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되면 세계경제 2차 충격 우려
[Global Issue] 멈추지 않는 엔高…日 경제 엎친데 덮치나
엔고의 원인은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엔화를 원하는 수요자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무역흑자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어 엔화가 상대적으로 '안전 통화'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2000년대 초반 투자자들이 금리가 싼 엔화 자금을 빌려 달러로 바꾼 뒤 수익률이 높은 신흥시장에 투자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자금을 다시 회수하고 있는 것도 엔고의 주요 원인이다.
최근 신흥시장 증시가 폭락하자 투자자들이 현지통화→달러→엔화 순서로 통화를 환전하면서 엔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투자 자금의 기본 흐름이 180도 변하자 '엔 캐리 트레이드'와 관련 없는 자금까지 달러에서 엔화로 전환되는 경쟁이 펼쳐지면서 과도한 엔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엔 캐리 자금은 약 40조엔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 수출기업 악화로 일본 경기 침체

엔고로 수출에 의존해 온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제연구소 등의 분석에 의하면 도요타의 경우 환율이 1엔 내릴 때마다 400억엔의 영업이익이 사라지며, 유럽시장 점유율이 25%를 넘는 소니의 경우 유로화에 대해 1엔이 내릴 때마다 70억엔의 이익이 감소한다.

실제로 소니는 지난 10월23일 올 회계연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58% 줄어든 2000억엔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28일에는 캐논이 올해 영업이익 전망을 23% 낮췄다.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사장은 한 비즈니스 포럼에서 "외환시장이 이 상태로 유지된다면 일본 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글로벌 경제 우려 한목소리

엔고 현상은 세계 경제에도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엔 캐리 자금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해당국의 자산가치 폭락의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에는 헤지펀드를 비롯 기업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각종 투자주체들이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증시, 특히 신흥국 증시 폭락의 한 원인으로 엔 캐리 자금 청산이 꼽히는 이유다.

투자도 위축되며 실물 및 금융 부분에서 충격이 오는 것이다.

27일 선진 7개국(G7)은 이례적 성명을 통해 엔화의 급변동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고 필요할 경우 공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요사노 가오루 일본 경제재정상은 28일 "엔화 강세가 일본 경제의 기본체력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급격한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엔화는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진정되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지목되고 있다.

딕 보브 라덴브루브칼만은행 애널리스트는 "엔화 가치가 향후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지표"라며 "엔화가 진정된다면 전세계 금융시장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공조는 산 넘어 산

엔화가치가 크게 높아지고 있지만 인위적 환율 개입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요미우리신문은 28일 G7 성명에 대해 "일본 미국 유럽 각국이 실질적으로 엔고에 대응해 협조하는 게 어렵다는 점을 시장이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크리스티앙 래가드 프랑스 재무장관도 "G7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계획은 없으며 일본 금융 당국의 개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달러 가치는 엔보다 하락했지만 유로보다는 상승하는 등 각국 화폐의 상대적인 환율 변화가 엇갈려 개입의 방법 폭 시기 등을 놓고 의견을 모으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럽의 산업계는 달러화에 비해 유로화 가치가 하락한 것을 반기고 있어 통화 개입에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단독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나카가와 쇼이치 일본 재무장관은 전날 개입 가능성에 대해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경우 이는 2004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이 단독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이 과거 경험했던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의 엔고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달러를 활용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은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등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 엔고 앞으로도 지속될 듯

일본 정부가 시장 개입으로 엔화 강세를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는 있어도 추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엔고 행진을 멈추게 하는 데는 우선 주가가 안정돼 시장에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하면서 세계적인 주가 하락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한 엔화에 대한 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달러당 90엔을 심리적 지지선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경우 엔고 압력이 가중돼 달러당 85엔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요 금융기관 전문가들을 상대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이 엔·달러 환율이 1달러당 83~85엔에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는 일본 수출기업들의 엔화 매입 수요가 남아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