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지성을 다듬는 진화의 과정이다"
● 고려대학교 2009 모의논술(인문계) 논제 1번 문제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 학문 연구를 예술 활동과 구분 짓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학문 연구가 진보의 과정 속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에는 학문 분야에서와 같은 의미의 진보가 없다.
새로운 기술적 수단을 개발했던 시대의 예술품이 그 전 시대의 예술품보다 순수한 예술적 관점에서 항상 뛰어난 것은 아니다.
가령 원근법을 개발했던 시대의 예술품이 단지 원근법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만들어진 예술품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후자의 예술품이 원근법 같은 기술적 조건과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예술성에 합당하도록 대상을 선택하고 형상화하여 재료적 적합성과 형식적 적합성을 지니게 되었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진실로 '완성'된 예술품은 능가되지도 낡아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완성된 예술품에 대한 개별적인 평가는 얼마든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 의미에서 진실로 '완성'된 작품이 다른 하나의,역시 '완성'된 작품에 의해 '추월당했다'라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 분야와 달리 학문 분야에서는 어떤 연구 결과든 10년,20년,50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이 학문 연구의 운명이자 목표이다.
학문은 그것과 유사한 운명에 처한 여타의 문화 영역들과 달리 매우 독특한 의미에서 이 운명과 목표에 예속되고 내맡겨져 있다.
학문상의 모든 '완성'은 새로운 '질문'을 뜻한다.
그 완성과 질문을 통해 학문은 '능가'되고 낡아버리기를 바란다.
학문에 헌신하려는 자는 누구나 그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학문적 업적이 그것의 예술적 우수성 때문에 '향유 수단'으로서 또는 학문적 작업에 대한 훈련 수단으로서 지속적으로 그 중요성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학문적으로 능가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일 뿐만 아니라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멀리 나아가기를 희망하지 않고서는 연구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진보가 무한히 계속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학문의 의미를 문제 삼게 된다.
학문이 무한한 진보라는 법칙에 예속된다는 것이 과연 그 스스로에게 본질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그다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리는 결코 종결되지 않으며,또 종결될 수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즉 광의의 기술적 목적이 거론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학문적 경험을 통해 가능해진 예측과 기대를 우리의 현실적 행위에 길잡이로 삼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답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만 의미를 지닐 뿐이다.
그러나 학문 연구라는 자신의 직업에서 학자가 진정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학문 연구는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학자는 주장한다.
학문 연구는 세상 사람들이 사업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성과를 얻도록 하기 위해,다시 말해 사람들이 잘 먹고,잘 입고,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는 항상 낡아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업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의 작업은 전문 분야들로 나뉘어 무한히 진행되는 과정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이내 낡아 버린다.
그 속에서 그는 도대체 어떤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믿는가?
이 물음은 어떤 보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학문의 진보는 우리가 수천 년 전부터 겪어온 저 지성화 과정의 작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대해 요즘 사람들은 대개 매우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선 과학과 과학 기술에 의한 지성적 합리화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인디언이나 호텐토트인보다 자신의 생활 조건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다.
전차를 타는 우리 중의 어누 누구도 전문 물리학자가 아닌 한 전차가 어떻게 해서 움직이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또 알 필요도 없다.
전차의 작동을 '신뢰'할 수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며 그 신뢰에 기초하여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전차가 움직일 수 있도록 제조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
미개인은 그의 도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돈의 가치에 따라 물건을 적거나 많게 구매한다.
그러한 행동이 돈의 어떤 속성에 의해 가능한지 질문한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하리라 나는 장담한다.
심지어 경제학자들마저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미개인은 매일 매일의 식량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데 어떤 제도들이 도움이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성화를 통한 합리성의 증대가 우리가 처해 있는 생활 조건에 대한 일반적 지식의 증대와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지성화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지식의 획득 가능성이다.
지성화를 통해 우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삶의 조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삶에서 작용하는 어떤 힘들도 원래 신비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힘들이 아니므로 모든 사물이 원칙적으로 계산을 통해 지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거나 믿게 되었다.
