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떠나간 코스닥시장 2부리그 전락 우려

[Make Money] "NHN 너마저도…" 알짜기업 코스닥서 속속 이탈
코스닥시장이 출범 1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네이버로 잘 알려진 코스닥의 상징 NHN이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키로 결정한 것이 직격탄이었다.

NHN 이전을 계기로 코스닥을 떠나려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렇게 되면 코스닥시장은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유가증권시장의 '2부리그'로 전락하게 된다.

NHN은 주주들의 요구에 따라 실리를 택했다면서 코스닥시장을 관리하는 증권선물거래소의 만류도 뿌리쳤다.

NHN이 수년 동안 동거동락한 코스닥시장을 떠나는 이유와 함께 이번 NHN의 결정이 코스닥시장에 미칠 타격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코스닥에서 NHN의 위치

국내 주식시장은 크게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으로 나뉜다.

유가증권시장은 대기업 중견기업 등 규모가 큰 기업들이 주로 상장돼 있고,코스닥시장은 중소·벤처기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코스닥시장은 1996년 7월 중소·벤처기업에 안정적인 자금조달 기회를 부여하고,투자자에겐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출범했다.

코스닥 상장사는 출범 당시 343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부터 1000개사를 돌파하는 등 양적으로 팽창해왔다.

또 거래대금과 시가총액(전 상장주식을 시가로 평가한 총액)이 세계 신시장 가운데 수위권을 차지할 만큼 급성장했다.

코스닥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이 바로 인터넷 포털업체 NHN이다.

NHN은 매출액이 2002년 상장 첫해 746억원에서 지난해 9200억원을 넘겼고 올해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상장 당시 3300억원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은 지난해 한때 14조원을 넘어서며 눈부신 성장세를 과시했다.

NHN은 코스닥기업 가운데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4일 현재 11.05%에 달한다.

코스닥상장사가 1000곳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NHN 1곳이 110곳의 시가총액의 합계와 비슷한 셈이다.

코스닥에서 NHN의 상징성은 물론이고 실제 미치는 영향력도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 만류 뿌리치고 코스닥 떠난 이유

비상이 걸린 증권선물거래소는 NHN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급기야 이정환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최휘영 NHN 사장에게 코스닥시장 잔류를 권고하는 서한을 보내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균형발전을 위해 코스닥시장에 남아주기를 바란다"고 사정했다.

하지만 NHN은 냉정하게 거절하고 유가증권시장 이전을 결의했다.

황인준 NHN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주요 주주인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 유가증권시장 이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코스닥을 떠나기로 했다"며 "기관들은 NHN이 더 이상 코스닥 대장주로서 갖는 상징적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주들은 왜 NHN이 코스닥을 떠나길 원하는걸까.

무엇보다 유가증권시장으로 가면 기관이나 외국인 등 큰손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을 수 있다.

코스닥시장은 큰손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는 시장으로 개인투자자 비중이 90%가 넘는다.

NHN 주주들은 코스닥에서 NHN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NHN이 코스피로 편입되면 장기 지분보유 비율이 증가될 가능성이 높고 기관투자가들이나 일부 보수적인 연기금에서의 신규 편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NHN은 유가증권시장에서 단숨에 시총 30위권 안에 들기 때문에 펀드들의 매수세가 유입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창권 대우증권 연구원은 "유가증권시장으로 오면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들의 편입 대상이 되기 때문에 코스닥시장에 머무는 것에 비해 수급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코스닥시장이 횡령·배임 사건이 끊이지 않는 등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점도 NHN의 이전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NHN에 대한 비난의 여론도 높다.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하는 실리가 있을지 의문이고,있다고 하더라도 코스닥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이 코스닥을 등졌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은 흔들림없이 나스닥시장을 지키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는 것이다.

⊙ 코스닥 '2부리그' 전락 우려

코스닥을 떠나려는 곳은 NHN뿐만이 아니다.

올해 3,4월 아시아나항공과 LG텔레콤도 각각 코스닥시장을 떠났고 최근에는 부국철강도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겨갔다.

한국선재 무학 등은 유가증권시장 이전을 예고한 상태다.

더욱 큰 문제는 향후 코스닥에 이별을 고하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정근해 대우증권 연구원은 "NHN의 이전은 벤처기업의 이탈이란 점에서 유가증권시장에 경쟁 회사들이 있는 대기업 계열 아시아나항공이나 LG텔레콤의 이전과는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며 "NHN 이전을 계기로 유가증권시장과 잘 어울리는 제조기업뿐만 아니라 벤처기업들마저 코스닥 이탈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견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인 코오롱아이넷은 내년에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최근 밝혔다.

이렇게 되면 코스닥시장은 벤처기업 자금 조달 창구라는 코스닥시장의 근본이 흔들리면서 유가증권시장의 2부리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올해 유가증권시장은 처음으로 신규 상장보다 이전 상장이 더 많아지는 이상한 모양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 기업은 LG이노텍 명문제약 비유와상징 엔케이 등 4곳에 불과한 상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규 상장은 코스닥시장으로 한 뒤 여건이 되면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며 "코스닥시장이 유가증권시장과의 차별성이 희미해지면서 시장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코스닥시장이 양적 발전만 이룩했고 질적으론 후퇴했다는 사실이 이번 NHN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이란 지적도 많다.

증시 전문가들은 코스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우선 코스닥 진입·퇴출제도를 더욱 엄격히 하고 불공정거래의 근절 등을 통해 시장을 건전화하기 위한 노력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 우량기업을 위한 지수 및 상품을 개발해 코스닥 기업들의 이탈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진형 한국경제신문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