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후 5번 산에 오르고 5번 골짜기로 내려가
[Make Money] 위기의 증시…동트기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증시 격언이 있다.

2003년부터 4년 넘게 숨가쁘게 달려온 국내 주식시장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년 초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간간히 부각되면서 증시에 찬물을 끼얹더니 11월부터 이로 인한 신용경색과 금융기관의 부실문제가 터져 나오며 11개월째 내리막이다.

코스피지수의 조정폭도 이미 30%를 넘고 있다.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로 연거푸 쓰러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연쇄 도산의 공포에 떨고 있다.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도 금융위기를 잠재울 수 있지만 이에 따른 실물경제의 타격은 예상보다 오래갈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동트기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또다른 증시 격언을 제시하며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 우리 증시의 약세장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살펴보면서 현 장세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 우리의 증시 흐름을 어땠을까?

⊙ 1980년대 이후 다섯번의 강세장과 약세장

[Make Money] 위기의 증시…동트기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주식시장은 기본적으로 국내외 경기 흐름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기업실적이 호전되고 이는 주가 상승의 계기가 된다.

증시는 경기를 수개월가량 앞서가는게 일반적이다.

경기가 바닥을 찍으면 증시는 이미 상승 쪽으로 가닥을 잡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경기 정점에서는 상승세가 꺾여 하락세로 접어든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한국 증시는 큰 경기흐름을 따라 다섯 번의 강세장과 약세장을 경험했다.

1985년 5월부터 '88년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3월까지 코스피지수는 131에서 1007로 47개월간 7배나 올랐다.

경기 회복기에 올림픽을 앞두고 투자가 늘고 금리마저 하향 안정세를 보이면서 주가가 급등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후 1994년 8월까지는 약세장이 찾아왔다.

지수는 459포인트로 반토막났고 삼페인을 먼저 떠뜨린 대가는 참혹했다.

29개월에 걸친 기나긴 조정의 터널을 지난 후에는 또다시 강세장이 열렸다.

1994년 10월에는 1100포인트까지 상승했고 저점 대비 148.0% 올랐다.

수출 호전과 국내 증시 개방, 물가 및 금리 하락이 강세장의 동력을 제공했다.

2차 강세장도 26개월 후에는 큰 폭의 조정기를 보냈다.

과잉투자의 후유증에다 외환위기(IMF)를 겪으면서 44개월간 고점 대비 75.3%나 급락했다.

코스지지수는 IMF 구제금융과 대기업의 연쇄부도 속에 280선까지 주저앉았다.

국내 기업들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효과는 1998년 7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IT(정보기술) 붐은 활황장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1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1050포인트를 회복, 278.2% 상승했다.

IT 거품이 꺼지는 순간에도 증시는 침체기를 보내야만 했다.

2000년1월부터 2001년 9월까지 21개월간 지수는 55.7% 내려 468로 주저앉았다.

4차 강세장과 약세장은 내부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컸다.

9·11 테러 직후 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일제히 금리를 내리며 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황에서 국내적으로도 부동산과 내수 경기부양으로 7개월간 2배 이상 올랐다.

하지만 이는 국내 카드사들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며 11개월간 조정으로 이어졌다.

⊙ 다섯 번째 약세장은 어떨까

다섯 번째 강세장은 2003년 4월 이후 55개월이나 지속됐다.

저금리로 인한 주식형 펀드 열풍이 불어 닥친데다 중국 인도 등 이머징마켓이 급성장하면서 세계 경제도 저물가 속 고속성장의 호시절을 보냈다.

국내에는 '1가구 1펀드' 시대까지 열렸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미국 부동산을 시작으로 한 글로벌 자산의 거품이 무너지고 국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우려마저 제기되면서 12개월째 조정을 맞고 있다.

이 기간 하락폭은 30%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추가 하락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기간은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강세장과 약세장의 기간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했다는 게 그 이유다.

이번 다섯 번째 강세장이 5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었던 만큼 12개월로 마무리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또한 미국 경제가 이번 금융위기 사태로 입은 타격은 수개월만에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추가적인 조정의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IMF 직후 280포인트까지 급락한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약세장으로 전환된 초기 12개월 내에 조정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의 재무상태가 개선되고 주식 수급 측면에서도 펀드 시장이 급성장한 상황이어서 과거에 나타난 고점 대비 50% 조정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들어서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들까지 주식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국내 증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 증시가 세계 펀드매니저들이 투자 지표로 삼는 FTSE(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면서 전 세계 중장기 펀드 자금이 국내 증시로 유입될 것이라는 점도 하락폭을 제한해 줄 요인으로 꼽힌다.

서정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