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스 주한 美대사 부임 본격 외교활동
[Focus] "한국에 더 가까이"…'감성외교'로 한·미 동맹 다진다
스티븐스 대사는 1975년 평화봉사단(the Peace Corps) 단원으로 한국에서 2년간 충청남도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예산에 머물던 당시 그는 '심은경'이란 이름으로 원어민 교사를 하면서 동료 교사들과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태권도도 배우는 등 생활력 강하고 매사에 열성적으로 임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는 귀국 후에도 학교 교사들과 연락하며 지내 왔고, 지난달 27일 첫 외부 행사로 당시부터 절친하게 지냈던 여교사 3명과 가족들을 대사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돈독한 우정을 보여줬다.

또 지난 8일에는 예산중학교를 직접 방문해 환영 행사 자리에서 추억이 담긴 영상 자료를 보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행사 후 "예산은 나를 외교관으로 만들었다"며 "외교관은 다른 문화와 사고 방식을 이해해야 하는데, 예산에서의 1년은 외교관의 자질을 터득할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1975년 9월,한국에 온 지 10주 만에 혼자 기차를 타고 예산에 도착해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예산중에 걸어서 출근했다"며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한국말로 인사했는데,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 우여곡절 한국행 그리고 만만찮은 과제들

한국에 온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왕성한 활동을 하며 한·미 외교 라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그이지만 사실 한국까지 오는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 의회는 그녀가 북한과 6자회담에서 협상했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아래서 북한에 테러리스트 명단 제외 등 너무나 많은 양보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여러 공화당 보수파 의원들은 대북 강경노선 추진을 위해 지한파로 알려진 그가 북한 인권문제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대사 부임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의 대사 인준이 지난 4월부터 넉 달간 지연되면서 미국 정계 일각에서는 스티븐스 대사를 대신할 실무자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주한 미 대사 내정자 인준 지연이 지속되는 것은 한국이 미국에 중요하지 않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문제였다.

다행스럽게도 힐 차관보가 공화당과 합의점을 찾으면서 인준에 성공했고 이는 곧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만들 절호의 기회로 다가왔다.

한편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한·미 FTA 비준,전시작전권 인수,북한 핵 동결 및 테러지원국 해제 등 미국 대선의 행방이 정해지기 전부터 양국에는 민감한 안건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한국에 깊은 인연과 애정을 갖고 있는 미국 대사의 존재는 양국이 함께 넘어야 할 첩첩산중 협상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외교부는 기대하고 있다.

지난 6일 스티븐스 대사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신임장 전달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의 미국산 무기 및 군사장비구매(FMS) 지위 격상 법안의 미 의회 통과를 비롯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의 조속한 시행, 한국 대학생 미국 연수취업 프로그램의 순조로운 진행 등에 관한 환담을 나눴다.

⊙ '감성 외교'로 한·미동맹 공고히

우리나라와 미국의 1883년 수교 이후 첫 여성 대사로 부임한 스티븐스 대사는 전 주한 미 대사이자 6자회담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약 2년간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또 대사로 지명되기 전에는 6자회담 동북아 평화체제 실무그룹 미국 측 대표였다.

즉,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현안에 대해 이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지난 4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스티븐스는 평화 협상 및 복잡한 현실에 대한 이해력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0년간 양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반미·반한 감정으로 60년 동맹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이를 바꿔 보려 했지만 오히려 쇠고기 파동의 역풍에 밀려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만들었다.

중국이 세계를 집어삼킬 기세로 급성장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한국은 정작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교훈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는 혼자의 힘으로 동북아 지역의 경제 발전과 안정을 이끌 수 없다는 점을 냉철히 인지하고 미국과 중국의 파워 게임에서 실속을 챙기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월스트리트 금융 공황과 늘어나는 해외 군사비 지출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은 지금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리는 이번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의 부임으로 한국과 미국이 서로 긴요한 전략적 파트너임을 재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희석 한국경제신문 인턴(한국외대 4년) sanochi103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