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어려움보다 사람간의 갈등이 주요인
연예인 안재환의 자살로 지난 몇 주간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중의 관심이 쏠려있는 사건인 만큼 그의 자살 원인을 두고 각종 추측과 루머도 많았다.
이슈가 확산되면서 '모방자살' 또는 '동조자살'도 있었다.
일명 '베르테르효과'다.
유명인의 자살은 정말로 자살률을 촉진하는 걸까?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 수 중 자살률은 5%(1만 3407명)에 달한다.
이는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던 1997년 이래 2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OECD 평균보다도 2배나 높은 것이다.
10대 청소년 사망 원인 중 20.2%가 자살이라고 한다.
흔히 자살은 각박하고 빈곤한 삶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각 미디어매체들은 경기 침체로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대학입시 공부가 버겁고, 취업이 어렵고,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생활, 사업 실패로 인한 좌절 등 경제난과 빈부 격차가 사람들은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통계를 보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률은 12.3%에 그쳤다.
오히려 가족 갈등(37.9%)이나 이성문제(19.7%) 등의 비중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를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주요인이라고 결론 내리기 어렵다.
최근 발생한 한두 건의 '베르테르 효과'로 2007년 발생한 1만3000건의 자살을 설명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살하는 걸까?
최근 들어 자살률이 증가하는 원인은 뭘까?
에밀 뒤르켐(1858~1917)은 1897년 펴낸<자살론>에서 자살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뒤르켐은 자살을 크게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했다.
이기적 자살이란 염세주의,허무주의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인생이 허무하고 의미 없게 느껴져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기적 형태의 자살은 종교사회와 계급사회가 막을 내리고 인간의 이성이 자유로워지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인간이 그전처럼 먹고 살기 위해 밤낮으로 일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삶은 사회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강력한 결속력을 지닌 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개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삶과 자아의 해체를 경험하게 됐다.
니체와 쇼펜하워 등 허무주의,염세주의 철학자들이 등장한 시기가 산업혁명 태동 후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특정한 집단마다 자살률도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사회가 인간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설명한다.
빈곤층보다는 부유층이,기혼자보다는 미혼자가,전시(戰時)보다는 평화시에 자살이 빈번하다.
물질적으로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살률이 풍요로운 경우보다 낮은 것은 기본적 욕구를 채우고 보자는 본성이 자살 충동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을 경우 책임감이 커지고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살 확률도 미혼일 경우보다 현저히 낮다.
전쟁과 같이 한 사회가 비정상적이고 초월적인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우 사회적 유대감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기적 자살을 행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즉,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독립적 인간이 사색을 깊이 할수록 삶을 포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자살한 역사적 기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에 이타적 자살은 자신이 속한 사회나 국가가 자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때 일어난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물속으로 투신한 논개,세계 2차대전 당시 일왕과 일본의 승전을 위해 폭탄을 장착한 전투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대를 공격했던 가미가제 특공대,최근 국제적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는 자살 폭탄테러 등이 그예다.
인간은 때때로 초월적이라고 믿는 어떤 것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자살은 아주 특수한 경우다.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자살 원인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문제라고 얘기할 정도로 자살이 급증하게 된 원인을 설명할 때 '아노미적 자살'은 가장 의미있는 논리를 제공한다.
이는 급격한 변화로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때 발생한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이행기를 거치지 못한 인간이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산업화를 경험한 경우 사회적 부적응과 가치관의 혼란이 자살률을 촉진하기도 한다.
또 사업 실패,가족의 갑작스러운 사망,이혼 등에 의한 정서적 혼란도 자살을 부르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또에 당첨돼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획득했거나, 치열할 정도로 직장을 열심히 다니던 사람이 많은 퇴직금을 받고 은퇴해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자살률이 높게 나타난다.