이것은 세계의 탈 주술화를 뜻한다.
우리는 더 이상 미개인처럼 신비하고 예측할 수 없는 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주술적 수단으로 정령을 다스리는 따위의 일은 할 필요가 없다.
주술이 담당했던 일들을 오늘날은 기술적 수단과 계산이 해준다.
바로 이것이 지성화가 그 자체로서 의미하는 바이다.
[논제1] 제시문 (가)를 6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3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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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2009 모의논술(인문계) 논제 1번 해제
논술은 교수님과 학생이 벌이는 지적게임
논술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각자 다양하겠지만,쉽고 친근한 대답을 내놓자면‘논술은 대화’이다.
혹은 더욱 흥미진진하게‘논술은 교수님과 학생이 벌이는 지적 게임’또한 가능한 답으로 꼽을 수 있겠다.
논술 고사장에 앉아 있는 수험생들은 교수님들과 독특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논제와 씨름하면서 문제를 출제한 교수님과 지적 승부를 한판 겨루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 재빨리 간파해야
그럼 성공적인 논술은? 쉽다.
교수님과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대학에서 논술 시험을 실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험생을 판별하기 위해서이다.
논술 시험을 통과하는 학생들은 교수님들로부터,‘그 녀석 참 쓸만한 학생이로고’하는 공인 검증을 받은 셈이다.
즉,지적인 의사소통 내지 상호교류가 가능한 학생이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줄도 알고,내 말을 상대방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논제라는 형식을 통해 대화를 시도한다.
자신 앞에 난감한 질문이 던져진 수험생이 이제 할일은,장문의 제시문을 질문 도구로 동원하는 교수님들의 고약한 대화 방식에 당황하지 말고 교수님들께서 나와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길 원하시는지 대화 주제를 기민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오늘 살펴보는 고려대학교 2009학년도 모의논술을 꼼꼼히 들여다보면,‘교수님과 글로 나누는 대화’인 논술 답안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에 관한 문리(文理)를 얻을 수 있다.
고려대학교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변동이 없는 안정적인 질문 방식을 택하여,논제의 모범 혹은 전범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클래식(classic)한 논제들을 선보여왔다.
요약은 가장 기초적 평가방식
고려대학교의 논제는 세 문제로 구성된다.
첫 번째 논제는 제시문 요약,두 번째 논제는 제시문들의 연관관계 파악,세 번째 논제는 주어진 자료의 분석과 종합을 통한 자기 논리의 전개를 각각 요구한다.
고려대학교에서 발표하는 논술평가의 주안점이 ①텍스트의 분석과 이해 능력 ②논리적 표현 능력 ③유기적인 종합 및 창의적인 전개 능력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이에 부합하는 적절한 질문 방식이다.
이번 회차에서는 전체 세 논제 가운데 첫 번째 논제를 다루면서 요약하기 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고려대학교는 요약 문제를 빼놓지 않고 출제한다.
요약 논제가 채점자의 입장에서 채점에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지만,요약 논제가 항상 출제되는 이유는 단순히 채점자의 편의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요약이 언어를 사용하는 이의 기본적 이해 능력과 표현 능력을 평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검증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약 논제는 제시문을 정확히 읽고 자신만의 문장으로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즉,글의 요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자신이 간파한 요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요약을 요리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요리사는 요리 재료를 적절히 다듬어야 한다.
세상만사 진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냐만,요리를 하려면 일단 요리에 쓰일 부분과 쓰이지 않을 부분을 구별해서 필요한 부분은 챙기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장자도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엄청나게 유명한 백정이 한 명 살았더랬다.
