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를 지원한다고 교육양극화가 해소되진 않는다

【문제 1 해제】

잘 알다시피 교육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민감한 화두 중 하나이다.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의 문제는 교육을 신분 유지 및 상승의 근간으로 여기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예언하는 불길한 징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득격차는 쉽사리 줄여지지 않고 있으며,실제로 어떤 식으로 교육 격차를 줄여야 하는지 논란이 많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교육 격차의 고민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우선 문제 조건에 따라 제시문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제시문이 단순한 주장과 근거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어떤 것 하나만 이해했다고 전체가 이해되지 않는 성질의 것들이니 특히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가)의 경우 문화자본인 교육의 향유 정도로 인하여 교육양극화가 고정되다 보면 부와 권력의 대물림 현상이 일어날 것이고,이를 막기 위해 예전부터 정부에서는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지금까지 추진되어 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정책들을 내놓고 있어 양극화 해소가 요원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 제시문은 과거의 정부와 현재의 정부정책을 비교하며 현재 정부의 정책이 교육양극화 문제의 해결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물론 EBS도 하고 있지만,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에서 왜 엉뚱한 짓을 하냐고 비판하는 것이다.

제시문 (나)의 경우 쿠즈네츠의 이론은 경제적 소득이 늘어날수록 소득의 불평등도는 종모양(∩)으로 된다는 것이다.

일정하게 상승하다가 (불평등이 심해지다가) 다시 떨어진다는(불평등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즉 전체적인 경제적 소득이 늘어나면 소득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뭐야,(가)의 교육양극화로 인한 가난의 대물림이네 뭐네 하는 소리 틀렸잖아!>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가 더 발달하면 오히려 소득의 불균형이 해소될 것이니 현재 소득의 불균형을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주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는 물론 학생들의 몫이다.

현재로서는 제시문 (가)와 (나)가 대립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뿐이다.

이제 가장 어려웠던 제시문 (다)를 보자.

첫 번째 문단에서는 막노동자와 교수들이 대립되는 것처럼,교수들과 경영자들도 대립한다.

그저 분화원리 속에서 위치에 맞게 배분되고 있을 뿐이지 한 사회를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고정적,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한다면 교수와 대학의 경영자들은 모두 한통속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는 또 분명 대립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단에서는 이와 같은 예를 바탕으로 이러한 개체 간의 차이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계급의 존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두 문단을 다시 종합정리하자면 "보수적인 전통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논지들을 내세우며 계급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차이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긍정할 수는 없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차이들의 공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를 해석하자면,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차이는 존재해. 하지만 분명히 사회적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몬소리지?

고정된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항!

결국 존재하는 공간이 다를 뿐이지 그 형태는 점선으로 산발적으로,개별적으로 존재하는구나!

계급이란 실체가 뭉텅이져서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

이렇게 되면 (다)는 (가)가 이야기하는 경제소득에 따른 교육격차의 문제를 애초에 전제로부터 붕괴시키게 된다.

계급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에 대해서도 (다)는 '계급이 없는데 경제소득이 늘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반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답안에 적을 필요는 없다.

알다시피 문제의 조건은 그저 (가)를 다른 (나)와 (다)를 통해 살펴보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답안을 작성한다면,우선 (나)의 경제적 소득의 증가에 따른 불평등도의 완화를 언급하며 국가적 발전에 포인트를 둘 것을 요청하고,(다)에 따라 대립적 개념인 계급이 아닌,개별적 차이에 따른 지원을 조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견을 바탕으로 교육불평등에 대한 해소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미 친절하게도 (가)에 과거 정부와 현 정부의 정책을 비교까지 해놓았으니 선택을 해도 좋고,참신한 아이디어를 새로 내놓아도 된다.

물론 그 근거는 (나)와 (다)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아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 2 해제】

수리논술과 비슷한 것이 등장하는 날이면 대부분의 학생이 우선 잔뜩 긴장부터 하게 된다.

수학을 못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문과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수준의 문제라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문과 학생들에게도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걱정마시라.

이미 올해 수시 문제에서도 경희대는 무난한 수준의 문제로 학생들을 이미 안심시킨 바 있다.

