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국민과 소통하는 건 대통령의 당연한 책무"

반 "방송 편성권 침해하며 소중한 전파만 낭비"

이명박 대통령의 첫 라디오 연설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 쪽에서는 "청와대가 KBS의 편성권을 침해하는 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일방적으로 방송을 했다"고 주장한다.

국정 현안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연설을 할 수는 있지만 방송사의 자율권과 편성 독립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쪽에서는 "야당에도 반론권을 준 만큼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이 대통령의 방송연설은 8분30초 동안 나갔지만 뒤이어 민주당 김진표 최고위원의 방송은 이보다 긴 8분57초 동안 나갔기 때문에 충분히 반론권이 보장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라디오 연설 구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매주 한 차례 라디오를 통해 국정운영 방향과 정국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주례 라디오 연설을 추진했으나 방송사와의 입장 차이로 무산된 바 있다.

미국에서도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라디오를 통한 노변정담(fireside chat) 형식의 주례연설을 한 바 있다.

문제는 루스벨트 시대의 라디오와는 그 의미와 무게에 큰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우리 국민이 정부의 위기극복 노력을 반신반의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라디오 연설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점이다.

대통령 라디오 연설문제를 짚어본다.

⊙ 반대 측, "방송의 편성권을 침해하고 귀중한 전파만 낭비하기 십상"

야당인 민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청와대가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대해 방송사와는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은 채 혼자 결정해 통보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청와대가 방송 시간까지 '월요일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로 못박은 것은 명백한 편성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라디오의 황금시간대에 아침 뉴스를 자르고 대통령 연설을 방송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시대인 만큼 한 방향인 연설은 귀중한 전파만 낭비하기 십상이라고 꼬집는다.

대공황을 맞아 휴일에 미국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듣는 것은 설사 알맹이가 없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지만 영상과 인터넷을 비롯해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시대에 일방적 메시지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자칫 잘못하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만 방송 전파를 독점한다는 점이라며 반론권 차원에서 야당에도 동일한 시간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한다.

⊙ 찬성 측, "연설 통해 정부방침 밝히고 국민협조 구하는 건 대통령 책무"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에서는 국가 주요정책과 비전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오해를 사고 혼선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국민불안을 가라앉히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연설이나 담화를 통해 정부 방침을 밝히고 국민 협조를 호소하는 것은 국가 최고 지도자의 본질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강조한다.

특히 "이 대통령은 특정 경제정책을 내세우거나 그에 대한 비판을 받아치는 대신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부·기업·금융기관·정치권·국민 간 신뢰를 강조하고 정부의 방침만 담담하게 밝혔다"며 라디오연설은 국민과의 새로운 소통 형식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연설방송은 각 방송사가 하고 싶으면 하고,하기 싫으면 하지 않도록 했으며,반론권도 더 길게 보장했다"며 청와대의 방송장악 시도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 쌍방향 소통 시대 맞아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의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직접 설명하고 위기극복의 의지까지 다짐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국민과의 '소통부재' 문제를 해소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노변정담 형태로 라디오연설을 꾸준히 해나가면서 국민들의 어려움을 다독이고 결국 경제위기도 극복한 사례가 있으며,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이 오늘날까지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다만 소통문제에서 본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더 자주 연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소통이 일방적으로 입장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듣는 것이 핵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인터넷 세대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쌍방향 소통 시대'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두 수용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지만 대다수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소수들은 어떤 점에서 이견을 갖는지 파악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노변정담(fireside chat) = 벽난로나 화롯가에 둘러앉아 서로 한가롭게 주고 받는 이야기를 말한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당시 대공황의 고통에 빠진 국민을 마치 벽난로 옆에서 속삭이듯 설득하는 내용으로, 대표적 노변정담 사례로 통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월13일 KBS1 라디오를 통해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취임 후 첫 '노변한담'형태의 라디오 연설을 했다.

◆ 대공황 = 1929년 10월24일 미국 뉴욕 월가의 뉴욕주식거래소에서 주가가 대폭락한 게 그 발단이 됐으며,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이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1939년까지 이어졌으며 가장 전형적인 세계공황으로 기록되고 있다.

◆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 개별적으로 송수신이 가능한 두 지점 간 커뮤니케이션을 말한다.

이원 커뮤니케이션 또는 양방향 무선이라고도 한다.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것을 수신자가 받기만 하는 일방향적인 통신이 아니라 수신자가 영상과 음성을 발신하는 통신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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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10월16일자 A7면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대통령입니다'를 격주로 월요일 아침에 진행키로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지난 13일 첫 라디오 연설 이후 시점 등 진행방식을 좀 조정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기조가 크게 바뀐 것은 없다"면서 "지금처럼 월요일 아침에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라디오 연설 횟수는 애초 매주에서 격주 단위로 하는 걸로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연설 시간은 당초대로 7∼8분 정도로 유지하고,방송 녹음분의 경우 보도자료 식으로 각 라디오 방송사에 일괄 배포하는 대신 특정 방송사와 계약을 맺어 전담 방송하되 다른 방송국이 요청하면 배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