이 백정이 얼마나 신통방통한가 하면,그 커다란 덩치의 소를 매일 수십 마리씩 잡는 데도 칼날이 무디어지지 않아 칼날을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신기해서 백정을 불러들여 요령을 물었더니,백정이 자신은 소를 잡을 때 뼈와 살가죽이 눈에 그린 듯이 보이기 때문에 항상 정확하게 칼을 놀려 칼날이 상할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는 요약의 원리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요약을 하려면 일차적으로 제시문에서 핵심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핵심적인 내용은 뼈대이고,지엽적인 내용은 발라내야 할 살가죽이다.
수험생은 소를 잡는 대신 제시문을 해체해야 한다.
제시문의 뼈대와 제시문의 살가죽을 구별할 줄 알아야 요약의 첫걸음을 뗀 것이다.
즉,요약 논제에서는 수험생의 '판별 능력'이 도마에 오른다.
뼈대 세우고 살가죽 발라내라
자,그럼 눈에서 엑스레이(X-ray)를 투사한다고 생각하고 왼쪽의 제시문을 찬찬히 읽어보자.
이 글은 막스 베버의 대학 강연문인,<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발췌되었다.
그다지 어려운 글이 아니다.
난이도가 높은 제시문으로 학생들을 괴롭혀 원성을 산 적이 있는 고려대학교가 앞으로는 고교 학습 과정에 적절한 수준의 통합논술 제시문을 출제하겠다고 약속했으니,실전에서도 크게 어렵지 않은 제시문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설령 논술 제시문에 어려운 글이 등장했다고 해도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선 펜을 꺼내들고 언어영역 제시문을 읽을 때처럼 중요한 어휘에 동그라미를 치고 중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손이 부지런해야 머리도 부지런하게 돌아간다.
짧지 않은 제시문을 오류 없이 정확히 분석하려면 시각적으로 확실히 표시하면서 읽어 나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여백에는 틈틈이 독해 과정에서 연상되거나 그에서 파생한 표현들을 간략히 적는다.
개인마다 접근 방식이나 인지 절차에 따라 조금씩 다른 단어나 문장에 표식을 했을지라도 독해가 끝나면 전체적으로는 대동소이한 하이라이트 부분이 생겼을 것이다.
왼쪽 제시문의 독해 과정에서 생긴 표식 가운데에는 반드시 '학문'이라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
막스 베버는 학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학문'이 핵심 키워드
'학문'은 꼭 동그라미를 쳐야 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오늘의 노른자위이다.
그리고 '진보'라는 단어,'학문은 능가되고 낡아버리기를 바란다'는 표현,학문에서는 '원칙적으로 진보가 무한히 계속된다'라는 문장과 '학문이 무한한 진보라는 법칙에 예속된다'는 구절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학문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든가 '학자는 항상 낡아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업적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구절도 요주의 대상이다.
표식의 대상이 된 상기 구절들이 첫 문단의 뼈대에 해당한다.
예술 운운하는 나머지는 발라내야 할 살가죽에 불과하다.
학문의 성격을 말하기 위해서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예술을 대립적 개념으로 활용하여 이해를 도운 것이다.
자,그럼 일단 여기까지 줄치고 동그라미를 두른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첫 번째 문단에서 베버가 하려는 말을 이해해 보자.
중요한 뼈대만 추리면서 베버의 논지를 이해하면,그가 첫 문단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학문은 무한하게 진보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결코 완성된 학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나가는 건축가인 셈이다.
그런데 학문이라는 이 건축과정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래서 학자는 숙명적으로 '낡아빠지고 진부해질 학문'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리고 학문을 할 때에는 다른 것을 바라지 말고 순수하게 학문 그 자체만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상기 '학문 진보의 법칙'과 '학문 순수성의 법칙'을 결합하면,'학자는 구태의연해질 숙명을 지닌 학문을 위해 다른 아무런 이유는 없이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소결론이 나온다.
학문은 영원한 건축 과정
이제 여기까지 파악했으면 베버의 조금은 허무한 심정이 느껴져야 한다.
이제 베버의 대화 물꼬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다면 학문을 하는 이는 '낡아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업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첫 문단의 소결론을 놓고 학문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제시문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베버의 답이 제시된다.
