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10월19일자 A38면

세상을 보는 눈은 보는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르다.

애덤 스미스,루트비히 폰 미세스,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밀턴 프리드먼 등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전통은 자본주의는 안정적이며 자원배분은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이뤄지므로 정부는 시장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에 케인스를 위시한 개입주의 전통은 자본주의는 불안정하며 시장 기능에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가 적극 개입해 경제를 조절해야 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기순환에 대한 해석도 정반대다.

자유주의 전통은 경제는 안정적인데 정부가 조절하려고 개입하는 데서 경기순환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개입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태생적 불안정성과 시장실패론으로 맞선다.

이렇게 견해가 다른 이유는 인간은 해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둘러싼 해석도 마찬가지다.

자유주의자들은 미국 정부의 저금리정책으로 대표되는 정부 개입이 부른 폐해를 시장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고 해석한다.

반면에 개입주의자들은 정부에 의해 규제되지 않은 월가의 탐욕이 부른 재앙으로 해석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2001년 말 이른바 닷컴으로 알려진 IT(정보기술) 경기가 침체 조짐을 보이자 2001년 말부터 2004년까지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실제로 연방기금 이자율을 비롯한 각종 이자율은 2001년 말부터 1%대로 하락했다.

그에 따라 통화공급이 늘었고 상업은행들의 주택담보부 대출이 증가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증권을 발행,유동화를 반복하면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 투자은행이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이자율이 오르면서 담보주택 가격의 100%를 상회했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금융위기로 번진 것이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유주의 전통이 비판받고 있다.

시장만 주장하더니 모양새가 우습게 됐다는 것이다.

금융공학을 바탕으로 한 파생상품을 적절하게 규제했어야 했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만한 조언들이 있다.

문제는 규제 당국도 잘 알 수 없는 파생상품을 개발,이윤을 향해 치닫는 행진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는 데 있다.

규제자가 피규제자보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효과적인 규제가 가능한데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진화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또한 인간의 탐욕이 부른 화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탐욕이 인간성에 내재된 것이라면 이를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탐욕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인류의 도전이 오늘의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저금리 정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자율이란 사람들이 미래의 자원보다 오늘의 자원에 더 큰 주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시간선호율(time preference rate)이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시간선호율과 다른 이자율이 한동안 지속되면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키고 통화가 예전 수준으로 복귀하면서 경기순환이 유발된다는 것이 루트비히 폰 미세스의 경기순환론의 요점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단초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주요 각국은 국제공조를 통해 유동성을 무한정 공급하기로 했는데,이를 위해 다시 금리인하 정책을 펴고 있다.

신용경색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저금리 정책으로 생긴 문제를 다시 저금리 정책으로 급한 불을 끄겠다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다시 문제의 해결사로 나서는 모습은 개입주의 정책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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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보 충분치 않아 시장 개입에 한계 있어

해설

정부의 시장 개입을 놓고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자유주의와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지안(개입주의) 간의 논쟁은 1929년 세계 대공황 시절 본격화되었다.

대공황 당시 미국은 국민총생산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실업률은 25%로 치솟았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아 직장을 잃어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세이의 법칙)는 기존 경제이론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경제학자가 케인스다.

케인스는 상품이 시장에서 팔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수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해 수요가 생길 것이라는 기존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그는 '기다리다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고 반박했다.

케인스의 주장은 당시 혁명적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의 건의대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뉴딜정책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케인스 이론은 그 후 여러 나라에서 주요 경제 정책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유효 수요를 창출하기 힘들었던 것은 물론 오히려 당시 고물가가 과거 정부의 무리한 팽창 정책 결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케인스의 개입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 학자들이 바로 자유주의자들이다.

케인스의 개입주의를 바탕으로 정책 이념이 수정자본주의로 흐를 조짐을 보이자 이들은 정부 개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1938년부터 모임을 갖고 토론해 오던 이들은 1947년 하이에크를 중심으로 '몽펠르랭 학회'를 설립한 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중시하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한다.

능력과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크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론의 뿌리를 두고 있는 자유주의는 독일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는 이론적 토대가 됐고,1980년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레이거노믹스)과 영국 대처 총리의 정책(대처리즘)으로 꽃을 피웠다.

미국은 지난 30년간 자유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요,전도사였다.

최근 세계 경제 위기로 자유주의가 다시 케인스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지만 다산칼럼의 필자 김영용 교수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세계가 겪고 있는 현 경제 위기는 2000년대 초 저금리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정부 개입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