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세상과의 끊임없는 대화

이번 주부터 '재밌는 논술세상'이란 주제로 대구 경명여고 한준희 선생님의 글을 연재합니다.

한 선생님은 현재 경명여고에서 국어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구 통합교과논술 지원단 팀장을 맡아 학생들의 논술 지도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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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 선생님의 재밌는 논술세상] ① 망원경? 양탄자? 사과?
통합교과논술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까?

하루에 몇 권씩 논술과 관련된 책자가 쏟아진다.

하지만 슬프게도 실질적인 논술 수업 방식에 관한 내용은 찾기 힘들다.

자료만 무진장하고 자료를 활용하는 방안은 별로 없다.

통합교과 논술교육은 수업 방법론이 중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계속 이야기하겠지만 논술의 가장 중요한 교재는 교과서이고 가장 중요한 수업은 정규수업이다.

통합교과논술의 핵심은 주장과 주장에 대한 근거이다.

그러한 수업은 교과서를 통하여 정규수업 시간에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주장과 근거만 명확하다면 그 논술문은 이미 절반이 성공한 것이다.

그러면 이런 수업은 어떨까?

나름대로 멋진 논술 수업의 예가 아닐까?

문학 시간에 김남조의 <너를 위하여>라는 시를 수업하려다가 갑자기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옛날 이야기 한 자락 할까?"

애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애들은 공부 말고는 다 좋아한다.

항상 까불대는 경이가 "새~앰,사랑 이야기 해 줘요" 한다.

"사랑 이야기,좋지."

애들은 잠시 전까지만 해도 풀렸던 눈들을 반짝인다.

수업시간만 되면 책상과 얼굴 맞춤을 하는 선이까지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정말 이럴 땐 당혹스럽다.

왜 아이들은 제도권 교육을 싫어할까?

교과서를 싫어할까?

아니다. 아이들은 교과서를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일방통행의 수업 방식이 지겨울 뿐이다.

계속 이야기로 들어가자.

"옛날 아라비아 어느 나라에…" 하는데 "우~" 하는 소리가 난다.

"새~앰 첫사랑 이야기 해 달라니까요!!!"

일단 이런 반응은 무시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삼형제가 살고 있었어.

부모로부터 유산을 받았는데,첫째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볼 수 있는 망원경,둘째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양탄자,막내는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는 사과가 그것이었지."

몇몇 아이들은 '저거 아는 이야기인데' 하고 수군거린다.

역시 무시하고 계속한다.

"그런데 이웃 나라의 공주가 병에 걸린 거야.

그것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에 말이야.

그래서 아버지인 왕은 왕궁 대문 벽에다가 방을 붙였지.

공주의 병을 고치는 사람과 공주를 결혼시키겠노라고.

첫째가 우연히 망원경을 보다가 그 방을 발견하고 읽었지.

그리고 둘째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갔어.

물론 막내는 자신의 사과로 공주의 병을 고쳤어.

그런데 왕은 고민에 휩싸였어.

세 사람 중에서 누구를 공주의 남편으로 삼아야 하지?

한 사람이라도 없었다면 공주는 죽었을 텐데.

자신이 결정하지 못한 왕은 공주에게 그 선택을 하도록 했어.

너희들이 공주라면 누굴 선택할 거야?"

내가 이 이야기를 애들에게 한 것은 막내를 선택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김남조의 <너를 위하여>란 시와 결부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애들은 전혀 다른 대답을 한다.

사실 올해는 공부를 못해서 그렇지 삶 자체에 대해 냉소적인 아이들은 별로 없다.

그래도 그 중에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비판적인 성향을 지닌 정아가 말한다.

"그런 망원경과 양탄자,사과가 어디 있겠어요? 그건 이야기일 뿐이라고요."

나도 모르게 조금 답답해진다. 그래도 대답한다.

"물론 이야기는 허구야.

하지만 허구가 사실이 아님을 의미하지만 거기에도 삶의 진실이 있어. 그걸 말하자는 거지."

늘 긍정적이며 미소를 머금고 살아가는 수영이가 대답한다.

"전 첫째라고 봐요. 아무리 다른 것들이 있었지만 처음에 보지 못했다면 공주는 죽었을 거잖아요."

맨 뒤에 앉은 정수가 중얼거린다.

이 아이는 소극적이어서 거의 일어나 발표한 기억이 없다.

'피이,그런 점에서야 둘째나 셋째도 마찬가지잖아.

양탄자가 없으면 가지 못했을 것이고 사과가 없었으면 병을 고치지도 못했을 거니까.'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정수에게 금방 말한 내용을 일어나서 발표하라고 하자 "아니요" 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그때 정수 옆에 앉은 향미가 정색을 하고 일어선다.