두 번째 단락에서 하이라이트가 되어 있어야 할 부분은 '지성적 합리화'라는 표현,그리고 '지성화를 통한 합리성의 증대' 및 '지성화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지식의 획득 가능성','탈 주술화'라는 구절들이다.
원시인과의 비교라든가,전차 작동 원리에 대한 무지는 이해를 보조하기 위한 지엽적인 예시들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만의 표현'이 중요
이제 추려낸 핵심 표현을 위주로 두 번째 문단의 논지를 이해하면,베버는 학문의 목적과 의미는 지성적 합리화에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즉,합리주의적 학문관을 전개한다.
두 번째 단락에서 베버는 합리주의의 관점에 서서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인지적 틀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소결을 맺는데,이를 첫 번째 문단의 소결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이해하면 된다.
뼈대를 다 추렸으니 이제 답안을 작성할 차례이다.
주의해야 될 점은,답안을 쓰면서 '앵무새'로 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해의 가시밭길을 멀쩡하게 헤쳐 나온 다음에 난데없이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종알종알 되풀이하는 앵무새로 변하는 수험생들이 많다.
수험생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제시문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단어와 문구,즉 이른바 핵심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요약이 끝나지는 않는다.
요약하기는 다른 사람의 글을 정확히 이해하여 그 이해의 '결과'를 완결된 한 편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한다.
다시 말하자면,좋은 요약 답안은 이해한 바를 '자신의 표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독해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표현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떤 대학에서는 수험생들이 '앵무새의 오류'를 범하는 것을 우려하여,답안작성 유의사항에서 이를 확실히 강조하기도 한다.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베껴 쓰지 마시오!"
제시문을 한 줄 한 줄 가위로 잘라 답안에 풀을 발라 붙인 느낌의 답안을 작성하면 대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해한 바를 '자신만의 표현'으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밀도 있는 글이 좋은 요약 답안이다.
또한 오늘의 제시문은 아주 상냥한 제시문에 해당한다.
핵심 키워드가 외부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핵심적인 표현만 찾아가며 요지를 추려도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의도하는 바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제시문도 종종 출제된다.
이러한 종류의 제시문을 요약할 때에는 제시문에 있는 단어나 구절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징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으로 가득 채워진 제시문을 그대로 옮기면 곧 바로 낙제 답안이 된다.
논술 답안은 논지가 명약관화하게 드러나야 하는데,애매모호한 제시문의 표현이 그대로 등장한다면 논술 답안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주제문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을 때는 스스로 주제문이나 핵심 키워드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 논지가 묵시적으로 깔려 있는 경우에는 논지의 핵심을 시사하는 부분을 체크하면서 읽긴 하되,글귀의 의미를 해석하고 행간을 채워가며 더욱 적극적인 독해를 해야 한다.
'행간 읽기'와 '의도 파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환기해야 할 점은,요약은 논지 핵심에 관한 심층적 독해를 효과적이고 간명하게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제시문에서 논지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느냐 묵시적으로 표현되었느냐는 결국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행간 읽기와 의도파악 필수
제시문에서의 논지 노출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요약 답안은 '자신의 표현'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그래서 답안의 문단 구조 또한,제시문의 흐름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 무리 없이 따르겠지만 오히려 새롭게 배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요약이라고 생각된다면 과감하게 글을 재구성해야 한다.
요약의 시작은 언어영역 문제 풀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키워드에 줄을 긋고 주어진 다섯 개의 문항 가운데 하나를 골라 체크하면 되는 언어영역과,완벽하고 심층적인 논지 소화를 보여주는 요약은 확연히 다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논제에 따라서 어떤 논제의 답안에서는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했음을 보여주어야 하고,어떤 논제의 답안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약 논제는 수험생의 주관적 견해를 표명하는 답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주어진 제시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것을 원한다.
