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식민 문화에 맞선 '전통'의 가치는?
⊙ '신이 떠나버린 시대'의 소설 문학사의 흐름에서 보면 소설은 다른 장르와 비교할 때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시나 희곡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반면에 소설은 그 기원을 아무리 소급시켜보더라도 지금부터 약 500여년 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은 작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아더왕의 전설」과 같은 중세의 기사담이나 로망스(romace)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산문의 시대를 열었던 것은 전체 문학사에서 보면 그렇게 오랜 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소설의 발생은 중세와 결별하고 신적 질서로부터 인간을 시민으로 해방시켰던 자본주의 시작과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저명한 소설 연구자인 이안 와트나 게오르규 루카치,루시앙 골드만과 같은 학자들도 모두 동의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소설은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탄생된 문학적 장르인 것이다.
소설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소설적 세계는 대개 근대적인 세계관을 투영한 경우가 많다.
루카치의 표현대로 소설은 '신이 떠나버린 시대에 정신의 고향을 찾으려는 문제적 개인의 이야기'로서 시민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한 개인들이 다시 새롭게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국 근대소설도 결국 외래적인 소설양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위의 관점은 상당히 유효하다.
결국 소설이란 근대적 개인이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는 양식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한국 근대 소설에서 아주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 작가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김동리이다.
그는 근대 소설 작가이면서도 근대적 세계와는 거리가 먼 작품세계를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김동리의 작품 「무녀도」를 살펴보면서 그가 보편적인 근대 소설 양식과 어떤 차별성을 두고자 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 무속과 기독교의 조우
소설 「무녀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경주에서 조금 떨어진 한 퇴락한 집에 무녀인 모화와 그녀의 딸 낭이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아들 욱이가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모자가 상봉한 기쁨도 잠시 욱이가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게 된 모화는 그때부터 아들 욱이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또 욱이는 욱이대로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기도하며 걱정한다.
그러는 중 모화는 욱이의 성경을 태우다가 이를 제지하려던 욱이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다.
이후 모화는 아들의 병을 간호했지만 아들 욱이는 끝내 소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이 마을에는 욱이의 주선으로 교회가 들어서고 예수교가 퍼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 모화는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인의 혼백을 위해 굿을 맡게 되는데 그녀는 굿이 끝나고 혼백을 건지겠다며 못 속으로 들어가 끝내 사라진다.
작품의 줄거리에서 확인되다시피 「무녀도」는 근대적인 질서 안에서 개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소설이 근대적인 양식임을 생각해볼 때 엄격히 말하자면 「무녀도」는 소설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소설이 '신이 떠난 시대의 이야기'라고 할 때,여전히 신적 존재가 개인(무녀,욱이 모두에게 해당한다)의 행동과 생각,그리고 운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작가 김동리가 보편적인 근대 소설의 양식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무녀도」를 비롯한 김동리의 소설들은 당시에 소설들이 추구하고 있던 근대성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히려 토속적인 배경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한국인들의 운명적인 삶의 모습들을 묘사하는 데에 열중했다.
신이 떠난 근대가 아니라 신이나 운명이 인생을 결정짓는 전근대적인 주술적 세계를 김동리는 보여주었던 것이다.
⊙ 반근대를 지향한 까닭
그렇다면 작가 김동리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근대성을 추구하지 않고 전근대에 머무르거나 반근대적인 포즈를 취했던 것은 어떤 까닭이었을까.
인용된 부분을 보면서 그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러할 즈음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전도사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고을에 뻗쳤다.
읍내의 교회에서는 마을마다 전도대를 내보냈다. 그리하여 이 모화의 마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중략) 두 눈이 파랗고 콧대가 칼날 같은 미국 선교사를 보는 것은 원숭이 구경보다도 더 재미나다고들 하였다.
"돈은 한 푼도 안 받는다. 가자."
