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문·이과 교차 수업 의무화 등 밑그림 제시

"어설픈 제너럴리스트만 양산할 것" 우려의 눈길도
[기획] 문과·이과 벽을 허문 '자유전공학부' 희한하네!!
2009학년도 대학 입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유전공학부'의 등장이다.

'자유전공'이 전공이라니 이름 참 희한하다.

무엇 하는 학과인지 알 수가 없다.

무엇을 배울지도 아직 모르겠는데 곧 정시모집 지원이 시작된다.

누구는 법대 경영대만큼 인기를 끌 것이라 하고 누구는 그런 애매한 성격의 학과는 결국 방만한 대학생활을 조장할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과연 자유전공학부가 무엇일까?

올해 자유전공학부를 설치한 대학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비롯해 건국대·경희대·성균관대·이화여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 등 30여곳에 달한다.

자유전공학부는 법대가 내년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전환되면서 남게 된 학부 정원으로 만들어진 과정이다.

정해진 전공 없이 융합 학문을 공부하고 2~4학년 때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데다 장학금 혜택도 많아 수험생들이 몰리고 있다.

자유전공학부는 수시에서부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 수시2학기에서 자유전공학부의 경쟁률은 인문계 11.9대1,자연계 7.6대1로 평균 경쟁률(6.9대1)을 훌쩍 넘어섰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무려 43.6대1과 55.2대1까지 경쟁률이 치솟았다.

고려대와 연세대 일반전형 경쟁률은 각각 30.9대1과 48.8대1이었다.

실제로 입시학원들은 자유전공학부의 합격 예상 수능점수가 경영대와 사회과학계열의 중간 정도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밑그림 제시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대가 자유전공학부의 대략적인 밑그림을 내놔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공개한 교과과정안에 따르면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은 문·이과 교차수강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나왔다면 대학에서는 수학·물리학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고, 이과를 나왔다면 글쓰기·사고와 표현·논리와 비판적 사고 과목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것.

또 제2외국어와 고전 수업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한다.

또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은 전공과정을 자기가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자신만의 수업계획서를 만들어서 제출하면 이를 학교 측에서 정식 '전공'으로 인정해주는 것.

이와 함께 방학 기간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 통섭 영역을 주제로 토론식 수업과 영어 강의를 병행하는 '주제탐구 세미나' 등이 교과과정에 포함돼 있다.

학부 전임 교수들이 소수의 학생들로 구성된 두세 개 팀을 맡아 수년간 연구 프로젝트와 졸업논문 지도, 학생의 전공 설계에 대한 조언을 담당하는 '캡스톤' 설계도 도입할 예정이다.

해외인턴과 자원봉사, 연수 등을 담은 해외체험 프로그램도 교과과정에 들어 있다.

서울대는 1일 평의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이런 설계가 다양한 학문을 두루 섭렵해 학과의 장벽에 갇히지 않은 창의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강명구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언론정보학과 교수)은 "학생들이 '기초'를 제대로 쌓을 수 있도록 만든 커리큘럼"이라고 설명했다.

자유전공학부의 슬로건이 '경계를 넘어 미래로'라는 것도 다양한 학문을 창의적으로 섞어내는 잡종, 믹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어설픈 제너럴리스트 양산' 우려도 많아

하지만 이 같은 자유전공학부가 가르치려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아 자칫하면 '어설픈 제너럴리스트'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많다.

제너럴리스트는 특정 분야에 전문이라기보다는 두루두루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실제 지난달 19일 열린 인문·사회·자연대 교수를 위한 자유전공학부 설명회에 참가한 교수들은 '학부 수준에서 융합학문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제대로 쌓인 지식도 없이 고교 과정까지 쌓인 지식만을 가지고 이를 융합하고 섞으려고 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것.

따라서 대학 학부에서는 한 분야에서만이라도 지식을 차분하게 쌓고 석사 이상에서 융합을 시도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자유전공학부가 자칫하면 '프리 로스쿨(로스쿨 전 단계)'이나 '예비 의학전문대학원'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서울대의 경우 학부 수준에서 법대와 의대가 사라진 이상 로스쿨·의학전문대학원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사실상 '고시원'처럼 학교생활과 수험 준비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외연수 등의 비용을 학교가 일정 부분 지원할 경우 자칫하면 학내 타 학과와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비판 여론도 강하다.

⊙ 창의적·진취적이라면 도전해볼 만

자유전공학부는 제너럴리스트를 양산할 수도 있다.

대학생의 치기와 얕은 지식이 어울리면 그야말로 '겉멋'만 들고 제대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얼치기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8학기, 4년이 지나고 졸업할 무렵 일부 학생들은 '내가 무엇을 배웠는가'를 고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저널리스트로서 '독서광'으로 잘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는 "낮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와 달리 스페셜리스트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도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결국 자기 분야만 잘 아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움직이고 있다고도 했다.

자유전공학부가 이렇게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토양이 되어줄지, 아니면 명문대를 나왔다는 간판만 있을 뿐 실속은 없는 허당을 키울지는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학생의 의지가 성과를 가장 크게 좌우할 것이라는 점이다.

선배도 없고 앞서간 이들의 발자취도, 책도 없다. 과외를 시켜줄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학생 스스로 의지가 강하고 실행력이 있어야 한다.

창의적·진취적인 성격이라 생각한다면 도전해볼 만할 것이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