간혹 요약 논제의 답안에서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제시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는 요약 논제의 성격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논제를 받아들면 우선 그 성격부터 파악해야 한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
● 고려대학교 2009 모의논술(인문계) 논제 1번 문제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 학문 연구를 예술 활동과 구분 짓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학문 연구가 진보의 과정 속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에는 학문 분야에서와 같은 의미의 진보가 없다.
새로운 기술적 수단을 개발했던 시대의 예술품이 그 전 시대의 예술품보다 순수한 예술적 관점에서 항상 뛰어난 것은 아니다.
가령 원근법을 개발했던 시대의 예술품이 단지 원근법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만들어진 예술품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후자의 예술품이 원근법 같은 기술적 조건과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예술성에 합당하도록 대상을 선택하고 형상화하여 재료적 적합성과 형식적 적합성을 지니게 되었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진실로 '완성'된 예술품은 능가되지도 낡아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완성된 예술품에 대한 개별적인 평가는 얼마든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 의미에서 진실로 '완성'된 작품이 다른 하나의,역시 '완성'된 작품에 의해 '추월당했다'라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 분야와 달리 학문 분야에서는 어떤 연구 결과든 10년,20년,50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이 학문 연구의 운명이자 목표이다.
학문은 그것과 유사한 운명에 처한 여타의 문화 영역들과 달리 매우 독특한 의미에서 이 운명과 목표에 예속되고 내맡겨져 있다.
학문상의 모든 '완성'은 새로운 '질문'을 뜻한다.
그 완성과 질문을 통해 학문은 '능가'되고 낡아버리기를 바란다.
학문에 헌신하려는 자는 누구나 그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학문적 업적이 그것의 예술적 우수성 때문에 '향유 수단'으로서 또는 학문적 작업에 대한 훈련 수단으로서 지속적으로 그 중요성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학문적으로 능가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일 뿐만 아니라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멀리 나아가기를 희망하지 않고서는 연구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진보가 무한히 계속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학문의 의미를 문제 삼게 된다.
학문이 무한한 진보라는 법칙에 예속된다는 것이 과연 그 스스로에게 본질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그다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리는 결코 종결되지 않으며,또 종결될 수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즉 광의의 기술적 목적이 거론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학문적 경험을 통해 가능해진 예측과 기대를 우리의 현실적 행위에 길잡이로 삼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답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만 의미를 지닐 뿐이다.
그러나 학문 연구라는 자신의 직업에서 학자가 진정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학문 연구는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학자는 주장한다.
학문 연구는 세상 사람들이 사업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성과를 얻도록 하기 위해,다시 말해 사람들이 잘 먹고,잘 입고,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는 항상 낡아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업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의 작업은 전문 분야들로 나뉘어 무한히 진행되는 과정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이내 낡아 버린다.
그 속에서 그는 도대체 어떤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믿는가?
이 물음은 어떤 보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학문의 진보는 우리가 수천 년 전부터 겪어온 저 지성화 과정의 작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대해 요즘 사람들은 대개 매우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선 과학과 과학 기술에 의한 지성적 합리화가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인디언이나 호텐토트인보다 자신의 생활 조건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다.
전차를 타는 우리 중의 어누 누구도 전문 물리학자가 아닌 한 전차가 어떻게 해서 움직이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또 알 필요도 없다.
전차의 작동을 '신뢰'할 수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며 그 신뢰에 기초하여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전차가 움직일 수 있도록 제조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
미개인은 그의 도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돈의 가치에 따라 물건을 적거나 많게 구매한다.
그러한 행동이 돈의 어떤 속성에 의해 가능한지 질문한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하리라 나는 장담한다.
심지어 경제학자들마저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미개인은 매일 매일의 식량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데 어떤 제도들이 도움이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성화를 통한 합리성의 증대가 우리가 처해 있는 생활 조건에 대한 일반적 지식의 증대와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지성화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지식의 획득 가능성이다.
지성화를 통해 우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삶의 조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삶에서 작용하는 어떤 힘들도 원래 신비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힘들이 아니므로 모든 사물이 원칙적으로 계산을 통해 지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거나 믿게 되었다.