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이 마을 방 영감네 이종 사촌 손주사위요,선교사와 함께 온 양조사 부인은 집집마다 심방하여 가로되,
"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거룩거룩하시고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무당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무당은 썩어빠진 고목 나무나 듣도 보도 못하는 돌미륵한테도 빌고 절을 하지 않습니까.
(중략) 우리 인생을 만든 것은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올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김동리,「무녀도」
어느 문학평론가는 김동리가 지닌 반근대성이 식민지의 왜곡된 근대성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서구의 근대화는 대단히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무속적 세계를 근대는 일순간 짓밟아버린 것이다.
한 인간의 신념이나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한 민족이 오랜 역사적 시간을 두고 간직했던 믿음의 체계를 한순간 무시하려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사상과 신념의 체계라고 해도 상대에게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기독교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에 근거한 종교이고,무속이 비합리와 비이성이 뒤섞인 미신과 주술의 세계라 하더라도 일방적인 강요는 옳지 못한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의 근대문물이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대단히 특수한 관계 속에서 전래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대'가 아무리 훌륭한 메커니즘을 지녔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보면 작가 김동리가 근대적인 양식인 소설을 가지고 어째서 반근대적인 세계를 구현하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적 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작품의 결말에서 무녀인 '모화'는 결국 물속으로 사라진다.
이러한 결말로 인해 어떤 이들은 토속신앙이 결국 패배했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 작품에서 비극적 결말은 언제나 반어적이다.
인물들이 비극적으로 죽는다고 하더라도 항상 그가 추구한 가치나 신념은 더욱 분명하게 남게 마련이다.
따라서 모화의 죽음을 무속과 토속신앙,전통적 가치의 패배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작가는 오히려 모화의 비극을 통해 무분별하게 추구되는 식민지 근대화 속에서 차츰 사라져가는 전통적 가치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얼마 전 인문학자들이 학문의 위기를 말하며 그 원인으로 학문의 식민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학문과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비판적 목소리였다.
문화적 식민성을 극복하고 우리 고유의 학문과 문화를 지키려는 최근의 흐름으로 볼 때,한국적 전통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 김동리의 작품은 다시 주목해야 마땅하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
⊙ '신이 떠나버린 시대'의 소설 문학사의 흐름에서 보면 소설은 다른 장르와 비교할 때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시나 희곡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반면에 소설은 그 기원을 아무리 소급시켜보더라도 지금부터 약 500여년 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은 작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아더왕의 전설」과 같은 중세의 기사담이나 로망스(romace)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산문의 시대를 열었던 것은 전체 문학사에서 보면 그렇게 오랜 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소설의 발생은 중세와 결별하고 신적 질서로부터 인간을 시민으로 해방시켰던 자본주의 시작과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저명한 소설 연구자인 이안 와트나 게오르규 루카치,루시앙 골드만과 같은 학자들도 모두 동의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소설은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탄생된 문학적 장르인 것이다.
소설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소설적 세계는 대개 근대적인 세계관을 투영한 경우가 많다.
루카치의 표현대로 소설은 '신이 떠나버린 시대에 정신의 고향을 찾으려는 문제적 개인의 이야기'로서 시민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한 개인들이 다시 새롭게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국 근대소설도 결국 외래적인 소설양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위의 관점은 상당히 유효하다.
결국 소설이란 근대적 개인이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는 양식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한국 근대 소설에서 아주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 작가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김동리이다.
그는 근대 소설 작가이면서도 근대적 세계와는 거리가 먼 작품세계를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김동리의 작품 「무녀도」를 살펴보면서 그가 보편적인 근대 소설 양식과 어떤 차별성을 두고자 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 무속과 기독교의 조우
소설 「무녀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경주에서 조금 떨어진 한 퇴락한 집에 무녀인 모화와 그녀의 딸 낭이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아들 욱이가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모자가 상봉한 기쁨도 잠시 욱이가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게 된 모화는 그때부터 아들 욱이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또 욱이는 욱이대로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기도하며 걱정한다.
그러는 중 모화는 욱이의 성경을 태우다가 이를 제지하려던 욱이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다.
