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의 부활"…일부선 정부 개입 부작용 우려도
[Focus] 빚내서 경기 살린다?… 재정지출 증대 '효과'볼까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고쳐서 공공지출(재정+공기업 지출 합계) 규모를 원래보다 11조원 더 늘리기로 했다.
기존 감세정책(소득세 법인세 양도세 종부세 인하)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출만 더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재정 적자(정부 총수입 범위를 초과하는 지출액)는 기존 10조원에서 최대 21조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 돈은 모두 국채(정부가 돈을 꾸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를 통해 조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 재정지출 왜 늘리나

정부가 이처럼 빚을 내서라도 돈을 더 쓰겠다고 하는 건 내년 경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안 좋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발(發) 금융위기 여파로 은행들이 서로 돈을 빌려주지 않고 투자자들 역시 기업에 자금 대기를 꺼려하면서 전세계 실물경제가 다 같이 얼어붙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소비가 급감하고 있는데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으로서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내수 경기가 올해 초 정점을 찍고 하향세로 돌아선 시기와 맞물리면서 우리 경제는 수출·내수 동반침체라는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 연구기관과 금융회사에서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대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따라서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위축된 부분을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경제는 가계 기업 정부라는 세 주체의 상호 작용속에서 돌아간다.

국내총생산(GDP) 역시 이들이 창출해낸 부가가치의 총합이다.

경기 침체로 가계의 소비가 줄고 기업의 투자가 감소한다면 당연히 GDP 증가세가 예전만 못할 것이고, 새로 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국민 중 취업했거나 취업을 원해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에 편입된 이들이 모두 직장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지 않게 된다.

가계와 기업을 합쳐 민간부문이라고 하는데 민간에만 경제를 맡겨서는 적절한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경기 침체기에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줌으로써 구원투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재정지출 확대론의 근거다.

이런 생각은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에서 비롯됐다.

그는 유효수요 이론으로 1930년대 미국을 대공황(大恐慌)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케인스의 부활인가

당시 케인스는 전쟁기에 형성된 과도한 생산능력과 민간부문의 만성적인 유효수요(막연히 어떤 재화를 갖고 싶다거나 서비스를 누리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된 수요) 부족 사이에서 발생한 불일치가 결국 대공황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재정을 쏟아 부어서라도 구매력을 창출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이 같은 케인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정부의 재정 지출을 늘리는 이른바 '뉴딜 정책'을 수립해 경제를 재건하고자 했다.

뉴딜 정책으로 늘어난 예산은 주로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 건설을 위한 대규모 국책사업과 실업자 및 빈곤층에 대한 현금 지원 성격의 구제책을 펴는 데 쓰여졌다.

다른 요인 없이 오로지 이 같은 재정지출 확대만으로 미국이 대공황에서 벗어났는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경제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를 계기로 정부가 적극적인 경기부양 역할을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한다는 사조(思潮)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 같은 생각의 흐름은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서 불완전하고 시장은 가만 놔두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 정부가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는 '정부개입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반대로 재정정책보다는 통화정책에 1차적인 경기 조절 임무를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국제 금융위기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연관된 각종 파생상품이 문제를 일으킨 데서 비롯됐다.

그래서 '시장의 불완전성'과 '정부 개입 필요성'이 강조돼서 그렇지 그 전까지만 해도 케인스식의 재정정책 역할보다는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조작 방식(환매조건부채권 매매를 통한 기준 금리 조절)의 통화정책이 훨씬 더 시장친화적인 경기 조절 수단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 경기 조절 효과 높이려면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재정정책은 예산 편성과 국회 동의절차 등으로 입안에서 결정까지 이르는 '길고 불확실한 시차(long and variable lag)'가 존재할 수밖에 없어 경기 조절 기능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재정 확대 수단으로 꼽히는 SOC 건설사업만 해도 사업계획작성 설계 용지매입 등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돈이 필요할 때 지출되는 게 아니라 경기가 저절로 회복된 뒤에라야 투입되면서 과열만 유발한다는 것이다.

또 재정사업은 일단 시작된 뒤에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사업을 중단하거나 되돌리는 일이 어렵고 일시적으로 늘릴 생각이었던 사회보장성 현금 지출(실업급여 빈곤수당 등)이 기득권화돼 나중에 재정관리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내수 침체를 그냥 지켜볼 수 만은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재정 확대를 선택하지만,경기침체의 근원을 바로잡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번번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과거 1992년부터 총 136조엔(우리돈 약 1700조원)을 쏟아부어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10년 장기 불황'에서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최근 우정 민영화 등 경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개혁을 실시한 뒤에야 겨우 침체에서 벗어난 사례를 들 수 있다.

정부가 지출 확대의 재원을 결국 민간에서 조달하면서 그만큼 더 민간 투자를 위축시키는 이른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염려하는 시각도 여전히 남아 있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개발연구부장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기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가 일시적으로 재정 지출을 확대할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다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생산유발 효과를 높이려면 SOC 사업은 기존에 진행 중인 사업의 완공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사회보장 지출은 당장 소비가 급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지출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