이것은 세계의 탈 주술화를 뜻한다.
우리는 더 이상 미개인처럼 신비하고 예측할 수 없는 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주술적 수단으로 정령을 다스리는 따위의 일은 할 필요가 없다.
주술이 담당했던 일들을 오늘날은 기술적 수단과 계산이 해준다.
바로 이것이 지성화가 그 자체로서 의미하는 바이다.
[논제1] 제시문 (가)를 6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3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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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2009 모의논술(인문계) 논제 1번 해제
논술은 교수님과 학생이 벌이는 지적게임
논술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각자 다양하겠지만,쉽고 친근한 대답을 내놓자면‘논술은 대화’이다.
혹은 더욱 흥미진진하게‘논술은 교수님과 학생이 벌이는 지적 게임’또한 가능한 답으로 꼽을 수 있겠다.
논술 고사장에 앉아 있는 수험생들은 교수님들과 독특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논제와 씨름하면서 문제를 출제한 교수님과 지적 승부를 한판 겨루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 재빨리 간파해야
그럼 성공적인 논술은? 쉽다.
교수님과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대학에서 논술 시험을 실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험생을 판별하기 위해서이다.
논술 시험을 통과하는 학생들은 교수님들로부터,‘그 녀석 참 쓸만한 학생이로고’하는 공인 검증을 받은 셈이다.
즉,지적인 의사소통 내지 상호교류가 가능한 학생이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줄도 알고,내 말을 상대방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논제라는 형식을 통해 대화를 시도한다.
자신 앞에 난감한 질문이 던져진 수험생이 이제 할일은,장문의 제시문을 질문 도구로 동원하는 교수님들의 고약한 대화 방식에 당황하지 말고 교수님들께서 나와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길 원하시는지 대화 주제를 기민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오늘 살펴보는 고려대학교 2009학년도 모의논술을 꼼꼼히 들여다보면,‘교수님과 글로 나누는 대화’인 논술 답안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에 관한 문리(文理)를 얻을 수 있다.
고려대학교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변동이 없는 안정적인 질문 방식을 택하여,논제의 모범 혹은 전범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클래식(classic)한 논제들을 선보여왔다.
요약은 가장 기초적 평가방식
고려대학교의 논제는 세 문제로 구성된다.
첫 번째 논제는 제시문 요약,두 번째 논제는 제시문들의 연관관계 파악,세 번째 논제는 주어진 자료의 분석과 종합을 통한 자기 논리의 전개를 각각 요구한다.
고려대학교에서 발표하는 논술평가의 주안점이 ①텍스트의 분석과 이해 능력 ②논리적 표현 능력 ③유기적인 종합 및 창의적인 전개 능력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이에 부합하는 적절한 질문 방식이다.
이번 회차에서는 전체 세 논제 가운데 첫 번째 논제를 다루면서 요약하기 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고려대학교는 요약 문제를 빼놓지 않고 출제한다.
요약 논제가 채점자의 입장에서 채점에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지만,요약 논제가 항상 출제되는 이유는 단순히 채점자의 편의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요약이 언어를 사용하는 이의 기본적 이해 능력과 표현 능력을 평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검증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약 논제는 제시문을 정확히 읽고 자신만의 문장으로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즉,글의 요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자신이 간파한 요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요약을 요리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요리사는 요리 재료를 적절히 다듬어야 한다.
세상만사 진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냐만,요리를 하려면 일단 요리에 쓰일 부분과 쓰이지 않을 부분을 구별해서 필요한 부분은 챙기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장자도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엄청나게 유명한 백정이 한 명 살았더랬다.
