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이해하고 설득시키는 것이 논술이다
한 학생이 교무실에 담임을 만나기 위해 들어왔다.
얼굴은 완전히 죽을 상이다.
"샘,오늘 자율학습 빼 주세요."
당연하게 교사가 묻는다.
"왜?"
학생은 아무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다. 교사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왜냐니까?"
학생은 머뭇머뭇하다가 불쑥 말한다.
얼굴에는 왜 허락해주지 않느냐는 불만으로 가득하다.
"그냥요."
교사는 여전히 높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냥 올라가거라. 이유 없이 자율학습을 뺄 수는 없어."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학생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교무실을 나간다.
교무실 닫히는 소리가 제법 크다.
선생님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이어 다른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역시 불만에 가득한 얼굴이다.
"샘,오늘 자율학습 못 하겠어요. 집에 보내주세요."
"왜?"
"공부하기 싫어요."
교사의 얼굴도 많이 굳어진다.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몇 명이겠니? 다들 힘들어도 공부하는 건 지금 그래야 할 때이기 때문이잖아. 지금 힘들게 공부하면 좋은 대학교 들어가고 그 다음 네 삶이 행복해질 수 있잖니?"
"그건 선생님 논리잖아요. 난 지금 행복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율학습이잖아요. 자율학습은 자율이잖아요."
교사의 얼굴은 더욱 굳어진다.
사실 대응할 논리가 없다. 무조건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래. 집에 가거라. 하지만 너의 논리가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이면에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 보아라."
학생은 무표정하게 교무실을 나간다.
교사는 흡연실로 들어가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다른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얼굴은 처음 왔던 학생보다 더욱 죽을 상이다.
"샘,오늘 자율학습 빼 주세요."
교사는 묻는다.
"왜?"
학생은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한다.
"오늘 배가 너무 아파요."
교사도 나직하게 대답한다.
"그래? 조금 참아 보아라. 양호실에서 약 구해다줄까?"
그러자 학생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손은 배 위에다 올리고 아파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교사는 어쩔 수 없이 허락한다.
"오늘 집에 가서 푹 쉬고 다 나아서 내일 건강하게 보자. 알겠지?"
학생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교무실을 나간다.
또 한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담담한 표정이다. 얼굴에는 미소까지 담겨 있다.
"샘,오늘 자율학습 좀 빼 주세요."
교사가 묻는다.
"왜?"
학생은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한다.
"어제 수행평가 준비하느라고 거의 잠을 자지 못했어요.
오늘도 하루 종일 힘들었어요.
오늘은 집에 가서 쉬면서 텔레비전도 좀 보고 일찍 자야겠어요.
그 대신 내일부터는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 기대 어긋나지 않게 할게요. 오늘만 좀 보내주세요."
교사는 편안한 목소리로 허락한다.
"그래. 오늘은 좀 쉬고 내일부터 잘 하려무나."
허락을 받고 나가는 학생이나 허락해 준 교사나 모두 편안한 얼굴이다.
위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어느 교무실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실 일상적인 교무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은 첫 번째와 두 번째,세 번째의 예와 같이 일어난다.
첫 번째 사례는 대화 자체가 단절돼 서로의 감정만 상한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예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대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자기 주장만 있지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말하지 않는다.
평소에 그런 대화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목소리만 크다.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마음 속의 불만도 커진다.
두 번째 학생은 교사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 설득은 상처만 남은 영광이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설득은 성취감보다도 더 큰 상처를 만든다.
요즘 이런 현상이 부쩍 많아졌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주장은 근거를 말하지도 못한 첫 번째 아이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사실 교사가 허락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학교 내부에 존재하는 나름대로의 불문율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그나마 세 번째 학생은 교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근거는 감정적인 부분이다.
'배가 아프다'는 사실이다.
근거를 말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는 울어 버린다.
교사의 마음에 존재하는 측은지심을 자극해서 감정과 감정이 만난 것이다.
사실 학생이 정말 아팠다면 문제가 없지만 꾀병을 부렸을 수도 있다.
나아가 교사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학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학생은 교사에게 거짓을 말한 셈이다.
반면에 네 번째 아이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유를 제시했다.
정직하면서도 논리적이다. 근거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이런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진솔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학생이 '오늘 쉬고 싶으니까 집에 보내 달라'고 한 것인데 교사는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네 가지 사례 모두에게 주장은 명료하다.
'자율학습 빠지고 싶다'이다.
즉,네 명의 학생이 주장하는 바는 같다.
같은 주장을 내세웠는데도 교사의 반응은 아주 다르다.
그 차이는 주장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근거와 과정에서 드러난다.
첫 번째 학생은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다.
따라서 당연히 허락을 받을 수 없다.
두 번째 학생은 근거는 명확했지만 더 본질적인 전제에서 벗어났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영광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내면적으로 더욱 강화된 갈등의 골이 만들어진다.
