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도 인간이 될 수 있다?
다음 네 제시문을 읽고 [문제1]과 [문제2]에 대해 논술하라.
가 여기에서 나는,만약에 원숭이 또는 이성이 없는 다른 동물의 모양과 기관을 가진 기계가 있다면,이 기계가 동물이 아니라고 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가능한 한 우리의 행동을 모방하는 기계가 있다면,이런 기계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다.
첫째,기계는 우리가 하듯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말이나 신호를 사용할 수 없다.
물론 말하는 기계를 만들 수도 있고,기계에 가해진 물리적 행위에 적절한 말을 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기계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고,다쳤다고 울거나 그 비슷한 일을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계도,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상황에 맞게 말을 바꾸지는 못한다.
둘째로 비록 그 기계가 우리만큼,또는 더 잘,많은 일을 할 수 있어도,어떤 다른 방법으로 잘못을 저질러서,기계는 인간처럼 이해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기계의 배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구인 반면에,기계는 특정한 일에 대해 특정한 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이,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처할 만큼 많은 장치가 한 기계 안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데카르트,「방법서설」
나 드 세비네 부인은 1672년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기계,어떤 사람과 친한 기계,질투하는 기계,두려워하는 기계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웃음거리일 뿐이다.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이런 것을 믿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퐁트네유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이 시계와 마찬가지로 기계라고 말하는가? 미스터 기계 개와 미스 기계 개를 함께 두어보라. 둘 사이에서 작은 기계 강아지가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시계 둘은 평생을 함께 두어도 다른 시계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
동물은 고통을 느끼고,질투하며,번식한다고 데카르트의 반대자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틀렸다.
그렇다면 이것이 동물도 이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유명한 우화 작가 라 퐁텐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의 불멸의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교활하고 지능적이다.
그래서 라 퐁텐은 부엉이가 현명한 새라고 썼다.
"부엉이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가센디와 같은 철학자들은 더 체계적으로 이것을 논했다.
그는 데카르트의 성찰에 대한 다섯 번째 반론에서,동물이 인간처럼 추론하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이것은 정도의 문제일 뿐이지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런 면에서,정도의 차이를 제외하면 그들 '동물'과 우리는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인간의 말은 개가 짖을 때의 정신 활동이 발전한 것에 불과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명확히 또 다른 연속으로 향하는 길위에 있다.
― 브루스 매즐리시,「네번째 불연속」
다 인간을 물리학,화학,그리고 이제 생물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원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여러 가지 발견을 하게 했다.
이상하게도 이 시도의 윤리적 목적은 불완전하고 타락한 상태에서 인간을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 중 가장 최근의 것이 바로 유전공학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으며,최소한 몇몇 전문가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윌슨의 말을 다시 인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자들과 휴머니스트들은 이제 윤리학을 일시적으로 철학자의 손에서 해방시켜서 생물학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제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사회생물학이 순전한 현상론에서 기본 이론으로 바뀌려면 인간의 뇌가 뉴런 수준에서 완전히 설명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메커니즘을 세포 수준으로 분해해서 종이에 그릴 수 있고,조립해서 다시 감정을 느끼고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어야…… 인식은 회로로 해석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도덕성을 얻는 대가로 기계가 되기를 원했던 토머스 헉슬리의 현대판이 아닌가?
인간을 완전하게 하려는 열망은 매우 깊다.
이 열망은 과학을 이용해 인간을 기계로 만듦으로써 동물성에서 해방시키려는 세속적인 형태의 시도로 나타날 수 있다(이론과 실제 모두에서).
이 시도는 공공연한 기계적인 수단뿐 아니라 유전공학적인 수단으로도 추구할 수 있다.
이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은 유전적으로 다른 동물을 개조하는 것이다.
웰스(우연히도 그는 헉슬리와 함께 한 해 동안 생물학을 공부했다)는 그의 유토피아 소설 『신과 같은 인간』에서 앞에서 설명한,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몇 가지 예측했다.
