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히 알고 있는 사실까지도 의심해야 한다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고 했으니 맘편히 놓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 된다.

(나)와 (다)는 논지만 나와 있을 뿐이지 근거는 나와 있지 않으므로 자신만의 근거를 내세우고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라고 주문했으므로 적극적으로 <나는>이라는 주어까지 사용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문제 의도를 본다면 이 문제는 그다지 까다로운 문제가 아니다.

제시문의 내용이 다소 낯선 것일지언정,이 주제 즉 <기술에 의한 효율성의 달성을 근대성이라고 지적하고,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꽤나 빈번하게 기출되었던 그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기술의 진보 속에서 정말 제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 맞나?'하고 자성하는 것이다.

워낙 현대 문명에 의한 의심의 눈초리가 강해진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아주 단골 출제되는 주제일 수밖에 없다.

⊙ 제시문 분석

제시문 분석에 앞서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놔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문제가 어떤 것을 물으려는지 제시문들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시문 (다)가 제대로 직격탄을 날려주고 있으므로 제시문 이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조건도 얼마나 친절한가!

제시문 (가)는 인류의 역사를 석기/근대문명/현대문명/지구촌 시대로 나누어 놓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복잡성이 증가한다고 보고 있다(복잡성이 증가한다는 뜻은 정보 및 기술이 발달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인류의 진보'인 셈이다.

제시문 (나)는 경제적 맥락이라는 말에서 보이듯 과거와 현재를 '경제적 상황'에 비추어서 비교하고 있는 글이다(제시문 (나)의 경우 영어문장을 그대로 직역한 문장투라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므로 매우 천천히 의미를 찾으며 읽어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과거(느림)와 현재(현재)를 비교하며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 번영에 대해 일치된 이해관계를 갖고 정치적 행동까지 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을 '건전'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다소 친시장적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더욱 많이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생산성 패러다임에 의해서 세계는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도 찾아낼 수 있다.

제시문 (다)는 잘못된 생각을 던져놓고 '그게 아니라네! 이 친구야!'하고 면박을 주면서 글을 이어간다.

즉 <자연계의 모든 것은 쓸모없지만 이것이 인간의 노력이 가미되면서 가치있는 것으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경제활동이다>라는 생각에 대해 반론하면서,<열역학의 1법칙과 2법칙에 의하면 에너지의 양은 고정되어 있으며 에너지의 모습이 변할 때도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변한다.

그러므로 무용한 것을 인간이 유용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생산성의 패러다임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이 사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 그럼 (라)의 문제를 보기 전에 제시문 (나)(다)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대조적으로 정리해보자.

(가)의 내용은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인류의 지식 및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더 가치로운 것이라는 생산성 패러다임을 강조한다.

이와 반대로 (다)는 인간에 의해 생산되는 것은 없으며 결국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은 결국 더 무용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도달해 있는 이 복잡한 세상을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매우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은 과연 가치를 만들며 살아가는지,아니면 가치를 버리며 살아가는지 말이다.

이제 (라)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을 살펴보자.

제시문 (라)는 우리의 뇌가 여전히 까마득한 옛날 생활방식에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당연히 현대적 기계문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시문은 재밌게도 종교단체나 입양기관의 예를 들고 있다.

이것들이 적응에 반하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즉 그때의 인간들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 적응했을 뿐이며 번개가 치면 무서웠고,아이는 직접 낳아서 키웠고,아프면 그냥 아프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신을 찾거나 아이를 맡기거나 장기를 이식하거나 수술을 하진 않았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마지막 문장의 의미는 매우 분명하다.

<혹시라도 홍적세의 사바나에 피임약이 달린 나무가 있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독거미처럼 무서워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라는 부분은 생존의 관점에서 본다면 피임약이란 반인간적,반적응적이라는 것이다.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된다니! 그런 끔찍한 일이!' 더 많이 살아남는 것이 인간의 존재목적일진데,이런 무서운 일이 따로 없는 것이다.

제시문의 이해는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어찌했든 (라)에서는 문제점만 찾으면 된다.