세 번째 학생은 근거는 있지만 그 근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단지 근거를 드러내는 행동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도 교사가 허락한 이유는 근거 때문이 아니라 학생과의 관계 때문이다.
하지만 논술고사의 당사자인 수험생과 대학논술고사 출제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일 뿐이다.
또한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는 논술고사의 질문을 통해,수험생은 거기에 대한 논술문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뿐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으로 출제자를 설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논술고사의 본질도 이미 감정으로 남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네 번째 경우는 다르다.
학생의 근거는 '지금 피곤하다'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지금 피곤한 이유를 '어제 수행평가를 한다고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로 제시했다.
학생은 거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쉬면서 충전하여 내일부터는 더욱 열심히 하여 선생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논술이다.
이러한 언어 행위는 충분히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학교 논술반을 운영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이런 곳에서 감지된다.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를 들어 자신의 현재를 드러낸다.
논술 수업을 실시하기 전의 학생들은 대부분 첫 번째나 두 번째 유형이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참가한 텔레비전 정책 토론회를 보고 있으면 대부분 첫 번째나 두 번째 사례만 본다.
그들에게는 주장만 존재하고 그 주장을 타당하게 만드는 근거가 없거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
당연히 자기 말만 하고 타인의 주장이나 근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논술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이다.
하지만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타인을 설득할 수 없는 주장은 사실 무의미하다.
그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나아가 설득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건 이미 본질적인 설득이 아니다.
따라서 논술은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행위이지만 단순한 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국 논술은 대립을 통해 승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협을 통해 더욱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가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일 수도 있다.
논술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는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가 아니라,오히려 대학에 들어갔을 때,나아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더 실감나게 깨달을 것이다.
삶은 객관식이 아니다. 수많은 주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택의 여러 기로에 서서 가장 바람직한 길을 선택해야 할 때,대학에 가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문제를 받았을 때,어느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회사에서 상사가 집어던진 기획안을 땅바닥에서 주워들 때,"일단은 말이 되게 써야지. 말이 되게! 대학에서 뭘 배웠어? 이게 글이야?"라는 꾸지람을 들을 때,잘못 쓴 편지 한 장 때문에 1000만달러 계약을 놓쳤을 때,논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할 수도 있다.
나아가 온통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현대 한국사회에서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능력,그럼으로 인해 진정한 타협의 능력을 배양하는 과정이 바로 논술수업이다.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
한 학생이 교무실에 담임을 만나기 위해 들어왔다.
얼굴은 완전히 죽을 상이다.
"샘,오늘 자율학습 빼 주세요."
당연하게 교사가 묻는다.
"왜?"
학생은 아무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다. 교사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왜냐니까?"
학생은 머뭇머뭇하다가 불쑥 말한다.
얼굴에는 왜 허락해주지 않느냐는 불만으로 가득하다.
"그냥요."
교사는 여전히 높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냥 올라가거라. 이유 없이 자율학습을 뺄 수는 없어."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학생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교무실을 나간다.
교무실 닫히는 소리가 제법 크다.
선생님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이어 다른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역시 불만에 가득한 얼굴이다.
"샘,오늘 자율학습 못 하겠어요. 집에 보내주세요."
"왜?"
"공부하기 싫어요."
교사의 얼굴도 많이 굳어진다.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몇 명이겠니? 다들 힘들어도 공부하는 건 지금 그래야 할 때이기 때문이잖아. 지금 힘들게 공부하면 좋은 대학교 들어가고 그 다음 네 삶이 행복해질 수 있잖니?"
"그건 선생님 논리잖아요. 난 지금 행복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율학습이잖아요. 자율학습은 자율이잖아요."
교사의 얼굴은 더욱 굳어진다.
사실 대응할 논리가 없다. 무조건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래. 집에 가거라. 하지만 너의 논리가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이면에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 보아라."
학생은 무표정하게 교무실을 나간다.
교사는 흡연실로 들어가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다른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얼굴은 처음 왔던 학생보다 더욱 죽을 상이다.
"샘,오늘 자율학습 빼 주세요."
교사는 묻는다.
"왜?"
학생은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한다.
"오늘 배가 너무 아파요."
교사도 나직하게 대답한다.
"그래? 조금 참아 보아라. 양호실에서 약 구해다줄까?"
그러자 학생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손은 배 위에다 올리고 아파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교사는 어쩔 수 없이 허락한다.
"오늘 집에 가서 푹 쉬고 다 나아서 내일 건강하게 보자. 알겠지?"
학생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교무실을 나간다.
또 한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담담한 표정이다. 얼굴에는 미소까지 담겨 있다.
"샘,오늘 자율학습 좀 빼 주세요."
교사가 묻는다.
"왜?"
학생은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한다.
"어제 수행평가 준비하느라고 거의 잠을 자지 못했어요.