이 백정이 얼마나 신통방통한가 하면,그 커다란 덩치의 소를 매일 수십 마리씩 잡는 데도 칼날이 무디어지지 않아 칼날을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신기해서 백정을 불러들여 요령을 물었더니,백정이 자신은 소를 잡을 때 뼈와 살가죽이 눈에 그린 듯이 보이기 때문에 항상 정확하게 칼을 놀려 칼날이 상할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는 요약의 원리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요약을 하려면 일차적으로 제시문에서 핵심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핵심적인 내용은 뼈대이고,지엽적인 내용은 발라내야 할 살가죽이다.
수험생은 소를 잡는 대신 제시문을 해체해야 한다.
제시문의 뼈대와 제시문의 살가죽을 구별할 줄 알아야 요약의 첫걸음을 뗀 것이다.
즉,요약 논제에서는 수험생의 '판별 능력'이 도마에 오른다.
뼈대 세우고 살가죽 발라내라
자,그럼 눈에서 엑스레이(X-ray)를 투사한다고 생각하고 왼쪽의 제시문을 찬찬히 읽어보자.
이 글은 막스 베버의 대학 강연문인,<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발췌되었다.
그다지 어려운 글이 아니다.
난이도가 높은 제시문으로 학생들을 괴롭혀 원성을 산 적이 있는 고려대학교가 앞으로는 고교 학습 과정에 적절한 수준의 통합논술 제시문을 출제하겠다고 약속했으니,실전에서도 크게 어렵지 않은 제시문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설령 논술 제시문에 어려운 글이 등장했다고 해도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선 펜을 꺼내들고 언어영역 제시문을 읽을 때처럼 중요한 어휘에 동그라미를 치고 중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손이 부지런해야 머리도 부지런하게 돌아간다.
짧지 않은 제시문을 오류 없이 정확히 분석하려면 시각적으로 확실히 표시하면서 읽어 나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여백에는 틈틈이 독해 과정에서 연상되거나 그에서 파생한 표현들을 간략히 적는다.
개인마다 접근 방식이나 인지 절차에 따라 조금씩 다른 단어나 문장에 표식을 했을지라도 독해가 끝나면 전체적으로는 대동소이한 하이라이트 부분이 생겼을 것이다.
왼쪽 제시문의 독해 과정에서 생긴 표식 가운데에는 반드시 '학문'이라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
막스 베버는 학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학문'이 핵심 키워드
'학문'은 꼭 동그라미를 쳐야 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오늘의 노른자위이다.
그리고 '진보'라는 단어,'학문은 능가되고 낡아버리기를 바란다'는 표현,학문에서는 '원칙적으로 진보가 무한히 계속된다'라는 문장과 '학문이 무한한 진보라는 법칙에 예속된다'는 구절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학문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든가 '학자는 항상 낡아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업적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구절도 요주의 대상이다.
표식의 대상이 된 상기 구절들이 첫 문단의 뼈대에 해당한다.
예술 운운하는 나머지는 발라내야 할 살가죽에 불과하다.
학문의 성격을 말하기 위해서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예술을 대립적 개념으로 활용하여 이해를 도운 것이다.
자,그럼 일단 여기까지 줄치고 동그라미를 두른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첫 번째 문단에서 베버가 하려는 말을 이해해 보자.
중요한 뼈대만 추리면서 베버의 논지를 이해하면,그가 첫 문단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학문은 무한하게 진보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결코 완성된 학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나가는 건축가인 셈이다.
그런데 학문이라는 이 건축과정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래서 학자는 숙명적으로 '낡아빠지고 진부해질 학문'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리고 학문을 할 때에는 다른 것을 바라지 말고 순수하게 학문 그 자체만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상기 '학문 진보의 법칙'과 '학문 순수성의 법칙'을 결합하면,'학자는 구태의연해질 숙명을 지닌 학문을 위해 다른 아무런 이유는 없이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소결론이 나온다.
학문은 영원한 건축 과정
이제 여기까지 파악했으면 베버의 조금은 허무한 심정이 느껴져야 한다.
이제 베버의 대화 물꼬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다면 학문을 하는 이는 '낡아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업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첫 문단의 소결론을 놓고 학문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제시문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베버의 답이 제시된다.
