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

⊙ 포퓰리즘은 인기영합주의?
[강영준 선생님의 소설이야기] 11. 김정한「사하촌」
최근에 종종 신문기사나 방송보도를 보면 '포퓰리즘적'이라는 말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얼마 전 촛불집회나 뉴타운 개발과 관련해서도 '포퓰리즘적'이라는 표현을 들을 수가 있었다.

서로 상반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지만 모두 '포퓰리즘적'이라는 비판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대개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포퓰리즘을 인기영합주의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포퓰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특권 엘리트와 대립되는 보통 인민(또는 민중· common people)의 이해관심,문화적 특성,자발적 감정들을 강조하는 정치적 운동'(The Encyclopedia of Democracy,London,1995)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이 어쩌다가 인기영합주의를 가리키는 저급한 말이 되었을까.

1차적으로 그것은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인기 있는'이라는 'popular'라는 말과 은근히 결합시켰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역사적으로 인기영합주의적이었던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포퓰리즘도 한몫 거들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퓰리즘이 지닌 모든 의미를 인기영합적으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자칫 포퓰리즘으로 나타난 인민이나 민중의 요구를 부정적으로 매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포퓰리즘은 민주주의가 도입되지 않았거나 불완전하게 도입된 가운데 특권화된 제도나 특권층들이 제도적 기득권을 선점하고 공고화시킬 때 이에 반해 나타난다고들 한다.

사회적 이익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대다수 인민들이 연합하여 정치적 단결을 도모하는 경우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에는 정치적 이념이나 혁명사상과 같은 세련된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전 단계로서의 불합리한 기존체제에 대한 저항성이 주를 이룬다.

서두가 조금 길었는데 우리 근대 소설에서도 이러한 포퓰리즘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비록 민주주의를 꿈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특권층의 제도적 기득권에 대항하여 인민들 스스로가 연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는 작품,바로 김정한의 「사하촌」이다.

⊙ 기득권과 특권층에 맞붙다

「사하촌」은 작품 제목대로 '보광사'라는 절에서 땅을 부치고 사는 소작농의 이야기이다.

절 아래 마을인 성동리의 농민들은 대부분이 보광사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이다.

원래 이들은 땅을 소유한 자작농이었으나 승려의 꼬임에 넘어가 절에 논을 기부하고 이제는 소작하는 신세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절에서는 불공을 드린다고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면서 무거운 소작료를 부과하는 횡포를 부린다.

또 지독한 가뭄 때문에 논에 물을 대는 일로도 여기저기 물싸움이 일어나고 인심은 갈수록 흉흉해진다.

아무리 기우제를 지내고 절에서 불공을 드려도 효험은 없다.

당연히 그해 가을은 추수할 것 하나 없이 흉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광사에서는 예전과 똑같이 소작료를 요구하고,성동리 농민들은 절에 찾아가 선처를 호소하지만 종국에는 거절당하고 만다.

이후로 논에는 '입도 차압'이라는 팻말이 붙게 되고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하자 성동리 농민들은 빈 짚단을 들고 보광사로 향한다.

위의 줄거리에서 보듯이 당시 다수의 소작인들은 사회적 이익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절간에 있는 승려들은 중생제도를 실천하기보다는 승려라는 특수한 신분과 권리를 활용하여 자기 이익을 부풀리기에 앞장섰고 민중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한 당시 어느 지식인도 민중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않았다.

결국 견디다 못한 소작농들이 연대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 이름 없는 민중의 저항

아래 인용된 부분을 보면서 당시 소작인들의 모습이 어떻게 포퓰리즘과 맞닿아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튿날 아침,동네 사람들은 애터지는 말로써 그들의 뒤를 염려했다.

무심한 가을비는 진종일 고서방이 지어 두고 간 벼이삭과 차압 팻말을 휘두들겼다.

무슨 불길한 징조인지 새벽마다 당산 등에서 여우가 울어 대고,외상 술도 먹을 곳이 없어진 농민들은 저녁마다 야학당이 터지게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하루 아침, 깨어진 징소리와 함께 성동리 농민들은 일제히 야학당 뜰로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열음 못한 빈 짚단이며 콩대,메밀대가 잡혀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긴 줄을 지어 가지고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해 보려고 묵묵히 마을을 떠났다.

아낙네들은 전장에나 보내는 듯이 돌담 너머로 고개를 내가지고 남정들을 보냈다.

만약 보광사에서 들어주지 않는다면…하고 뒷일을 염려했다.

그러나 또쭐이,들깨,철한이,봉구-이들 장정을 선두로 빈 짚단을 든 무리들은 어느새 벌써 동네 뒤 산길을 더위 잡았다.

철없는 아이들도 행렬의 꽁무니에 붙어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들어댔다.

-김정한,「사하촌」


인용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논'에는 이미 차압 팻말이 붙여진 상태이다.

'입도 차압'.

이 말은 추수하기도 전에 곡식을 압수해 간다는 말이 아닌가.

이런 상황 속에서 농민들은 부당한 특권층의 착취에 대항하여 자발적으로 야학당에 모여들게 되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체 논의를 거쳐 보광사를 찾아가기로 결정짓는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당대의 여러 소설과 달리 이 작품에는 이들을 이끄는 뚜렷한 지식인라든지,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이 창작될 1930년대 중반 우리 소설에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내용의 소설이 많이 창작되었었다.

KAPF 계열로 일컬어지는 사회주의 문학만 해도 아주 활발하게 창작되고 향유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설 속에는 무지한 민중이나 노동자를 이끄는 지식인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리얼리즘 소설의 소위 '문제적 개인'이 이러한 지식인이나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위 작품에는 민중들을 딱히 이끄는 지식인은 물론이거니와 이데올로기라든지 사상이 개입된 흔적이 전혀 없다.

다시 말해 이들을 이끄는 것은 이름 없는 민중 그 자신들이다.

앞서 포퓰리즘이란 특권 엘리트와 대립되는 보통 인민(민중)의 정치적 운동이라는 정의를 생각해보라.

김정한의 「사하촌」이야말로 순수한 포퓰리즘의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포퓰리즘의 한계를 넘어서서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포퓰리즘은 역사적으로 나름대로 그 역할을 해왔었다.

조금 부풀려 말한다면 어쩌면 프랑스 대혁명이나 우리 근현대사에 있었던 학생운동,시민운동도 포퓰리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포퓰리즘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민중들의 요구는 나타낼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사회를 유지해나가는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또한 처음에는 동일한 목적을 위해 민중들이 결속하지만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받아들여지는 순간 연대는 쉽게 소멸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이후에 반드시 일정한 시스템을 갖춘 민주주의의 형태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말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 포퓰리즘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의가 지나치게 억압당할 때 민중들은 다시 견고한 결속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결코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퓰리즘이 나타나지 않도록 사회적 이익이 구성원 다수에게 돌아갈 수 있게 정치경제적인 시스템이 마련되는 것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