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서 벗어나 맘대로 쓰는 건 '동문서답'과 같다

대학마다,또 각 전형마다 논술의 방식이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교수님들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바는 결국 단 두 가지이다.

주어진 제시문에서 도출되는 주제에 관한 '이해'와 그 해당 주제에 관한 수험생 본인의 '생각'이다.

제시문이 어떠하든 혹은 문제가 어떠한 유형이든 간에 종래에는 '심층적 이해'와 '논리적 견해 제시'라는 두 가지 요구로 모든 논제가 귀결한다.

전 회차에서 살펴 본 고려대 1번 논제의 경우에는,제시문 요약으로서 순수하게 수험생의 이해 능력을 묻는 문제였다.

주관을 개입시키거나 전개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회차에서 다루는 2번 논제는 수험생의 이해 능력과 주관을 모두 다 묻는 문제이다.

써 달라는 대로 써야

자신의 이해력과 주관의 논리적 전개가 모두 도마에 올라간다는 것을 생각하고 염두에 두고 논제에 접근해야 한다.

3번 논제의 경우에도 이해력 검증을 목적으로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견해 제시는 총 3개의 문항을 통틀어 2번 문항이 유일하게 요구하고 있다.

각각의 문항에는 평가하고자 하는 특정한 사고력이 있다.

예전의 '통짜'형 답안을 요구했던 논제에서 현재의 문항별 논제로 논술이 변화한 것도 각 문항에서 수험생의 영역별 사고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2번 논제와 같이 여러 가지를 지시하는 논제의 경우에는 긴장해서 논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학생들은 가끔씩 제시문은 유심히 읽고,막상 중요한 논제는 건성으로 읽는 우를 범하기도 하는데,제시문과 논제 중 점수에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쪽은 보통 논제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논술은 기본적으로 '써달라는 대로 써야 하는 글'이기 때문에 논제의 요구조건을 명확히 간파한 다음에 답안 작성에 들어가야 한다.

마음 가는 대로,펜 가는 대로 쓰는 백일장처럼 쓰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아무리 훌륭한 명문을 답안에 적어낸다 하더라도 논제의 방향에서 벗어난 답안,논제의 요구사항이 미흡하게 충족된 답안은 결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지난주에도 강조했듯이,'논술은 대화'이므로 상대방의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을 하는 순간 질문자인 교수님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래서 논술 문제를 풀 때에는 제시문도 주의 깊게 읽어야 하지만,논제는 제시문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자,그럼 복합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2번 논제를 뜯어보도록 하자.

2번 논제는 두 개의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첫째,학문의 진보에 관한 제시문 (나),(다)의 견해를 비교하라는 것이고,둘째는 제시문들을 참고하여 학문의 진보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논술하라는 것이다.

제한을 두지 않고 '제시문들'을 참조하라고 했으니,비교 대상인 (나),(다)뿐만 아니라 (가)와 (라) 또한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답안을 작성하여야 한다.

논술 문제에 등장하는 제시문들은 하나의 거대한 주제 아래 묶여 있다.

그 연관 관계가 느슨할 수도 있고,팽팽할 수도 있지만,하나의 흐름 안에 엮인 글들이기 때문에 (가)는 1번에서 요약을 이미 마쳤고,(라)는 3번 논제에서 분석될 글이니까 2번 답안과 상관없다는 태도는 금물이다.

네 개의 제시문은 전부 '학문과 지식'이라는 거대 주제에 관해 다루고 있으므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할 때 이들 모두가 다 고려의 대상이다.

논제를 꼼꼼하게 읽어라

일단 첫 번째 요구사항부터 충족하면서 해제를 시작하자.

(나)와 (다)를 비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비교'의 정확한 의미 파악이다.

