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없는 자유'와 '지배없는 자유'는 다르다?

<제시문>

벌린은 자유를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로 구분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적극적 자유는 자율이 실현된 상태를 의미하고 소극적 자유는 타인의 간섭이 부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지배 없는 자유'는 벌린의 분류에 포섭되지 않는다.

지배 없는 자유는 간섭의 실재 여부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지배 없는 자유를 파악하자면 간섭의 자의성과 행위자가 처한 예속의 정도가 마땅히 고려되어야 한다.

피지배 상태에 있는 행위자도 간섭 없이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간섭한다고 반드시 지배하는 것은 아니며 지배받는다고 반드시 간섭당하는 것은 아니다.

간섭과 지배는 그처럼 별개의 개념들이다.

따라서 간섭의 부재에 초점을 두는 자유와 지배의 부재에 초점을 두는 자유는 서로 다르다.

'간섭 없는 지배'와 '지배 없는 간섭'이 각각 가능하다는 사실은 양자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간섭 없는 지배를 잘 보여주는 예로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인은 노예에 대해 자의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입장에 선다.

그러나 주인이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노예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수 있으며,노예가 간사하거나 아첨에 능한 사람이어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주인의 처벌을 피할 수도 있다.

그 경우 노예는 주인에게 지배되면서도 주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를 누린다.

지배 없는 간섭을 잘 보여주는 예로는 선거를 통해 뽑힌 시장과 유권자인 시민들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시장은 시민들이 동의하는 사안과 관련하여 시민들을 간섭할 수 있다.

시장의 간섭에 대한 시민들의 동의는 강제나 선동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조건 하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장의 간섭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들이 동의한 사안에서 발생하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다.

그 경우 시민들에 대한 시장의 간섭은 지배가 아니다.

시장은 자의적으로 시민들을 간섭할 수 없으며 시민들도 시장에게 무조건 복종할 필요가 없다.

결국 간섭 없는 자유와 지배 없는 자유는 서로 다른 이상이다.

간섭 없는 자유가 이상으로 설정될 경우 간섭을 받는 시민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시장의 간섭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그 간섭은 간섭 없는 자유의 이상과 상충된다.

지배 없는 자유가 이상으로 설정될 경우 간섭받지 않는 노예라 하더라도 그는 피지배 상태에 있으므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홉스의 견해에 따르면 자유란 법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이며 전제 군주정이건 민주 공화정이건 자유의 향유라는 면에서는 서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지배 없는 간섭의 이상에 의거한다면 비판받을 수 있다.

전제 군주정에서는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군주의 의지에 따라야 하는 노예일 뿐이다.

그 반면 민주 공화정에서는 아무리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유로운 시민이다.

인간 사회에서 간섭은 늘 있기 마련이다.

자의적인 간섭은 지배와 예속의 상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배 없는 자유의 이상은 그러한 가능성을 축소시킬 것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강자가 약자를 자의적으로 간섭할 수 없도록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약자가 강자의 자의적인 간섭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얘들아,너희들도 아까 보았지만,날짐승들은 한 지도자 밑에 얼마나 질서정연하고 위풍이 당당하냐? 우리들 개구리도 한번 이런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어떠냐?"

바로 턱 밑에 쭈그리고 앉은 멍텅구리 파랑이가 또 주책없이 물었다.

"얼룩아,지도자가 무에니?"

"지도자란 건 왕이라구두 하구 임금이라구두 하는데,아까 본 독수리는 이를테면 새들의 지도자요 왕이요 임금이란다."

저쪽에서,역시 파랑이에 못지않은 멍텅구리 검둥이가 바보 같은 소리로 물었다.

"얼룩아아,왕이란 건 그렇게 막 잡아먹는 거니이? 아이구 무시라아."

얼룩이는 한번 픽 웃고 좌중을 훑어보았다.

지도자의 참뜻을 아는 것은 자기만이라는 것이 분명하였다.

"잘못하는 놈은 잡아먹지,아니 잡아먹어야지."

"얼룩아아,어떻게 하는 게 잘못하는 거니이?"

파랑이다.

"지도자의 말을 잘 안 듣고 게으른 짓만 하는 게 잘못하는 거지."

"얼룩아아,그런 낮잠 자는 것두 잘못하는 거니이? 어쩐지 무시무시하구나아."

검둥이다.

"얘들아,내 말 좀 들어라. 새들이 저렇게 훌륭한 지도자 밑에 일사불란의 질서를 유지하고 단결하였는데, 만약 저마다 멋대로 날뛰는 우리 개구리 사회를 들여다본다면 무어라고 하겠느냐 말이다.

그러기에 나는 우리도 당당한 지도자를 받들고 이 무질서를 질서로 정돈하기를 제의하는 것이다."

"듣고 보니께 그렇기두 하구나아."

파랑이다. 모두들 그럴싸하게 구미가 도는 모양이었다.

"여기 반대하는 개구리는 앞발을 들어라."

발을 드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유독 맨 뒤에 자빠져 있던 초록이가 반쯤 머리를 들고 반박하였다.

"얼룩아,보기두 싫다. 높은 데서 뽐내지 말구 내려와. 네나 내나 마찬가지야. 지도자구 질서구,되지 못하게스리. 나는 이대루 자뿌라질 자유,낮잠 잘 자유,제멋대루 거꾸로 설 자유가 좋다."

뱃속에서는 화가 치밀었으나 눈앞에 있는 군중은 그것이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만이 다행이었다.

얼룩이는 초록의 발언을 묵살하기로 하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따졌다.

"얘들아,지도자를 선출하는 데 이의가 없지? 있으면 앞발을 들어라."

역시 드는 놈은 없었다.

이때 파랑이가 부스스 일어섰다.

"모두 좋은 모양이구나아. 얼룩아 그럼 니가 그 지도잔가 한 걸 하려므나아. 그리구 내가 좀 낮잠 자두 잡아먹진 말아라아,증말이야."

이에 폭소가 터졌다. 모두들 배를 거머안고 웃어 댔다.

특히 초록이는 배를 안고 뱅뱅 돌아 가면서 허리를 꺾었다.

"얼룩이는 안 된다. 저번에 검둥이한테두 씨름에 졌지 않아? 게다가 목소리두 가느다란 것이 어디 돼먹었어?"

야무지게 생긴 놈의 반박이었다.

"…그뿐이 아니다,아까 날짐승 떼가 오자 제일 먼저 물속으로 내뺀 것이 바로 얼룩이가 아냐? 그 따위 헝겊막대 같은 지도자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적어두 독수리보다 몇 배 나은 놈을 골라야 할 거 아냐?"

"옳소!"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 고려대학교 2009학년도 수시2 논술 문제 풀이 (下) ②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