제목이 가리키듯 웰스는 인간에게 성스러운 특권을 주었고,"인간이 코뿔소에서 결핵균에 이르는 모든 생물을 시험하여 만족스럽게 개조하거나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좀 더 최근에는 명석하고 다재다능한 과학자 프리먼 J 다이슨이 우주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을 유전공학적으로 창조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계획에는 무게가 1킬로그램쯤 되는 '우주 닭'이 있는데,이것은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공학으로 키우는 것이며… 인공지능에 의해 동작하고 태양 전기로 추진한다."
그는 또한 '화성 감자'와 '우주 나비' 등도 생각했다.
다음 단계는 분명히 인간을 조작하는 것이다.
유명한 분자생물학자 윌리엄 데이는 인간의 진화를 이렇게 예측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정신적 능력을 갖는 종류로 나누어져서 여러 가지 종으로 분화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 중에서 새로운 종이 태어날 것인데,이것을 오메가 인간이라 하자.
이 종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 함께,또는 기계의 도움으로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차원―마치 인간이 진핵 세포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듯이―으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오메가 인간이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를 몇 가지만 더 들어보자.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이며 한때 록펠러 대학 총장을 지낸 조슈아 레더버그는 1978년에 이렇게 썼다(요즘이라며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슈퍼맨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화학적 지식의 부족이다."
여기에서 함축하는 바는 우리가 생화학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며,슈퍼맨을 만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 프랜시스 크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자멸하거나 환경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그리고 극단적인 과학 혐오자들이 득세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1000년 안에 인간의 본성 자체를 개선하는 중요한 성과를 보게 될 것이다."
명백히 우리는 18세기 철학자 마르퀴 드 콩도르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뀐 것은,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사회적 노력이 아니라 사회생물학 또는 유전공학이라는 것뿐이다.
완전에 대한 열망은 새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 브루스 매즐리시,「네번째 불연속」
라 당신의 증오로 내 마리에 구멍을 내기 전에,내 애원을 들어주시오.
당신이 지금 나에게 고통을 더하기 전에도,나는 벌써 충분히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소?
삶은 나에게 고뇌의 연속일 뿐이지만,나는 내 삶을 두둔해야겠소.
당신은 나를 당신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내 키는 당신보다 크고,내 관절은 당신보다 더 민첩하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반항하려 들지 않았소.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고,나에게 생명을 준 주인에게 온순하게 복종할 수 있었소.
당신이 당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말이오.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소.
오,프랑켄슈타인,당신은 공평하지 않았고,나만을 짓밟았소.
당신의 정의,당신의 관용,당신의 온정은 당연히 나에게 주어져야 했소.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했지만,아무 잘못도 없이 쫓겨난 타락한 천사가 되었소.
나는 어디에서나 은총을 보지만,나에게는 그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았소.
나는 선했지만,고통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소,나를 행복하게 해주면,나는 다시 선하게 살 것이오. …중략…
이제 나는 또 다른 괴물을 창조하려고 한다.
이 괴물이 어떤 성격을 가질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그녀의 짝보다 만 배는 더 사악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살인과 파괴를 일삼을지도 모른다.
그는 인간의 주위에서 벗어나 사막에서 살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녀는 맹세를 하지 않았다.
분명 생각하고 추론하는 동물이 될 그녀는,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맹세를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김새 때문에 혐오를 받았던 자가,똑같은 모습의 여성이 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혐오를 느끼지 않을까?
그녀도 그를 버려서,그는 다시 홀로 남고,동족에게 버림받아서 분노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들이 유럽을 떠나 신대륙의 사막에 산다 해도,그러한 동정의 결과로 맨 먼저 생기는 것은 그들의 자식이다.
악마의 종족이 지구상에 퍼지면,인간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 것이다.
나 자신의 이익 때문에,모든 사람들에게 대대로 저주가 될 행위를 할 권리가 있는가?
―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
문제1. 인간 같은 기계 혹은 기계같은 인간을 만드는 것에 관한 다음 제시문을 읽고,각 제시문 간의 논리적 연관성을 설명하라. (500~600자)
문제2. 제시문 (라)의 입장에서 (다)의 입장을 심도있게 비판하라.(500~600자)
다음 네 제시문을 읽고 [문제1]과 [문제2]에 대해 논술하라.