학생들이 안심하지 못하게 되면 곧 이어 지원율이 떨어질테니 학교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검증의 대상이 되는 (나)의 이론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쿠즈네츠의 이론은 경제적 소득이 늘어날수록 소득의 불평등도는 종모양(∩)으로 된다는 것이다.

일정하게 상승하다가(불평등이 심해지다가) 다시 떨어진다는(불평등이 완화된다는) 것."

그렇다면 소득이 늘어난 2005년은 2000년에 비해서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완화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지 살펴보자.

그걸 알아내기 위해 공식이 제시되어 있다.

소득불평등도=(최하위 20%의 평균소득+최하의 21~40%의 평균소득)÷(최상위 20%의 평균소득)

*주의사항 : 소수점 셋째자리에서 반올림하여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제시하시오.

① 2000년의 소득불평등도=(16+84)÷340=0.2941176… 이다. 반올림하면 0.29

② 2005년의 소득불평등도=(14+107)÷550=0.22

그렇다면 2000년에 비해서 2005년은 소득불평등도가 낮아졌다.

그러면 소득이 좀 더 균등하게 분배되었다는 뜻일까?

계산하는 도중에 깨달았겠지만 100/340과 121/550을 단순히 놓고 보아도 분자의 상승폭은 고작 21인 데 비해 분모는 210이나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최상의 20%의 경우 평균소득의 상승률보다 소득이 훨씬 더 많이 늘어난 것이다.

고로 이 공식에 의하면 소득불평등도가 낮으면 더 나쁜 것(불균형 심화)이고,높으면 더 좋은 것(불균형 해소)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에서 이야기하는 소득불균형도의 의미와 다소 달라진다.

쿠즈네츠가 말하던 소득불평등도란 말그대로 <어느 정도로 불평등이 심한가>를 말하는 것이며,여기 공식에 등장한 소득불평등도는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특정한 방법에 의해 수치적으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아무래도 문제를 다소 거칠게 낸 것이 아닌가 싶다.

정리하자면 어찌했든 2005년에는 2000년보다 소득불균형 현상이 심해졌다.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뜻이다.

꼭 수치적으로 비교하지 않아도 대충 곁눈질로도 2005년엔 최하위 20%의 소득이 오히려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평균소득은 늘었는데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다니 이게 뭐지?

그렇다면 소득이 늘면 불평등이 완화된다는 쿠즈네츠의 주장은?!

【문제 3 해제】

(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① 소득의 불균형이 교육 양극화를 불러오고,이것이 다시 빈부의 되물림을 불러온다.

② 그러므로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교육방송 수능체제를 도입하여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을 제공했다.

③ 하지만 최근에는 정반대의 정책들을 실시하고 있다.

여기서 형편이 가장 어려운 1분위 계층에 대해 사교육비를 전액 부담한다고 하면 국가는 이들에게 10만원 정도를 지원해주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큰 돈이다.

현재 1분위 계층의 사교육비 지출은 평균소득의 71%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사교육비 지출이 이 정도니 허리띠를 엄청나게 조이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분명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10만원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최상위 계층인 5분위의 49만원과는 5배의 차이가 나고,평균적인 사교육비인 23만8000원과도 2배 이상의 차이가 나게 된다.

투자에 따라서 생산이 달리 되는 일반적인 '인적자원 생산 시장'에서 이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1분위 계층은 10만원을 지원받는다고 기존에 투자되던 사교육비 10만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교육비가 20만원이 되어 3분위에 해당되는 계층의 사람들이 누리던 사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2분위 사람들 역시도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차피 처지는 비슷한데 누구는 지원받고 누구는 아슬아슬하게 지원을 받지 못하니 말이다.

그 사교육으로 훗날의 소득을 결정할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욕망이란 이런 것이다.

사람의 욕망은 결코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10만원을 지원해주며 교육양극화를 해소시킬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은 여러모로 취약점을 드러낸다.

차라리 (가)에서처럼 교육방송 수능체제를 더욱 강화하여 누구나 동등하게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불만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될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이야기를 400자 안에 담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실제로 그 400자 안에 담긴 학생들의 답안처럼 이 문제가 속시원히 해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용준 S·논술 선임연구원 leroy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