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삶을 억압해선 안된다

⊙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강영준 선생님의 소설이야기] 12. 최인훈「광장」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윤흥길의 「장마」가 실려 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작품 「장마」의 비극은 친할머니의 아들은 인민군 빨치산으로, 외할머니의 아들은 국군 소위로 가게 되면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돈지간이던 두 인물이 서로 다른 처지에서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잘 알고 지내던 이들이 서로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지니게 된 발단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이 적어도 소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차이와 그 차이에서 오는 적대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부인하기가 어렵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자 D 드 트라시의 「이데올로기 개론」(1801)에서 처음 학문적으로 사용된 이 말은 관념의 형성과정을 개인의 심리나 생리적 기반에 결부시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었다.

초기의 '이데올로기' 개념은 관념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 말이 현재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부터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를 경제적인 토대와 이에 기반한 상부구조로 설명하였는데,이데올로기는 바로 상부구조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계급에 의해 결정되며 그런 까닭에 당연히 당파성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성격을 띠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지배적 이익을 위해 사회구성원에게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제하거나 자발적 복종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비롯한 피지배계층도 지배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피지배계층 또한 이데올로기적 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본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기 위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저항담론으로 제시하게 되었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세계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 밀실과 광장의 이데올로기

대단히 불행한 일이지만 20세기 한반도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서로 경쟁하고 투쟁하는 세계적인 공간이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이 갈등은 해방 이후에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는데 이러한 체제 갈등과 경쟁 속에서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하기에 이른다.

이데올로기를 통해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흐름이나 반대로 이데올로기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지향하던 세력이나 개인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에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1960년.

이데올로기의 경쟁에 지쳐버린 한 개인이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로 최인훈의 작품 「광장」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명준'이다.

1960년은 한국사회에 자유를 갈망하는 분위기가 대단히 팽배하던 시기였다.

독재정권이 퇴진했고,4·19혁명은 값진 희생 덕분에 정치적으로 진보의 가능성과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불행히도 기존의 정치세력들이 갑자기 폭발한 자유의 에네르기를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역설적으로 군사독재의 길을 열어주었지만 분명 60년은 자유에 대한 욕망이 곳곳에서 분출하던 시기였다.

최인훈의 「광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 이명준은 철학과 학생으로 아버지의 친구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그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대남 방송에 등장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불려가 구타를 당하게 된다.

한마디로 남한 사회는 그를 빨갱이로 몰아붙였고,이명준은 이를 계기로 남한의 개인주의적이고 폐쇄된 밀실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월북하기에 이른다.

그의 마음 속에는 '밀실' 속에서 사적 이익만을 탐닉하는 퇴락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그와 동시에 '광장', 다시 말해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묘한 동경도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준의 눈에 비친 북한 사회는 활기차고 정의로운 공동체적인 '광장'이 아니라 명령과 복종만이 남아서 개인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되는 사회였다.

심지어 은혜와의 사랑마저도 당의 명령에 의해 은혜가 모스크바로 떠나며 좌절하고 만다.

가장 사적인 이성 간의 '사랑'도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통제사회였던 것이다.

이처럼,이명준은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을 시도했으나,그 어디에서도 삶의 진실을 발견하지 못한 채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마저 이명준에게는 그저 허위의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하나의 기제로서 작용할 뿐 실제 개인의 삶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침내 이명준은 전쟁에 뛰어든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에서도 새로운 삶을 발견하지 못한다.

또한 불행하게도 전쟁통에서 만난 은혜마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 끝내 전사하고 만다.

결국 이명준은 포로가 된다.

⊙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다음 인용된 부분은 이명준이 포로송환 과정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장면이다.

이를 보면서 이명준이 선택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해보자.

초대 교회의 고지식한 정열과 알뜰한 믿음을,현대 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듯이,비록 코뮤니즘이 겉으로는 넓은 땅을 거느리기에 이르렀지만,그 창시자들의 바르게 생각하고 착하게 살렸던,고지식한 마음은 없어진 지 오래다.

유럽 사람들의 믿음에서 헤겔의 철학이 달콤한 아편이요 씻어 낼 수 없는 독소가 된 것처럼,이명준에게 있어서,스탈린주의 사회에서 살아 보았다는 겪음은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굿마당에서 그들은,헛것을 섬김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제 머리로 참을 헤아림이 아니라 푸닥거리에 기대는 곳이었다. (중략)

그렇다면? 남녘을 택할 것인가?


명준의 눈에는,남한이란 키에르케고르 선생 식으로 말하면,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 아닌 광장인 것이었다.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

다만 좋은 데가 있다면,그곳에는,타락할 수 있는 자유와,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중략)

가난과 악의 왕초들을 찾기 위하여,나누어지고 얽히고 설킨 사회 조직의 미궁 속을 헤매다가,불쌍한 인민은,그만 팽개쳐 버리고,예대로의 팔자풀이집,동양 철학관으로 달려가서,한 해 토정비결을 사고 만다.

-최인훈,「광장」

결국 이명준이 선택한 것은 사회주의나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곳이 아닌,중립국 행이었다.

인용에서 보듯 이명준에게 이데올로기는 '헛것'이거나 '게으르고 타락할 수 있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작품의 말미에 그는 인도로 가는 타고르호에서 정황상 '바다'로 뛰어내린다.

그는 왜 바다로 뛰어내렸을까.

그것은 그저 의미 없는 자살이었을까. 단순히 비극적인 결말이었을까.

작품의 끝부분에는 이명준이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은혜와 은혜의 뱃속에서 자랄 아이에 대한 사념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큰 새'와 '꼬마 새'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그러고 보니 '바다'는 주인공 이명준이 지향했던 '광장'인 동시에 개인이 아무런 감시와 통제도 받지 않은 채 날아다닐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그가 '바다'를 선택한 것은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를 선택하고자 했던 하나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세계에는 실은 무수히 많은 이데올로기들이 존재한다.

자유주의,사회주의뿐만이 아니라 민족주의,국가주의,여성주의 등 온갖 주의로 불릴 만한 것들은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개인의 선택이나 권리를 방해하거나 훼손할 수는 없다.

이데올로기란 궁극적으로는 한 개인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