가 여기에서 나는,만약에 원숭이 또는 이성이 없는 다른 동물의 모양과 기관을 가진 기계가 있다면,이 기계가 동물이 아니라고 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가능한 한 우리의 행동을 모방하는 기계가 있다면,이런 기계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다.
첫째,기계는 우리가 하듯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말이나 신호를 사용할 수 없다.
물론 말하는 기계를 만들 수도 있고,기계에 가해진 물리적 행위에 적절한 말을 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기계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고,다쳤다고 울거나 그 비슷한 일을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계도,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상황에 맞게 말을 바꾸지는 못한다.
둘째로 비록 그 기계가 우리만큼,또는 더 잘,많은 일을 할 수 있어도,어떤 다른 방법으로 잘못을 저질러서,기계는 인간처럼 이해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기계의 배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구인 반면에,기계는 특정한 일에 대해 특정한 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이,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처할 만큼 많은 장치가 한 기계 안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데카르트,「방법서설」
나 드 세비네 부인은 1672년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기계,어떤 사람과 친한 기계,질투하는 기계,두려워하는 기계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웃음거리일 뿐이다.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이런 것을 믿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퐁트네유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이 시계와 마찬가지로 기계라고 말하는가? 미스터 기계 개와 미스 기계 개를 함께 두어보라. 둘 사이에서 작은 기계 강아지가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시계 둘은 평생을 함께 두어도 다른 시계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
동물은 고통을 느끼고,질투하며,번식한다고 데카르트의 반대자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틀렸다.
그렇다면 이것이 동물도 이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유명한 우화 작가 라 퐁텐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의 불멸의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교활하고 지능적이다.
그래서 라 퐁텐은 부엉이가 현명한 새라고 썼다.
"부엉이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가센디와 같은 철학자들은 더 체계적으로 이것을 논했다.
그는 데카르트의 성찰에 대한 다섯 번째 반론에서,동물이 인간처럼 추론하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이것은 정도의 문제일 뿐이지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런 면에서,정도의 차이를 제외하면 그들 '동물'과 우리는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인간의 말은 개가 짖을 때의 정신 활동이 발전한 것에 불과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명확히 또 다른 연속으로 향하는 길위에 있다.
― 브루스 매즐리시,「네번째 불연속」
다 인간을 물리학,화학,그리고 이제 생물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원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여러 가지 발견을 하게 했다.
이상하게도 이 시도의 윤리적 목적은 불완전하고 타락한 상태에서 인간을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 중 가장 최근의 것이 바로 유전공학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으며,최소한 몇몇 전문가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윌슨의 말을 다시 인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자들과 휴머니스트들은 이제 윤리학을 일시적으로 철학자의 손에서 해방시켜서 생물학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제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사회생물학이 순전한 현상론에서 기본 이론으로 바뀌려면 인간의 뇌가 뉴런 수준에서 완전히 설명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메커니즘을 세포 수준으로 분해해서 종이에 그릴 수 있고,조립해서 다시 감정을 느끼고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어야…… 인식은 회로로 해석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도덕성을 얻는 대가로 기계가 되기를 원했던 토머스 헉슬리의 현대판이 아닌가?
인간을 완전하게 하려는 열망은 매우 깊다.
이 열망은 과학을 이용해 인간을 기계로 만듦으로써 동물성에서 해방시키려는 세속적인 형태의 시도로 나타날 수 있다(이론과 실제 모두에서).
이 시도는 공공연한 기계적인 수단뿐 아니라 유전공학적인 수단으로도 추구할 수 있다.
이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은 유전적으로 다른 동물을 개조하는 것이다.
웰스(우연히도 그는 헉슬리와 함께 한 해 동안 생물학을 공부했다)는 그의 유토피아 소설 『신과 같은 인간』에서 앞에서 설명한,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몇 가지 예측했다.