이후 모화는 아들의 병을 간호했지만 아들 욱이는 끝내 소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이 마을에는 욱이의 주선으로 교회가 들어서고 예수교가 퍼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 모화는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인의 혼백을 위해 굿을 맡게 되는데 그녀는 굿이 끝나고 혼백을 건지겠다며 못 속으로 들어가 끝내 사라진다.
작품의 줄거리에서 확인되다시피 「무녀도」는 근대적인 질서 안에서 개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소설이 근대적인 양식임을 생각해볼 때 엄격히 말하자면 「무녀도」는 소설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소설이 '신이 떠난 시대의 이야기'라고 할 때,여전히 신적 존재가 개인(무녀,욱이 모두에게 해당한다)의 행동과 생각,그리고 운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작가 김동리가 보편적인 근대 소설의 양식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무녀도」를 비롯한 김동리의 소설들은 당시에 소설들이 추구하고 있던 근대성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히려 토속적인 배경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한국인들의 운명적인 삶의 모습들을 묘사하는 데에 열중했다.
신이 떠난 근대가 아니라 신이나 운명이 인생을 결정짓는 전근대적인 주술적 세계를 김동리는 보여주었던 것이다.
⊙ 반근대를 지향한 까닭
그렇다면 작가 김동리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근대성을 추구하지 않고 전근대에 머무르거나 반근대적인 포즈를 취했던 것은 어떤 까닭이었을까.
인용된 부분을 보면서 그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러할 즈음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전도사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고을에 뻗쳤다.
읍내의 교회에서는 마을마다 전도대를 내보냈다. 그리하여 이 모화의 마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중략) 두 눈이 파랗고 콧대가 칼날 같은 미국 선교사를 보는 것은 원숭이 구경보다도 더 재미나다고들 하였다.
"돈은 한 푼도 안 받는다. 가자."
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이 마을 방 영감네 이종 사촌 손주사위요,선교사와 함께 온 양조사 부인은 집집마다 심방하여 가로되,
"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거룩거룩하시고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무당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무당은 썩어빠진 고목 나무나 듣도 보도 못하는 돌미륵한테도 빌고 절을 하지 않습니까.
(중략) 우리 인생을 만든 것은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올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김동리,「무녀도」
어느 문학평론가는 김동리가 지닌 반근대성이 식민지의 왜곡된 근대성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서구의 근대화는 대단히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무속적 세계를 근대는 일순간 짓밟아버린 것이다.
한 인간의 신념이나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한 민족이 오랜 역사적 시간을 두고 간직했던 믿음의 체계를 한순간 무시하려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사상과 신념의 체계라고 해도 상대에게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기독교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에 근거한 종교이고,무속이 비합리와 비이성이 뒤섞인 미신과 주술의 세계라 하더라도 일방적인 강요는 옳지 못한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의 근대문물이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대단히 특수한 관계 속에서 전래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대'가 아무리 훌륭한 메커니즘을 지녔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보면 작가 김동리가 근대적인 양식인 소설을 가지고 어째서 반근대적인 세계를 구현하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적 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작품의 결말에서 무녀인 '모화'는 결국 물속으로 사라진다.
이러한 결말로 인해 어떤 이들은 토속신앙이 결국 패배했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 작품에서 비극적 결말은 언제나 반어적이다.
인물들이 비극적으로 죽는다고 하더라도 항상 그가 추구한 가치나 신념은 더욱 분명하게 남게 마련이다.
따라서 모화의 죽음을 무속과 토속신앙,전통적 가치의 패배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작가는 오히려 모화의 비극을 통해 무분별하게 추구되는 식민지 근대화 속에서 차츰 사라져가는 전통적 가치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얼마 전 인문학자들이 학문의 위기를 말하며 그 원인으로 학문의 식민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학문과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비판적 목소리였다.
문화적 식민성을 극복하고 우리 고유의 학문과 문화를 지키려는 최근의 흐름으로 볼 때,한국적 전통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 김동리의 작품은 다시 주목해야 마땅하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