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꽃보다 고운 '꽃갑'이라네
2002년 4월 초 꽃샘비가 촉촉이 내리는 토요일 오후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건물에서 조촐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박양자,신광자씨를 비롯해 회갑을 맞은 동년배의 여성 문인 4명이 수필을 쓰고 화가는 스케치로 컷을 그려 넣어 <우리가 꽃갑이라네>라는 수필집을 펴낸 것이다.

'꽃갑'이라? 무슨 뜻인지 얼른 떠오르지도 않는 게 어딘지 예사롭지 않은 제목이다.

저자들이 처음 만든 제목은 <우리가 회갑이라네>였다.

제목에는 '위아래 보살피며 좋은 세월 다보내고 한숨 돌릴까 하니 벌써 회갑이란다'라는 아쉬움의 여운이 담긴 어투였다.

게다가 '어느새 회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싫지만 남들이 우리를 보고 회갑이라고 한다네' 하는 놀람과 거부의 심리가 은근하게 드러나는 맛깔스러운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한구석 미진한 데가 있는 것이었다.

저자들이 그 제목을 놓고 고민하는 자리에 우연히 원로 언론인 한 사람이 들렀다.

"선생님 마침 잘 오셨어요. 이 제목이 어떤가요? 혹시 생각나시는 좋은 제목 없으십니까?"

젊은 시절부터 보아왔던 한 작가의 말에 '회갑(回甲)'이라는 노티 나는 말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언제까지나 '꽃'이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 순간 그의 머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꽃갑(甲)이라 하면 어때요?"

"꽃갑? 바로 그거예요. 우리가 찾던 게."

일시에 박수와 함께 책 제목은 만장일치로 <우리가 꽃갑이라네>로 결정됐다.

사연의 주인공은 바로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활동하고 한글학회에도 몸담았던,지금은 여든을 훌쩍 넘기신 정재도 선생이다.

그는 그런 '꽃갑'의 탄생 일화를 그해 여름 우리말 연구지 <한말글 연구>를 통해 소개했다.

"김수업 선생(당시 대구가톨릭대 총장)께서 '문학'이란 말을 '말꽃'이란 말로 바꿔 썼더니 벌써 백 년 동안이나 써온 말을 생판 낯선 말로 바꾸어도 되느냐,사라진 줄 알았던 국수주의 망령이 도깨비처럼 되살아났구나,'문학'이 '말꽃'이면 '미술'은 '물감꽃'이고,음악은 '소리꽃'이냐 하는 등 이런저런 말들이 많더라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말꽃'이란 말에 감동 비슷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이 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이란 용어와 '말꽃'이란 말이 주는 느낌이 다르고,따라서 똑같은 개념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것도 사실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국수주의적 사고의 소산이라고 하는 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육교'를 '구름다리'로 고쳐 쓰자고 한다면 이것도 국수주의이겠습니까?

'구름다리'에는 '육교'에 없는 정서적 가치가 있습니다.

'소데나시'를 '민소매'라고 하자고 한 것이 최근의 일인데 국수주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쉽게 유행이 되었겠습니까?"

2003년 10월6일 당시 문화관광부 주최로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국어순화 방안 세미나'에서 국립국어연구원(지금은 국립국어원) 남기심 원장이 기조강연에서 한 말이다.

두 개의 일화에는 '우리말 다듬기' 작업의 어려움과 그 방향성에 관한 시사점이 담겨 있다.

'꽃갑'은 사실 '회갑'을 다듬은 말이라기보다 '회갑 맞은 이들 중 여성'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단어의 탄생이라 하는 게 적절하다.

나름대로 우리 정서가 담긴 정감어린 말이었지만 언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말꽃'은 '문학'을 대체하는 말로 제시됐지만 역시 널리 퍼지지 못했다.

이 말은 특히 과거 비행기를 날틀로,컴퓨터를 셈틀로 순화하자는 주장만큼이나 억지스럽다는 평가를 받기까지 했다.

한때 오프너(opener)를 '마개뽑이'로 다듬었지만 이 말은 언중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를 '병따개'가 차지했다.

'병따개'는 누가 언제부터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말이 위력을 발휘하는 데서 말다듬기의 방향이 '자연스러움'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