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능동적인 의사소통을 가르치는 것이다
[한준희 선생님의 재밌는 논술세상] ② 학교에서 통합교과논술 수업을
토요 휴업일 오전 8시30분.

아무도 없어야 할 교무실이 다소 소란하다.

토요 휴업일마다 실시되는 통합교과논술 수업 때문이다.

금요일 저녁 늦게까지 토의하고 준비한 통합교과논술 자료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교사들끼리 수업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자료들이다.

매일 만나서 수업할 내용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문제를 만들었다.

벌써 2년 가깝게 수업해왔기 때문에 전반적인 과정은 이미 익숙하다.

처음에는 힘들다던 교사들도 요즘은 다소 편안한 느낌으로 수업시간을 기다린다.

9시부터 수업 첫 차시가 시작된다.

전체 수업은 4차시로 구성되어 있고 각 차시는 90분이다.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로 온다.

오늘은 대구지역 교사들을 대상으로 시범공개수업을 실시하기 때문에 수업 참관을 위해 타 학교 교사들도 도착한다.

통합교과논술반은 4반(인문반 2반,수리반 2반),각 반은 15명 내외로 구성되어 있다.

9시 가까이 되자 아이들은 각각 지정된 교실로 들어간다.

9시에 1차시가 시작된다.

교사(사회 담당)가 오늘 논술수업의 전반적인 과정을 소개한다.

오늘 함께 고민할 문제는 '조선후기를 통해 본 세계화 대응 방식'이다.

3개 조로 나누어진 아이들이 차례로 자신들이 조사한 내용을 발표한다.

PPT를 활용하여 조별로 자신들의 생각을 개진하고 다른 조 아이들의 질문에 답변한다.

조사한 내용은 대학교 전공 레포트 수준이다.

이미 자료 조사와 발표에 익숙한 아이들의 모습에 참관하는 교사들도 감탄한다.

아이들의 발표가 끝난 뒤 교사가 북벌과 북학,우리 나라의 개방화 과정,최근의 세계화와 관련된 수업을 실시한다.

그 다음 읽기 자료를 아이들에게 배부한다.

읽기 자료는 병자호란 당시의 상소문,북학 관련 자료,세계화 관련 자료 등 4개로 되어 있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 아이들에게 자신이 분석한 자료를 발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게 한다.

토론의 방식은 찬반논쟁보다는 자유토론으로 한다.

다소 거칠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기발하다.

타 학교 교사들이 지켜보고 있어도 아이들은 아무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조별로 토론을 하고 교사는 조별로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의 거친 의견을 정리한다.

그 다음 아이들은 주어진 논제와 관련된 발표를 한다.

다른 조의 아이들이 발표 내용에 의문이 생기면 질문하고 발표조가 대답한다.

90분의 시간이 짧다.

2반(인문반)은 다른 교실에서 동시에 시간 수업이 이루어진다.

수업의 과정은 동일하다.

아이들은 조별로 북학,박지원의 문학,실학,열하일기 등을 발표하고 질문과 대답을 반복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교사가 읽기 자료를 배부한다.

읽기 자료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한 부분이다.

사회과에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수업이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에 개방에 관해 고민한 지식인 박지원의 탐색을 통해 현재 우리들의 대응 방식을 찾는 과정이다.

'읽기 자료'의 책략적인 독해에 관해서도 함께 고민한다.

3반(수리반)은 자연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들이다.

수리반 주제는 '물의 본질과 사용 방법'이다.

교사(수학 담당)가 함수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풀게 한 다음 자신의 방식을 칠판에 나와서 설명하게 한다.

다른 아이들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본다.

교사는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가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탐색한다.

4반(수리반)도 자연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교사(화학 담당)는 수리과학논술에 관한 일반적인 대응 방식을 설명하고 물과 관련된 자료를 배부한다.

서로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물의 본질과 소중함에 대해 인식한다.

1차시가 끝나면 아이들은 20분 동안 휴식을 취한다.

2차시 수업 방식은 1차시와 동일하다.

단지 1반은 국어 교사,2반은 사회 교사,3반은 화학 교사,4반은 수학 교사로 바뀐다.

점심시간 이후 3차시는 글쓰기 시간이다.

교사가 3~4개 정도의 논제가 담긴 문제지를 배부한다.

아이들은 글쓰기를 시작한다.

각 논제는 300자 또는 400자 정도이고 마지막 문제는 통합문항으로 1200자가량의 분량이다.

다소 분량이 많은 듯하지만 오전 수업을 통해 거의 사고의 방향을 정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별 무리 없이 논술문을 작성해나간다.

4차시는 첨삭 및 종합토론 시간이다.

1,2반은 인문반,3,4반은 수리반으로 모두 모여서 진행한다.

먼저 친구가 쓴 글을 서로 돌려가면서 읽는다.

미진한 부분이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서로 의견을 나누고 더 어려운 부분은 2명의 교사에게 질문을 한다.

90분으로 예정된 시간이 훌쩍 지나고 5시가 넘는다.

아이들에게 작성한 논술문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도록 안내하고 수업이 끝났다.

물론 홈페이지에 올린 논술문은 교사들이 댓글을 통해 간단하게 첨삭을 해준다.

그날 논술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아이들이 올린 논술문은 물론 수업을 준비해주신 교사들에 대한 고마움의 글로 가득했다.

하루 종일 수업을 했는데도 아이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다.

자신이 바로 수업의 주체였기 때문이다.

1학기 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토론이 소수의 아이들의 발언으로 채워졌지만 이제 대부분의 아이가 토론에 참가한다.

논술수업은 아이들에게 능동적인 의사소통을 가르친다.

학교교육이 논술을 담당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학교 논술교육,정말 가능하다.

아니 가능함을 넘어서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한준희 대구 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