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국방부·한나라당 등 왜곡부분 개선요구

[Focus] 왼쪽에 치우친 역사교과서 바로 잡는다
현재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가 '좌편향'돼 있다는 논란이 뜨겁다.

교과서포럼과 같은 보수계열 단체부터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국방부 통일부 등 정부부처, 여당인 한나라당까지 '교과서 바로잡기'에 나섰다.

대한상의는 경제 사회 국사 근현대사 등 4개 과목 교과서 60종을 분석한 결과 337건의 왜곡과 오류를 찾아냈다며 교과부에 개선 의견을 냈다.

교과서포럼은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중 31개 항목,56개 표현이 좌편향적이라고 수정을 요청했다.

통일부는 '햇볕정책' 대신 '화해 협력정책'으로 해달라고 했고, 국방부는 전두환 정권의 독재정치에 대한 서술이나 제주 4·3사건 등에 대해 수정안을 제시했다 논란이 일자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인 나경원 의원은 지난 21일 "일부 역사교과서의 이념 편향 부분에 대해 각계의 우려를 청취했다"며 "이런 지적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당정협의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각계의 요구사항은 조금씩 다르다. 경제계는 시장경제의 폐단이 지나치게 강조돼 있어 학생들의 경제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과서포럼과 국방부 통일부 등은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서술을 주로 문제 삼고 있다.

한나라당 등은 이를 모두 아울러 문제 삼으며 '좌파 분위기'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Focus] 왼쪽에 치우친 역사교과서 바로 잡는다


⊙ '정치판'이 된 교과서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같은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것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10년간 교과서가 상당부분 이들의 입맛에 맞게 새로 쓰여진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현재 교과서는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시장의 실패 현상을 지나치게 부각하고 시장경제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모호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묘사하기 위해 이승만·전두환·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정치를 강조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같은 현상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세대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실시하는가는 정치인들에게 '10년 후 표심'을 좌우하는 문제다.

경제인들에게는 '반 시장경제 정서'가 기업의 세금과 사회공헌 활동,신입사원 교육,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학부모들에게는 '내 아이의 가치관'의 문제이고 학계에는 '후학양성'의 문제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다음 세대의 성격'을 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혹은 자신과 비슷하게 규정하기 위해 각계 각층이 교과서라는 문제를 두고 작은 정치판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 "교과서 수정 11월까지 결론"

각계에서 쏟아지고 있는 교과서 수정요구에 대해 교과서 내용을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는 교육과학기술부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다.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은 지난 5월 공개적으로 "현재의 역사교육은 편향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7월에도 국무회의에 참석해 "현재 교과서가 좌편향돼 있어 청소년들이 반미·반시장적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한승수 총리도 "학자들에게만 맡겨둘 게 아니라 각 부처가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취합해 반영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발언들에 대해 진보계열 학자들과 야당 등은 그야말로 분개했지만,교과서가 바뀌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지금껏 변함이 없다.

교과부는 특히 한국 근현대사 관련 수정 요구가 많자 '국사편찬위원회'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해 보완할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늦어도 11월 말까지 교과서 수정과 관련한 모든 작업을 마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당장 내년 1학기 교과서부터 바꾸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뜯어 고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고 지속적인 갈등을 유발한다는 비판이다.

여당과 정부가 출판사와 집필진에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외압이나 다름없다는 것.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어와 국사 등은 이데올로기 교과목이므로 이념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라고 전제하고 "다만 이데올로기 교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사회적 합의와 통합을 위한 것인데 반대로 이를 두고 분열이 심화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역사의 경우 1950년대까지만 가르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 교과서 수정작업 어떻게 이뤄지나

일선 학교에서 사용 중인 교과서 내용을 손질하려면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크게 '수정·보완'과 '개편' 두 가지로 구분할 경우 현재 교과서 논란은 대부분 '수정·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수정·보완은 매년 상반기 중 교과부가 각계 의견을 수렴해 그 다음해 1학기 교과서에 반영한다.

용어가 바뀌거나 법률이 변경되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바꾸는데 자주 사용된다.

교과부는 지난달 28일 안병만 장관의 명의로 초·중등 교과서에 대한 수정 고시를 냈다.

그렇다고 교과서를 바꿀 권한이 교과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와 달리 중·고교 교과서는 대부분 사기업인 교과서 출판사가 만들고 교과부가 이를 검정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어느 부분을 어떻게 수정해달라고 출판사에 통보할 뿐이며 진짜로 어느 문구를 얼마나 수정할지는 출판사와 교과서 집필자가 결정한다.

검정교과서 발행자는 교과부의 수정요청에 대해 각 과목 집필자가 참여하는 '과목별 저작자협의회'를 구성해 요구사항을 검토하고, 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수정·보완 대조표를 작성해 교과부의 승인을 받는다.

한나라당이 최근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진 교과서 '개편'은 좀 더 작업이 방대하다.

교과서 개편은 전체 쪽수의 절반 이상을 바꾸는 작업으로 사실상 새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약 4~5년이 걸린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