이미 첫 문단에 매우 직접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즉,세계는 이렇게 빨리 변해가는데 우리는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현대문명이라는 것은 자연적인 인간 생존의 조건에 반대하는 경우가 이리도 많은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현대문명이란 것이 실제로는 우리의 삶의 조건과 정반대의 것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뒤처지고 있는 것은 정신문명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시문 (라)의 내용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인류를 질타하는 내용이 아니다.

애초에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물질문명은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DNA의 보존이나 더 많은 자손의 번성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프로그램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전자결정론인 셈이다. ('진화'라는 단어를 유의하여 읽었다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물론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더욱 신뢰하는 학생이라면 이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조건상 '문제점을 고려하여'라고 하였으므로 이 문제를 인정해주도록 하자.

아쉽지만 문제는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 문제풀이

이제 위 제시문들을 모두 정리하여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스토리를 짜보자면 이렇게 된다.

"확실히 물질문명은 발달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 발달이라는 것이 제대로 된 발달인지,혹은 정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의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정신은 물질적 발달 속도와 달리 매우 더디게 적응해나가고 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괴리 현상은 현대인의 정신세계를 괴롭히고 있다. 자,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방향으로 분류된다.

우선 (라)의 문제의식이 '물질문명의 발달과 그에 따라 인간이 겪는 부적응의 문제'였으므로 이것을 감안하고,(나)와 (다)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의 주장을 그대로 안고 갈 것인지,혹은 (다)의 입장에서 현대 물질 문명에 브레이크를 걸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어떤 것으로 결정하든 나름대로의 근거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우리의 세상 역시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이 뒤엉켜 가며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현재까지는 (나)의 목소리가 우세하여 중세 이후의 지난 세월을 지배해왔지만 사람들은 점점 (다)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 보니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 의도상으로는 (다)에 찬성하며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자'고 해야겠지만 꼭 그렇게만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기술의 개발로 우리의 정신세계나 동물적 본질마저도 세뇌시킬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가령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 나오는 '소마'와 같은 약으로 말이다.

*'소마'=고통과 죄책감을 잊을 수 있는 약으로 <멋진 신세계>의 이상사회에서는 소마를 이용하여 인간의 행복마저도 인위적으로 주입하고 인간들을 체제에 순응시킨다.

⊙ 문제를 다 푼 후에

여기서 잠깐! 실제로 서강대 출제본부 측에서 발표한 예시답안을 보면 이 '부적응의 문제'를 그저 '빈곤한 정신문명'쯤으로 치부하며 <고도로 발달한 현대 물질 문명 속에서 가벼워지는 정신 세계를 위로하는 수준>의 답안이 등장한다.

"이런 '물질적 풍요 속의 정신적 궁핍'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의 신체에 더 적합한 '느린 삶'이나 '단순한 삶'을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노력들을 나는 지지한다.

이런 대안은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여 항상 쫓기듯 복잡하게 사는 대신에 느리고 단순하게 살 것을 제안한다.

그럴 때 정신적 여유와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고,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강대 측의 예시 답안)

위의 제시문을 다시 한번 잘 읽고 생각해보자.과연 정말 그런 내용인가?

동물로서의 인간의 본질이 우리의 정신세계와 어떻게 연관되겠는가?

출제본부의 답안은 정말 제대로 된 것인가?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의 마음이란,제시문 (라)의 혼란 못지않을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적인 내용인 (라)는 인간의 정신문명을 강조하는 입장과는 거의 이항대립적 요소라고 볼 수도 있다.

유전자 결정론에서는 이미 인간의 모든 행동이 정해져 있는 반응식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며,그 반대편의 정신세계를 강조하는 (자유)의지론 측에서는 인간이란 어떠한 구속됨 없이 언제든 스스로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예시 답안이 다소 곤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보이곤 한다.

입시자료집이나 해당 대학의 해설서에만 의존하고 있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렇구나'하고 수동적으로 반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뻔히 알고 있는 무엇이든 의심하는 버릇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해설이 틀릴 가능성마저도 말이다.

그게 진짜 논술공부다.

이용준 S·논술 선임연구원 leroy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