제목이 가리키듯 웰스는 인간에게 성스러운 특권을 주었고,"인간이 코뿔소에서 결핵균에 이르는 모든 생물을 시험하여 만족스럽게 개조하거나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좀 더 최근에는 명석하고 다재다능한 과학자 프리먼 J 다이슨이 우주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을 유전공학적으로 창조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계획에는 무게가 1킬로그램쯤 되는 '우주 닭'이 있는데,이것은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공학으로 키우는 것이며… 인공지능에 의해 동작하고 태양 전기로 추진한다."
그는 또한 '화성 감자'와 '우주 나비' 등도 생각했다.
다음 단계는 분명히 인간을 조작하는 것이다.
유명한 분자생물학자 윌리엄 데이는 인간의 진화를 이렇게 예측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정신적 능력을 갖는 종류로 나누어져서 여러 가지 종으로 분화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 중에서 새로운 종이 태어날 것인데,이것을 오메가 인간이라 하자.
이 종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 함께,또는 기계의 도움으로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차원―마치 인간이 진핵 세포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듯이―으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오메가 인간이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를 몇 가지만 더 들어보자.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이며 한때 록펠러 대학 총장을 지낸 조슈아 레더버그는 1978년에 이렇게 썼다(요즘이라며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슈퍼맨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화학적 지식의 부족이다."
여기에서 함축하는 바는 우리가 생화학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며,슈퍼맨을 만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 프랜시스 크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자멸하거나 환경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그리고 극단적인 과학 혐오자들이 득세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1000년 안에 인간의 본성 자체를 개선하는 중요한 성과를 보게 될 것이다."
명백히 우리는 18세기 철학자 마르퀴 드 콩도르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뀐 것은,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사회적 노력이 아니라 사회생물학 또는 유전공학이라는 것뿐이다.
완전에 대한 열망은 새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 브루스 매즐리시,「네번째 불연속」
라 당신의 증오로 내 마리에 구멍을 내기 전에,내 애원을 들어주시오.
당신이 지금 나에게 고통을 더하기 전에도,나는 벌써 충분히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소?
삶은 나에게 고뇌의 연속일 뿐이지만,나는 내 삶을 두둔해야겠소.
당신은 나를 당신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내 키는 당신보다 크고,내 관절은 당신보다 더 민첩하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반항하려 들지 않았소.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고,나에게 생명을 준 주인에게 온순하게 복종할 수 있었소.
당신이 당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말이오.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소.
오,프랑켄슈타인,당신은 공평하지 않았고,나만을 짓밟았소.
당신의 정의,당신의 관용,당신의 온정은 당연히 나에게 주어져야 했소.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했지만,아무 잘못도 없이 쫓겨난 타락한 천사가 되었소.
나는 어디에서나 은총을 보지만,나에게는 그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았소.
나는 선했지만,고통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소,나를 행복하게 해주면,나는 다시 선하게 살 것이오. …중략…
이제 나는 또 다른 괴물을 창조하려고 한다.
이 괴물이 어떤 성격을 가질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그녀의 짝보다 만 배는 더 사악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살인과 파괴를 일삼을지도 모른다.
그는 인간의 주위에서 벗어나 사막에서 살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녀는 맹세를 하지 않았다.
분명 생각하고 추론하는 동물이 될 그녀는,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맹세를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김새 때문에 혐오를 받았던 자가,똑같은 모습의 여성이 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혐오를 느끼지 않을까?
그녀도 그를 버려서,그는 다시 홀로 남고,동족에게 버림받아서 분노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들이 유럽을 떠나 신대륙의 사막에 산다 해도,그러한 동정의 결과로 맨 먼저 생기는 것은 그들의 자식이다.
악마의 종족이 지구상에 퍼지면,인간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 것이다.
나 자신의 이익 때문에,모든 사람들에게 대대로 저주가 될 행위를 할 권리가 있는가?
―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
문제1. 인간 같은 기계 혹은 기계같은 인간을 만드는 것에 관한 다음 제시문을 읽고,각 제시문 간의 논리적 연관성을 설명하라. (500~600자)
문제2. 제시문 (라)의 입장에서 (다)의 입장을 심도있게 비판하라.(500~6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