을 부추겨 빈곤을 심화시킬 게 불을 보듯 뻔하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현행 최저임금 기준으로는 땀 흘려 일해도 월 80만원을 챙기기도 어려운 마당에 어떻게 그 하한선마저 낮추고 수습근로 기간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해 근로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임금을 조금씩 깎는 대신 사람을 자르지 않거나,그 돈으로 사람을 더 쓰는 게 고용 안정과 고용증대 방법의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더욱이 지금처럼 고용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잡 셰어링(job sharing)'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익한 게 사실이다.

문제는 비정규직과 저임금층의 피해의식을 자극하고, 소외 계층에 대뜸 '고통 분담' 카드부터 내미는 노동정책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점이다.

최저임금법 개정 논란을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지나치게 높은 최저임금은 취약계층의 고용기회 축소시켜"

경제계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최저임금은 고령자,장애인,청년층 등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최저임금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노동계 일각에서 개악이라고 폄하하고 있지만,이는 최저임금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이해가 엇갈리는 노사가 참여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현행 최저임금위원회 방식은 노동계의 투쟁의 장으로 변질돼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직접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역간 생계비 차이와 임금 수준을 감안한 지역별 최저임금제를 도입,지역간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현재 1년으로 규정돼 있는 최저임금 결정주기를 경제와 노동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적용주기를 2년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고령자 등의 최저임금 삭감은 인간적 생활 포기하라는 것"

이에 대해 노동계 쪽에서는 "유례없는 경제한파 속에 수많은 노동자들은 생존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데도 정부가 이들을 지원할 생각은 않고 최저임금과 밥값마저 깎겠다는 것은 부자들만 살찌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며 반발한다.

특히 고령자의 최저임금을 깎는다고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물론 60세 미만의 노동자들이 더 싼값의 노동력을 찾는 사용자들에 의해 쫓겨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60세 이상 노동자라고 해서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포기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한 달 85만원,연봉 1000만원을 받는 게 과연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으냐고 반문한다.

가뜩이나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생존권 문제는 인권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 근로자 임금만 깎는 결과 초래하지 않도록 대책부터 강구해야

노동부의 최저임금법 개정 취지는 경제 난국을 맞아 취업 전선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기업 부담을 덜어줘 고용을 활성화하고 산업 활력도 확보하려는 것임은 물론이다.

고령자에 대한 최저임금 감액 적용은 노령자에게는 일자리 기회를 늘리고 사용주에게는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수습근로자에 대한 감액기간 적용연장 또한 기업의 인력활용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당장의 경제위기 심화로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마당인데다 멀지 않은 시기에 닥칠 고령화사회 대책까지 감안하면 최저임금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최저임금법 개정을 둘러싼 사회적 마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자칫 근로자의 임금만 깎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감액을 합법화하면 고용주들이 이를 남용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고령 노동자가 삭감된 최저 임금을 수용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고임금이 된 50대 후반의 취업 기회가 박탈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제 적용 계층이 대부분 사회적 약자라는 점도 분란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이런 부작용들을 막을 수 있도록 노사정 협의 등 선행 절차를 거치는 등 대응 방안을 미리부터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최저임금제도 : 근로계약 당사자인 개별근로자와 사용자 간에는 대등한 교섭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 임금의 최저한도를 결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지급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제도로 1986년 제정됐다.

근로자의 생계비·유사근로자의 임금 및 노동생산성을 고려하여 사업의 업종별로 정하고,금액은 시간·일·주 또는 월단위로 정하되 시간급으로도 표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3770원(하루 8시간 기준 3만160원)이며 한 달 기준으로는 78만7930원이다.

◆ 잡 셰어링(job sharing) : 사업장내 과잉인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자 1인당 근무시간을 단축, 사원 한 명의 일을 여러 명이 나눠서 하는 노동형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과잉인력이 20% 발생했을 경우 1인당 근로시간을 20% 줄임으로써 인력 감축없이 이를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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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12월9일자 A14면

노동부는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 가운데 본인이 명시적으로 감액에 동의하는 경우 최저임금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담은 '최저임금제도 개선 방향'을 8일 공개했다.

최저임금 감액 적용 대상자인 수습근로자의 사용 기간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해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줄 수 있는 기간을 늘린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이 같은 개정 방향은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18일 대표 발의한 여당의 최저임금법 개정안과 일부 내용(지역별 차등화 방안 제외)을 제외하면 거의 동일한 것이다.

여당 개정안 가운데 숙박 및 식사비를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과도한 액수의 공제를 막기 위한 적정 평가 방법 및 한도액 규정 등을 마련하되 조항 자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노동부는 이와 함께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해 도급계약 기간 중 법정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인상된 최저임금에 맞춰 도급 금액을 조정할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 등도 제시했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3770원(하루 8시간 기준 3만160원)이며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4000원(하루 8시간 기준 3만2000원)으로 확정돼 있다.

이 같은 정부안에 대해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한 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6일 최저임금제와 비정규직법 개정에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전국적으로 반대 시위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