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력 약한 국가 공격·파생상품 등 초단기 매매 '눈총'
[Make Money] 헤지펀드는 선진 투자수단? 아니면 금융위기 부추긴 투기꾼?
금융위기 소용돌이가 전 세계를 덮치자 헤지펀드가 또다시 눈총을 받고 있다.

막대한 자금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을 내는 헤지펀드가 금융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의혹이 외환위기 이후 재차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신흥 시장에서 가장 공격에 취약한 국가로 러시아 브라질과 함께 한국을 지목하면서 헤지펀드 악령이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반면 헤지펀드는 선진 투자기법을 활용해 주가 급등락기에도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수단이란 주장도 적지 않다.

내년 말 헤지펀드 도입을 예고한 국내에서도 이같이 헤지펀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헤지펀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 헤지펀드란

헤지펀드(hedge fund)는 보통 100인 미만의 거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아 주식이나 채권 통화 파생금융상품 등에 투자해 수익을 배분하는 회사다.

일반 주식형펀드와 달리 다양한 투자기법을 동원해 손실위험을 회피(헤징)하며 수익을 노리는 것이 특징이다.

'산울타리'나 '경계'란 뜻을 가진 헤지(hedge)란 단어는 헤지펀드에서 '다른 상거래로 한쪽 손실을 막기'란 의미를 가진다.

헤지펀드의 가장 일반적인 매매기법인 '롱쇼트(long/short)' 매매는 헤지란 의미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롱쇼트 매매는 주가 전망이 안 좋은 주식은 빌려 매도하고(쇼트 포지션),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시장지수 등에 대해서는 동시에 매수 입장(롱 포지션)을 취해 비교적 안전하게 수익을 노리는 투자기법이다.

보통 '롱 포지션'만 취하는 일반 주식형펀드와 달리 '쇼트 포지션'이란 안전장치를 걸어둔 셈이다.

보통 주가가 올라야 수익을 거두는 일반 펀드와 달리 일부 헤지펀드가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헤지펀드는 활동범위와 투자기법에 따라 △두 개 이상의 투자대상에 매입과 매도 입장을 동시에 취해 손실위험을 최소화하는 롱쇼트 펀드 △세계 각국의 경제상황이나 환율 금리 등을 분석한 뒤 수익기회가 포착되면 레버리지(자산을 담보로 대규모 차입을 일으키는 것)를 이용해 투자하는 글로벌 매크로펀드 △과대평가된 주식을 차입해 매도한 뒤 가격이 하락하면 싼 값에 되사 갚아 차익을 남기는 공매(空賣)펀드 등으로 나뉜다.

⊙ 투기꾼으로 몰린 헤지펀드

헤지펀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전 세계 헤지펀드의 규모는 웬만한 국가의 외환보유액을 뛰어넘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2006년 전 세계 자산 규모는 약 1조6000억달러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2123억달러(올 10월말 기준)의 8배에 가깝다.

운용 규모도 상당한데 이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금융회사로부터 원금의 2~5배까지 과도하게 자금을 빌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자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한 국가를 공격해 이득을 취하거나, 선물이나 옵션 같은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해 '치고 빠지기식'의 초단기 투자를 일삼는 헤지펀드들이 적지 않다.

이로 인해 헤지펀드는 금융시장이나 외환시장을 교란하는 국제적인 투기꾼으로 찍혀 있다.

과거 대표적인 헤지펀드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등의 행적은 이런 악명을 드높였다.

1992년 퀀텀펀드는 영국 파운드화가 고평가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10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화를 내다팔면서 파운드화 폭락에 따라 큰 이익을 봤다.

퀀텀펀드의 매도가 파운드화 폭락을 직접적으로 불러온 것인지 규명하기 힘들지만 헤지펀드의 막대한 자금력이 영국 중앙은행을 상대로 승리한 것으로 비쳐졌다.

1997~1998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가의 위기 당시에 헤지펀드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를 악화시킨 주범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지난 10월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졌던 것도 이면에는 헤지펀드들이 실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투자손실과 이에 따른 고객들의 잇따른 환매 요구로 인해 국내 주식을 서둘러 패대기치고 달러를 사재기하는 과정에서 금융불안이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얼마전 국제 금융위기 속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한 아이슬란드 사태도 일부 헤지펀드에 의해 촉발됐다는 시각이 많다.

급기야 미국 의회는 최근 내로라하는 헤지펀드 대가를 의회 청문회로 불러 이들이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하기도 했다.

⊙ 내년 헤지펀드 국내 도입 관심

헤지펀드는 현재로선 국내 설립이 불가능하지만 우리나라도 내년 말 헤지펀드 도입을 예고한 상태다.

금융당국은 국내 헤지펀드 도입을 위한 첫 단계로 내년 말부터 은행 증권사 보험사 연기금 등 적격 투자자에 한해 파생상품 투자한도를 폐지하는 등 규제 완화로 헤지펀드를 부분적으로 허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정부의 헤지펀드 양성화 방침에 따라 하나대투증권과 한국금융지주 우리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시장 선점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이미 해외에 운용사를 설립해 직접 헤지펀드 운용에 나선 상태다.

운용사에서 실력을 닦은 쟁쟁한 펀드매니저들 중 상당수가 개인적으로 독립해 헤지펀드를 표방하는 소규모 사모투자회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헤지펀드가 금융위기를 키운 장본인으로 지적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다시 강해지고 있어 국내 헤지펀드 도입이 예정대로 이뤄질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많다.

선진적인 대안투자 수단이란 긍정적인 면보단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란 꼬리표가 부담스러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헤지펀드 도입은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헤지펀드는 투기 성향을 지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헤지펀드는 대부분 고위험·고수익보다는 시장의 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해 항상 시장평균보다 웃도는 안정적인 절대수익을 추구해 좋은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진형 한국경제신문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