간혹 제시문들의 '비교'를 하라고 하면,제시문의 공통점만 찾으면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

국어 시간에 '비교'는 공통점을,'대조'는 차이점을 부각하는 것이라고 배웠기에,논제에서 '비교'를 하라고 하면 공통점만,'대조'를 하라고 하면 차이점만 쓰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이든 대조이든 간에 그 원어(原語)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것들을 함께 모아놓고 이리저리 맞춰보면서 살핀다는 뜻만 존재할 뿐이지,비교는 공통점만 찾는 것이고 대조는 차이점만 찾는 것이라는 의미가 필연적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논제'에서 비교를 하라고 하면,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설령 비교가 '공통점'만 찾는 것이고,대조가 '차이점'만 찾는 것이라고 개념을 정의 내린다 할지라도,공통점을 제대로 부각시키려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따져보아야 하고,차이점의 효과적인 부각에 있어서도 차이점 외에 공통점을 설명해야 한다.

'비교'에 대한 오해는 풀렸으니 이제 제시문 (나)와 (다)를 비교하는 일에 착수하자.

비교는 공통·차이점 함께 설명

제시문 (나)를 살피면 필자가 학문 연구에 대해 부정적 입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진리는 오로지 하나만 존재하는데 반해,학문 연구는 다기다양하므로,학문 연구란 태생적으로 무수한 오류의 조합일 뿐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는 무수한 학문 연구 가운데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해낼 수도 없으며 또한 진리가 무엇인지 분간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발견한 진리를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문의 효용과 진보 가능성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제시문 (나)는 학자는 무위도식의 존재라고 결론 내린다.

학자들은 무위도식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사회의 소중한 가치와 신성한 믿음을 파괴하기 때문에 큰 해악을 미친다고 비난한다.

제시문 (가)가 학문 연구의 의의가 세상의 지성적 합리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제시문 (나)의 입장에서 새로운 학문적 성취는 오히려 사회에 병폐가 된다.

이에 반해,제시문 (다)는 새로운 학문적 발견과 성취가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학문관을 보인다.

갈릴레이는 학문의 발견을 통해 잘못된 관습과 미신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안드레아에게 설파한다.

지동설의 정립,신대륙의 발견과 낙하의 원리와 같은 학문적 발견은 인류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변모시켰다.

학자들은 이러한 지식의 최전방에 서 있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제시문 (다)는 사람들은 보다 더 새로운 것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다며 글을 맺고 있다.

즉,학문은 긍정적인 기능을 담당하며 인간을 발전으로 이끈다는 점에서,제시문 (다)는 학문의 의의를 지성적 합리화라고 규정한 제시문 (가)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즉,제시문 (나)와 (다)는 학문 연구가 개인과 사회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나,그 영향력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대조적이다.

제시문 (나)는 학문 연구가 무용하고 학자란 유해한 존재라고 폄하하나,제시문 (다)는 학문 연구의 진취적 의의를 높이 사고,학자는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이라고 정리한다.

(라)와 연계시켰을 때,제시문 (나)의 화자는 (라)에 나타난 사회 구성원의 두 유형 중 '모방자'에 속하는 사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학문적 성취가 해악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의 경우,기존 학문의 틀 속에 안주할 경향이 크다.

반면 제시문 (다)의 필자는 (라)의 두 유형 중 '혁신가'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비판력과 창의성 시험 의도

그럼 여기까지 '이해분석력'은 충분히 보였으니,'학문의 진보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논술'하여야 한다.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라는 것은 수험생의 '비판력'과 '창의성'을 시험하겠다는 출제자의 의도이다.

비판력은 글의 이해를 넘어 자신의 관점으로(혹은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특정 제시문의 입장에서 비판하라고 요구한 경우에는 그 지정된 특정 제시문의 관점에 서서) 다른 관점의 내적 오류와 외적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관점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세워야 한다.

주어진 제시문의 관점을 그대로 차용하지 말고,학문의 진보에 관한 독창적인 글을 써야 하며,이 과정에서 (가), (나), (다)의 주장에 대해 자신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라) 또한 적절히 활용하여야 한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