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유럽, 경기부양 핵심은 에너지·하이테크 등 미래 성장산업
[Global Issue] “금융위기 끝난후 세계경제 주도권은 우리가 잡는다 ”
세계 각국이 불황 타개를 위해 쏟아내고 있는 경기부양책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은 당장의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긴급 처방에 머물지 않고, 대체에너지와 첨단기술 개발 등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투자도 병행한다는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는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금융위기 극복 이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 정부가 도로 철도 항만 댐 등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에 역점을 뒀던 뉴딜식 경기부양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런 각국의 차세대 경기부양책은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치열하게 벌일 세계 경제의 주도권 확보를 겨냥한 국가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 미래 성장동력을 선점하라

이웃 나라 일본은 환경 물류 의료 등 차세대 산업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경기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9일 일본 정부와 여당이 내년부터 3년간 총 15조~20조엔(약 225조~300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대규모 재정자금을 환경 물류 의료 등 분야에 집중 투자해 경기를 진작시키겠다는 의도다.

또한 이런 집중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킨 이들 분야를 금융위기 이후 중장기 성장기반이 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환경 분야의 경우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인 수소연료전지의 활용을 활성화하는 등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을 촉진하는 데 정부의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물류 분야에서는 도쿄의 하네다 공항을 비롯해 전국의 공항과 항만을 정비하는 등 물류시스템을 개선해 기업의 물류비용을 낮춰주는 쪽에 자금을 집중 투입할 방침이다.

고속도로 건설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의료분야에서는 응급처방 등 초기진료를 담당하는 공공병원의 '구급치료실(ER)'을 정비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말과 10월 말 각각 2조엔과 5조엔의 재정을 투입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한 긴급 처방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앞으로 3년간 재정을 투자할 이번 대책은 중장기적으로 내수 기반을 넓히고 국민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추가 경기부양책의 재정투입 자금은 일본 정부가 현재 준비 중인 2차 추가경정예산안과 내년도 본예산 등에 반영할 계획이다.

⊙ 유럽, 하이테크와 친환경으로

유럽의 경기부양책은 하이테크와 친환경이 키워드다.

그 중에서도 △디지털 인프라를 확충하고 △친환경산업을 육성하며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데 경기부양책의 초점을 뒀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8일 유럽 경기 부양책 논의를 위해 이날 런던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비롯 유럽 재계 지도자들과 만난 뒤 "유럽의 미래는 디지털,저탄소,친환경 유럽에 있다"며 "경기 부양책이 디지털과 환경에 대한 투자에 초점을 맞출 것"임을 시사했다.

브라운 총리는 "금융위기발 불황을 탈출하기 위한 투자를 통해 21세기형 첨단기술을 보다 빠르게 개발하고 환경 인프라를 폭넓게 구축하는 게 (경기부양의)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주 EU(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모여 의견을 나눈 경기부양안에도 이 같은 의지가 담겨 있다.

이번 경기부양안에는 2010년까지 유럽 전지역에 초고속인터넷을 보급하기로 했다.

또 친환경 자동차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50억유로(9조333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고, 고층 빌딩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사업에 10억유로(1조8666억원)를 투입하는 방안들도 이번 경기부양안에 포함돼 있다.

유럽은 특히 12억유로(2조2399억원)가 투입되는 '미래 공장 프로젝트'를 통해 제조업체들의 기술력을 높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 미국, 대체에너지와 첨단 제조기술

미국도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첨단 제조기술을 개발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내놓은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 이를 구체화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앞으로 10년간 태양광 지열 풍력 등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총 1500억달러를 투자해 250만개의 친환경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대체에너지 이용을 미국 전역으로 확대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효과를 누리는 동시에 친환경 일자리 창출을 통해 최근 치솟고 있는 실업률을 잡겠다는 일석이조의 친환경 뉴딜정책인 셈이다.

또 제조업 분야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차기 행정부는 선진제조펀드(AMF)를 설립,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제조분야에서도 첨단기술 개발에 속도를 올리기로 했다.

⊙ 중국은 산업구조 고도화 추진

중국은 추후 이뤄질 경기부양을 산업구조 고도화를 가속화하는 계기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최근 발표한 4조위안(8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자금 중 4%(32조원)를 기술개발에 할당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에 조성하고 있는 바이오산업단지 건설에 10억위안(20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또 철도와 전력 등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고속철도와 원전의 비중을 높이고 이 과정에서 이들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그린 카 개발과 보급에도 4년간 200억위안(4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 테러 역풍 맞은 인도도 경기부양 나서

인도는 7일 2000억루피(40억달러)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종전에 발표된 경기부양 자금을 포함, 국내총생산(GDP)의 5%에 해당하는 3조루피(600억달러)가 내년 3월까지 집행될 예정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성장률이 급격하게 둔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최근 뭄바이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터져 투자자들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데 따른 대응책이다.

앞서 인도는 유류가격과 금리를 잇따라 인하하는 등 경기부양에 올인하고 있다.

인도중앙은행(RBI)은 6일 기준금리를 연 7.5%에서 6.5%로 1%포인트 인하했다.

두달 새 기준금리를 세 차례 낮춘 것이다.

인도는 또 지난 5일에도 소비진작 차원에서 유류가격을 10%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휘발유 가격을 ℓ당 5루피(149원) 인하한 45.62루피(1361원), 디젤유의 경우 ℓ당 2루피(59원) 낮춘 32.86루피(980원)로 조정했다.

인도의 유류 가격인하는 2007년 2월 이후 처음이다.

RBI의 두부리 부바라오 총재도 이날 인도 경제 성장률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부바라오 총재는 내년 3월로 끝나는 2008회계연도에 7.5% 성장할 것이라는 현재 전망치가 수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7% 성장률은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급격한 성장률 둔화는 해외로부터의 투자감소와 수출 위축 탓이 크다.

수출은 10월에 전년 동기 대비 12.1% 감소, 7년 만에 첫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뭄바이 테러 이후 호텔과 관광과 같은 서비스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금의 금융위기를 첨단인재와 첨단기술을 확보할 기회로 삼아라."(원자바오 중국 총리), "유례없는 위기엔 유례없는 야심이 필요하다."(주제 바로수 EU 집행위원장)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이미 포스트 금융위기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