두 번째 단락에서 하이라이트가 되어 있어야 할 부분은 '지성적 합리화'라는 표현,그리고 '지성화를 통한 합리성의 증대' 및 '지성화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지식의 획득 가능성','탈 주술화'라는 구절들이다.
원시인과의 비교라든가,전차 작동 원리에 대한 무지는 이해를 보조하기 위한 지엽적인 예시들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만의 표현'이 중요
이제 추려낸 핵심 표현을 위주로 두 번째 문단의 논지를 이해하면,베버는 학문의 목적과 의미는 지성적 합리화에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즉,합리주의적 학문관을 전개한다.
두 번째 단락에서 베버는 합리주의의 관점에 서서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인지적 틀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소결을 맺는데,이를 첫 번째 문단의 소결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이해하면 된다.
뼈대를 다 추렸으니 이제 답안을 작성할 차례이다.
주의해야 될 점은,답안을 쓰면서 '앵무새'로 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해의 가시밭길을 멀쩡하게 헤쳐 나온 다음에 난데없이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종알종알 되풀이하는 앵무새로 변하는 수험생들이 많다.
수험생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제시문에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단어와 문구,즉 이른바 핵심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요약이 끝나지는 않는다.
요약하기는 다른 사람의 글을 정확히 이해하여 그 이해의 '결과'를 완결된 한 편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한다.
다시 말하자면,좋은 요약 답안은 이해한 바를 '자신의 표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독해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표현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떤 대학에서는 수험생들이 '앵무새의 오류'를 범하는 것을 우려하여,답안작성 유의사항에서 이를 확실히 강조하기도 한다.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베껴 쓰지 마시오!"
제시문을 한 줄 한 줄 가위로 잘라 답안에 풀을 발라 붙인 느낌의 답안을 작성하면 대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해한 바를 '자신만의 표현'으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밀도 있는 글이 좋은 요약 답안이다.
또한 오늘의 제시문은 아주 상냥한 제시문에 해당한다.
핵심 키워드가 외부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핵심적인 표현만 찾아가며 요지를 추려도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의도하는 바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제시문도 종종 출제된다.
이러한 종류의 제시문을 요약할 때에는 제시문에 있는 단어나 구절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징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으로 가득 채워진 제시문을 그대로 옮기면 곧 바로 낙제 답안이 된다.
논술 답안은 논지가 명약관화하게 드러나야 하는데,애매모호한 제시문의 표현이 그대로 등장한다면 논술 답안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주제문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을 때는 스스로 주제문이나 핵심 키워드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 논지가 묵시적으로 깔려 있는 경우에는 논지의 핵심을 시사하는 부분을 체크하면서 읽긴 하되,글귀의 의미를 해석하고 행간을 채워가며 더욱 적극적인 독해를 해야 한다.
'행간 읽기'와 '의도 파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환기해야 할 점은,요약은 논지 핵심에 관한 심층적 독해를 효과적이고 간명하게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제시문에서 논지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느냐 묵시적으로 표현되었느냐는 결국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행간 읽기와 의도파악 필수
제시문에서의 논지 노출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요약 답안은 '자신의 표현'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그래서 답안의 문단 구조 또한,제시문의 흐름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 무리 없이 따르겠지만 오히려 새롭게 배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요약이라고 생각된다면 과감하게 글을 재구성해야 한다.
요약의 시작은 언어영역 문제 풀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키워드에 줄을 긋고 주어진 다섯 개의 문항 가운데 하나를 골라 체크하면 되는 언어영역과,완벽하고 심층적인 논지 소화를 보여주는 요약은 확연히 다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논제에 따라서 어떤 논제의 답안에서는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했음을 보여주어야 하고,어떤 논제의 답안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약 논제는 수험생의 주관적 견해를 표명하는 답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주어진 제시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것을 원한다.
간혹 요약 논제의 답안에서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제시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는 요약 논제의 성격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논제를 받아들면 우선 그 성격부터 파악해야 한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