오늘도 하루 종일 힘들었어요.
오늘은 집에 가서 쉬면서 텔레비전도 좀 보고 일찍 자야겠어요.
그 대신 내일부터는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 기대 어긋나지 않게 할게요. 오늘만 좀 보내주세요."
교사는 편안한 목소리로 허락한다.
"그래. 오늘은 좀 쉬고 내일부터 잘 하려무나."
허락을 받고 나가는 학생이나 허락해 준 교사나 모두 편안한 얼굴이다.
위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어느 교무실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실 일상적인 교무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은 첫 번째와 두 번째,세 번째의 예와 같이 일어난다.
첫 번째 사례는 대화 자체가 단절돼 서로의 감정만 상한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예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대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자기 주장만 있지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말하지 않는다.
평소에 그런 대화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목소리만 크다.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마음 속의 불만도 커진다.
두 번째 학생은 교사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 설득은 상처만 남은 영광이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설득은 성취감보다도 더 큰 상처를 만든다.
요즘 이런 현상이 부쩍 많아졌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주장은 근거를 말하지도 못한 첫 번째 아이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사실 교사가 허락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학교 내부에 존재하는 나름대로의 불문율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그나마 세 번째 학생은 교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근거는 감정적인 부분이다.
'배가 아프다'는 사실이다.
근거를 말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는 울어 버린다.
교사의 마음에 존재하는 측은지심을 자극해서 감정과 감정이 만난 것이다.
사실 학생이 정말 아팠다면 문제가 없지만 꾀병을 부렸을 수도 있다.
나아가 교사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학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학생은 교사에게 거짓을 말한 셈이다.
반면에 네 번째 아이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유를 제시했다.
정직하면서도 논리적이다. 근거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이런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진솔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학생이 '오늘 쉬고 싶으니까 집에 보내 달라'고 한 것인데 교사는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네 가지 사례 모두에게 주장은 명료하다.
'자율학습 빠지고 싶다'이다.
즉,네 명의 학생이 주장하는 바는 같다.
같은 주장을 내세웠는데도 교사의 반응은 아주 다르다.
그 차이는 주장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근거와 과정에서 드러난다.
첫 번째 학생은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다.
따라서 당연히 허락을 받을 수 없다.
두 번째 학생은 근거는 명확했지만 더 본질적인 전제에서 벗어났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영광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내면적으로 더욱 강화된 갈등의 골이 만들어진다.
세 번째 학생은 근거는 있지만 그 근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단지 근거를 드러내는 행동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도 교사가 허락한 이유는 근거 때문이 아니라 학생과의 관계 때문이다.
하지만 논술고사의 당사자인 수험생과 대학논술고사 출제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일 뿐이다.
또한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는 논술고사의 질문을 통해,수험생은 거기에 대한 논술문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뿐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으로 출제자를 설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논술고사의 본질도 이미 감정으로 남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네 번째 경우는 다르다.
학생의 근거는 '지금 피곤하다'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지금 피곤한 이유를 '어제 수행평가를 한다고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로 제시했다.
학생은 거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쉬면서 충전하여 내일부터는 더욱 열심히 하여 선생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논술이다.
이러한 언어 행위는 충분히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학교 논술반을 운영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이런 곳에서 감지된다.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를 들어 자신의 현재를 드러낸다.
논술 수업을 실시하기 전의 학생들은 대부분 첫 번째나 두 번째 유형이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참가한 텔레비전 정책 토론회를 보고 있으면 대부분 첫 번째나 두 번째 사례만 본다.
그들에게는 주장만 존재하고 그 주장을 타당하게 만드는 근거가 없거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
당연히 자기 말만 하고 타인의 주장이나 근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논술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이다.
하지만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타인을 설득할 수 없는 주장은 사실 무의미하다.
그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나아가 설득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건 이미 본질적인 설득이 아니다.
따라서 논술은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행위이지만 단순한 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국 논술은 대립을 통해 승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협을 통해 더욱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가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일 수도 있다.
논술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는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가 아니라,오히려 대학에 들어갔을 때,나아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더 실감나게 깨달을 것이다.
삶은 객관식이 아니다. 수많은 주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택의 여러 기로에 서서 가장 바람직한 길을 선택해야 할 때,대학에 가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문제를 받았을 때,어느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회사에서 상사가 집어던진 기획안을 땅바닥에서 주워들 때,"일단은 말이 되게 써야지. 말이 되게! 대학에서 뭘 배웠어? 이게 글이야?"라는 꾸지람을 들을 때,잘못 쓴 편지 한 장 때문에 1000만달러 계약을 놓쳤을 때,논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할 수도 있다.
나아가 온통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현대 한국사회에서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능력,그럼으로 인해 진정한 타협의 능력을 배양하는 과정이 바로 논술수업이다.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