"내 생각은 너희들과 달라.

망원경과 양탄자는 다시 사용할 수 있잖아.

그런데 막내는 사과를 공주에게 먹여 버렸잖아. 막내가 불쌍해."

앞자리에서 듣고 있던 독서광인 지인이가 일어선다.

"맞아. 나라면 막내를 택하겠어.

막내는 자신의 모든 걸 공주에게 주었잖아. 그게 사랑이잖아."

지인이는 스스로 자신의 대답에 흡족해한다.

그런데 마음 한켠이 아리다.

지인이라면 <탈무드>를 읽었을 것이고,따라서 그 아이의 대답은 책의 내용을 가져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흡족해하는 표정도 그걸 증명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내심 이제 수업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편안하다.

그런데 듣고 있던 수영이가 말한다.

"그건 가식이야.

난 빈털터리인 막내 싫어.

망원경이나 양탄자를 가진다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잖아.

우리 솔직해지자고."

지인이와 친한 친구인 미리가 지인이 편을 든다.

"그래도 막내를 택할 거야.

내가 공주니까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 아니니?"

수영이나 미리의 주장에 전제된 것은 사실 돈이다.

그런 점에서 둘의 주장은 별로 차이가 없다.

많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아이들의 관심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물론 돈이다.

슬프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친 가장 중요한 교육이었던 셈이다.

제일 뒤에 앉아 있던 경희가 갑자기 소리친다.

목소리 하나는 정말 크다.

"새~앰,꼭 한 명만 선택해야 해요? 세 명 모두 데리고 살면 안 되나요?"

교실은 환호성과 웃음으로 가득 찬다.

어떤 애들은 책상을 치면서 웃는다.

졸거나 엎드린 아이는 하나도 없다.

이제 김남조의 <너를 위하여>란 시와 결부시켜 마무리하려는데 혜린이가 손을 들고 일어선다.

수업시간에 거의 말하지 않는 얌전한 아이다.

"새~앰,저도 할 말이 있는데요."

"그래. 말해 보아라."

"난 결혼하지 않아요."

교실에는 갑자기 어색한 기운으로 가득 찬다.

아이들의 눈은 모두 혜린이를 향하고 있다.

"왜?"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얼마 전에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말을 그 아이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린이의 대답은 명쾌했다.

"난 선택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사실 세 명 모두 방을 보고 왔잖아요.

아픈 사람이 공주가 아니었다고 해도 왔을까요?

공주의 남편이 된다니까 그렇게 한 거잖아요.

누구도 공주를 사랑하고 있다고 볼 수 없어요.

꼭 선택하라면 한 번 더 시험을 해 보고 그 중 진실한 사람을 선택할래요.

나아가 더 중요한 것은 공주가 사랑하고 있느냐는 것 아니겠어요?

선택의 주체는 공주니까요."

잠시 대답할 말을 잊어버린다.

역시 난 애들보다 여러모로 부족하다.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애들의 사고는 흘러간다.

그 사고는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니다.

진짜로 잘못된 것은 한 방향으로 사고를 강요하는 현재의 교육제도 자체이다.

어렵사리 한 시간을 정리한다.

"너희들 생각이 모두 좋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하는 유태인들의 생각은 아마 그랬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거니까.

아마 유태인들은 자식들에게 희생적인 사랑의 소중함을 가르치려 했던 모양이다.

막내는 자신이 지닌 모든 걸 주었으니까,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했으니까.

진실한 사랑은 희생이 내포되어 있으며 그것이 요구되고 있다는 걸 말하려고 했을 게다.

'너를 위하여 / 나 살거니 /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 이미 준 것은 / 잊어버리고 /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라고 노래한 김남조 시인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애들은 모두 '예'하고 대답한다.

혜린이까지 그렇게 대답한다.

그들은 '예'에 익숙하니까.

모두 공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대답하도록 교육받았으니까.

하지만 사실 이번 시간의 교사는 내가 아니라 이미 아이들이다.

누군가는 또 말할 것이다.

그 정도 수업은 나도 한다. 그게 무슨 논술수업이냐고.

그렇다. 그게 논술 수업이다.

따라서 논술수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논술지원단을 운영하면서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말한 내용이 바로 누구나 논술수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단지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투입하고 강요하는 그런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 중심에 있는 수업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방법만을 배우지 않는다.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운다.

이른바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와 방법을 체득한다.

논술은 결국 나와 세상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실상 아주 가까이에 있다.

한준희 대구경명여고 교사 tgnons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