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은행들, 금융위기 여파로 속전속결 구조조정

[Global Issue] 번개불에 콩볶아 먹는다?…글로벌 금융시장 빠르게 재편
미국발 금융 위기의 여파로 전 세계 금융업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불과 몇 달 사이 미국의 많은 은행들이 간판을 내리고,그 주인이 바뀌었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었다.

반면 그 사이 살아남은 은행들은 몸집을 불리며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

건전한 재정과 수완 좋은 인수합병(M&A) 실력을 갖춘 데 따른 보상이다.

그러나 너무 커지고,너무 빠른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위기를 잉태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부분도 많지만 부작용 역시 상존한다.

⊙ 속전속결 금융업계 구조조정

우선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은 아주 큰 폭의 금융업계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빠르게 성장해 왔던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신용경색 상황에서 예금이라는 안전판을 갖고 있는 상업은행에 넘어갔다.

살아 남은 투자은행들은 지주회사로 전환해 소규모 상업은행을 인수하는 등 살 길을 찾고 있다.

지난 3월엔 미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JP모건에 인수됐다.

파산 신청서를 제출한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는 부실 자산을 제외하고 경쟁력 있는 각 사업 부문을 일본의 노무라증권과 영국의 바클레이즈, 그리고 미국의 베인캐피털과 헬먼 앤드 프리드먼 등 다른 금융회사들이 나눠갖는 형국이다.

투자은행 1위 모건스탠리는 일본의 초대형 은행인 미쓰비시UFJ에 지분을 팔았다.

미 저축대부업체인 워싱턴뮤추얼은 JP모건에 넘어갔고 미 4위 상업은행인 와코비아의 은행영업 부문은 씨티그룹 차지가 됐다.

영국의 HBOS와 B&B도 새로운 주인을 찾았으며 아이슬란드의 글리트니르는 국유화의 길을 걸었다.

베네룩스 3국의 포르티스 및 벨기에와 프랑스의 합작 금융기업인 덱시아는 부분 국유화라는 해법을 찾았다.

⊙ 금융업계 '보다 크게, 보다 빠르게' 변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 미 금융업계 재편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JP모건 씨티그룹이라는 3개 대형 은행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미국의 전체 예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21.4%에 불과하던 수준에서 어느새 31.3%까지 높아졌다.

미국 전체 은행 예금의 3분의 1 이상을 빅3 은행이 장악하는 시대가 온 것.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지역별로 중급 규모의 은행과 소규모 은행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특이한 구조를 보여왔다.

이미 금융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대형 은행과 수천개의 소형 은행만 살아남고 중간 규모의 은행들은 없어질 것으로 전망해왔지만 그동안 저금리 호황 덕분에 은행업의 구조 개편은 더디게 진행돼 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금융업계가 미국 정부의 중재 하에 지난 10년에 버금가는 통합을 이루고 있다.

최근 몇 주간 진행된 금융위기로 미 금융산업에서 수십년간 이뤄질 합병이 전광석화처럼 진행되면서 중간 규모의 은행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미국에는 8000개 이상의 은행이 남아있고,이들 가운데 수많은 은행에서 상업용 부동산이나 대출이슈가 터져나오고 있다.

찰스 벤델 리지필드 대표는 "향후 2년간 1000개 이상의 은행이 도산이나 피인수로 문을 닫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 은행 대형화의 양면성

은행들의 속전속결 대형화 추세는 당분간 지속되면서 살아남은 대형 은행들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형은행의 경우 사업이 다각화돼 있어 엄청난 규모의 충격이라도 그만큼 더 잘 흡수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금융 재편 양상은 일본의 금융위기와 비견된다.

일본 은행들 역시 1990년대 말 부실 대출로 무너지는 위기에 놓이면서 정부가 4400억달러에 가까운 세금을 투입했고,심한 경우에는 국유화를 선택해 시장을 패닉에서 정상화했다.

결과적으로 미쓰미시UFJ파이낸셜과 같이 그 당시 살아남은 대형 은행들은 더 크고 더 건전해지면서 최근 금융시장 M&A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대형 은행들이 너무 커져서 도산하기 힘든 상황이 굳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 대형 은행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면 잠재적 파급력을 감안해 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설 것이고,이를 믿고 더 큰 리스크를 지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미국 상원 금융위원들은 내년을 목표로 은행산업 규제안을 새로 짜고 있다.

새로운 안에는 은행 합병 후 예금 점유율이 10% 이상 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수많은 소형 은행들이 3대 은행의 구원의 손길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상치되는 부분이다.

⊙ 소형 은행·소비자들 손해인가 기회인가

여기에 대형 은행들은 상당한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아직 남아있는 소형 은행들을 위협할 수 있다.

은행 대형화를 부추기는 금융위기가 소형 은행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면서 우려는 이미 현실화될 조짐이다.

소형 은행들의 도산 걱정으로 예금자들은 좀더 안전한 대형 은행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를 감안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예금보장 한도를 늘려달라는 요청을 한 상태다.

예금자들에게도 좋은 신호는 아니다.

소형 은행들의 경우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예금이자를 보장했지만 대형 은행들은 전혀 아쉬울 것이 없다.

실제로 저축은행들은 1년에 5%의 이자를 제공하지만 JP모건은 2.25%에 불과하다.

JP모건이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하자 저축은행들은 곧바로 경쟁 상황에 빠졌다.

JP모건이 워싱턴뮤추얼의 금리 수준으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소형 은행들이 제공하지 않는 자산관리 서비스로 고객들을 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형 은행들은 높은 이자를 유지하면서 고객 서비스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대신 워싱턴뮤추얼 예금자들은 그대로 남아 낮아진 이자 대신 JP모건의 안전성을 택할지,높은 이자를 주는 다른 소형 은행으로 옮겨갈지 고민하고 있다.

소형 은행이나 소비자 모두에게 모두 일종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 금융산업,업종 간 국가 간에 재편

금융산업에는 한동안 찬바람이 불고 '준(準) 금융 경색' 상태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늘의 금융 경색을 야기한 요인들이 해소되는 데에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상당한 숫자의 금융기관 파산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또 금융 감독의 강화와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 강화도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위축시킬 것이다.

금융산업 전체가 위축된 가운데,금융산업 안에서는 업종 간 재편이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업의 비중이 줄어들고,헤지펀드 등 비은행 금융업에도 찬바람이 불 것이다.

그래서 상업은행의 비중이 늘어나고 종합금융업이 금융업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금융산업은 국가 간 재편 과정도 거치게 될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금융 선진국으로부터 일본 등 다른 국가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게 될 것이다.

최근 일본 은행들의 미국 투자은행들에 대한 투자가 그런 글로벌 재편의 일환이다.

지난해 말 또는 올해 초 너무 일찍 투자했다가 크게 손해를 본 중국과 싱가포르 등 국부펀드의 미국 진출은 잠시 주춤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