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히가냐, 뒤집기냐…경제 공약으로 표심잡기

오는 11월4일 미국 대통령 선거일을 약 3주일 남겨놓고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경제공약을 추가로 쏟아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 중 53%가 경제 문제를 이번 대선의 최고 관심사로 꼽은 데다, 금융위기가 이제는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실물경제로까지 번지자 경제공약이 표심을 얻는데 즉효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Global Issue] 오바마vs매케인, 금융위기 해법 대결


⊙ 오바마 '대세 굳히기'용 경제공약

오바마는 54%의 지지율로 39%인 매케인을 무려 14%포인트 차이(CBS·뉴욕타임스)로 앞서가고 있어 추가 경제공약은 '대세 굳히기'용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대한 세금 공제 △주택소유자들의 주택 차압 유예 △실업보장 혜택 관련 세금 철폐 △주정부와 지방정부 전문 대출기관 설립 등을 들고 나왔다.

이들 공약을 실행하려면 총 600억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털리도 유세에서 "우리는 내일 일자리가 붙어있을지, 연금이 살아있을지, 요금청구서를 지불할 월급봉투를 받아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이 더이상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말하며 금융위기로 고통받는 일반 국민들의 힘든 심정을 공략했다.

또 금융위기로 들끓는 유권자들의 분노를 월가의 최고경영자(CEO)와 금융권, 정치인들의 책임론으로 돌렸다.

그는 "탐욕에 눈먼 월가 CEO들, 남의 돈을 갖다 쓰는 정치인들, 재정능력이 없는 서민들을 유혹해 주택을 사게 한 금융권이 초래한 비상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제공약으로 역전타 노리는 매케인

525억달러 규모의 추가 경제공약을 내세운 매케인으로선 경제 카드로 역전타를 날려야만 하는 절박한 처지다.

오마바 진영에 대한 물불 안가린 날 선 공격이 먹혀들지 않자 경제공약에 밖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다.

매케인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6개월간 예금을 전액 보장하고 △정부가 주택소유자들의 부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인수하며 △실업수당 관련 세금을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는 등의 화끈한 내용을 제시했다.

현재 미국에서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은 360여만명이다.

이 수당에 매기는 세금을 폐지하면 실업자들이 받는 돈은 평균 10% 정도 늘어난다.

그가 제시한대로 자본이득세를 내년과 내후년에 현행 15%에서 7.5%로 줄여주면 100억달러의 감세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매케인은 이와 함께 경제위기의 공범으로 지목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차별화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그는 "이 나라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경험과 용기,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운이 바뀌기만 바라며 지난 8년간 허비했던 것처럼 다시 앞으로 4년을 허비할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누가 당선되더라도 두 후보의 추가 공약이 실현된다면 미 정부의 재정적자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미 재정적자는 2008 회계연도(2007년 10월~2008년 9월)에 사상 최대인 4548억달러까지 불었다.

이는 지난해의 약 3배, 미 국내총생산(GDP)의 3.2%를 차지하는 막대한 규모다.

⊙ 차기 재무장관엔 다이몬 JP모건회장 유력

지지율에서 앞선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누가 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을까.

이에 대해 경제전문 매체인 마켓워치는 월가에선 제이미 다이몬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를 가장 유력 후보로 꼽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 미 재무장관의 힘은 역대 어느 장관보다 막강하다.

공적자금 투입 등으로 금융사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다이몬은 정치 성향으로 따지면 민주당에 가깝다.

1996년부터 2000년 사이에 민주당에 6만달러의 정치헌금을 냈다.

JP모건도 지난해 예비선거 때부터 7월 말까지 오바마 캠프에 41만4000달러를 지원한 반면 매케인 캠프엔 17만9000달러만 후원했다.

다이몬이 차기 재무장관 적임자로 꼽히는 것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고 있는 데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형태로 JP모건을 성공적으로 키워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위험성을 미리 알아채고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관련 자산을 서둘러 처분해 위기를 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JP모건은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유리한 조건에 인수해 금융권 강자로 떠올랐다.

다이몬은 도전을 즐기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부실화된 뱅크원을 살려냈으며, JP모건과 체이스맨해튼의 합병도 무난히 이끌어냈다.

위기관리 능력이 워낙 탁월해 오바마가 고민하지 않고 다이몬을 선택할 것이라고 월가는 보고 있다.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고문,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연방은행 총재,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위기를 정면 돌파할 수 있을지 의문이 없지 않다.

한편 다이몬은 최근 모교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미 정치시스템이 나라를 건강하게 만드는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만큼 구조적으로 굳어 있다"며 "미 정부와 의회가 나태한 자세로 의사 결정을 내려 금융위기를 연장시키고 있다"고 비판해 관심을 끌고 있다.

⊙ 차기 정부의 대 아시아 경제정책은?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전문가인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박사는 "미국 차기 정부가 통상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 도하 라운드의 성사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라고 밝혔다.

놀랜드 박사는 한국을 방문해 지난 13일 '차기 미국 정부의 대아시아 경제정책'이라는 주제로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이 개최한 강연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놀랜드 박사는 차기 미 정부의 경제정책은 금융위기와 거시경제의 새로운 흐름에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놀랜드 박사는 한·미 FTA가 궁극적으로 비준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FTA의 비준 권한을 갖고 있는 의회는 보호주의 성향이 강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유무역에 대한 미 국민들의 반대도 커지는 등 최근 정치환경 변화는 우호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가 1990년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과시켰던 길을 밟을 것"이라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노동 환경 안전성 등에 대해 재협상을 할 것이고 보다 개선된 합의안을 도출해 의회 비준을 얻어낼 것"으로 예상했다.

자유무역주의자인 매케인이 당선되면 FTA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의회를 설득하는 것이 숙제라고 덧붙였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시장 자유화 요구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놀랜드 박사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1970년대 카터정부 이후 미국의 규제완화 정책 기조가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며 "이런 정책 변화로 아시아 국가들에 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가 결국 약화되고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놀랜드 박사는 한·중·일 3개국과 아세안(ASEAN)이 최대 83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에 합의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와 관련,"CMI가 성공하면 아시아 지역만의 금융 지원수단을 확보하게 된다"고 평가하며 "CMI의 성공 여부는 일본과 중국의 공조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놀랜드 박사는 존스홉킨스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후 예일대와 도쿄대 등에서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미국 내에서 한반도 통으로 알려져 있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