이 같은 현상은 변함없이 지속돼 온 삶의 질서가 파괴되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아노미적 자살'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뒤르켐의 <자살론>을 읽고 자살은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자아'와의 내적 투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자살충동을 느끼는 모든 이들이 자살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살고 싶지 않지만,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자아의 존재가치를 되찾기 위해 애쓴다.
더불어 내가 삶을 포기했을 때 벌어질 일들,주위 사람들이 받게 될 상처를 떠올리며 자살 충동을 억제한다.
나약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가며 이뤄낸 것이 인간의 역사 아니었던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 산다는 말이 있다.
극한적 어려움을 이겨낸 후 바라본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삶의 가치도 새롭게 다가온다.
김영주 한국경제신문 인턴기자(한국외대 4년) cocomo@hotmail.com
연예인 안재환의 자살로 지난 몇 주간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중의 관심이 쏠려있는 사건인 만큼 그의 자살 원인을 두고 각종 추측과 루머도 많았다.
이슈가 확산되면서 '모방자살' 또는 '동조자살'도 있었다.
일명 '베르테르효과'다.
유명인의 자살은 정말로 자살률을 촉진하는 걸까?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 수 중 자살률은 5%(1만 3407명)에 달한다.
이는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던 1997년 이래 2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OECD 평균보다도 2배나 높은 것이다.
10대 청소년 사망 원인 중 20.2%가 자살이라고 한다.
흔히 자살은 각박하고 빈곤한 삶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각 미디어매체들은 경기 침체로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대학입시 공부가 버겁고, 취업이 어렵고,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생활, 사업 실패로 인한 좌절 등 경제난과 빈부 격차가 사람들은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통계를 보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률은 12.3%에 그쳤다.
오히려 가족 갈등(37.9%)이나 이성문제(19.7%) 등의 비중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를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주요인이라고 결론 내리기 어렵다.
최근 발생한 한두 건의 '베르테르 효과'로 2007년 발생한 1만3000건의 자살을 설명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살하는 걸까?
최근 들어 자살률이 증가하는 원인은 뭘까?
에밀 뒤르켐(1858~1917)은 1897년 펴낸<자살론>에서 자살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뒤르켐은 자살을 크게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했다.
이기적 자살이란 염세주의,허무주의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인생이 허무하고 의미 없게 느껴져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기적 형태의 자살은 종교사회와 계급사회가 막을 내리고 인간의 이성이 자유로워지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인간이 그전처럼 먹고 살기 위해 밤낮으로 일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삶은 사회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강력한 결속력을 지닌 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개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삶과 자아의 해체를 경험하게 됐다.
니체와 쇼펜하워 등 허무주의,염세주의 철학자들이 등장한 시기가 산업혁명 태동 후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특정한 집단마다 자살률도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사회가 인간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설명한다.
빈곤층보다는 부유층이,기혼자보다는 미혼자가,전시(戰時)보다는 평화시에 자살이 빈번하다.
물질적으로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살률이 풍요로운 경우보다 낮은 것은 기본적 욕구를 채우고 보자는 본성이 자살 충동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을 경우 책임감이 커지고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살 확률도 미혼일 경우보다 현저히 낮다.
전쟁과 같이 한 사회가 비정상적이고 초월적인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우 사회적 유대감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기적 자살을 행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즉,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독립적 인간이 사색을 깊이 할수록 삶을 포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자살한 역사적 기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에 이타적 자살은 자신이 속한 사회나 국가가 자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때 일어난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물속으로 투신한 논개,세계 2차대전 당시 일왕과 일본의 승전을 위해 폭탄을 장착한 전투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대를 공격했던 가미가제 특공대,최근 국제적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는 자살 폭탄테러 등이 그예다.
인간은 때때로 초월적이라고 믿는 어떤 것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자살은 아주 특수한 경우다.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자살 원인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문제라고 얘기할 정도로 자살이 급증하게 된 원인을 설명할 때 '아노미적 자살'은 가장 의미있는 논리를 제공한다.
이는 급격한 변화로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때 발생한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이행기를 거치지 못한 인간이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산업화를 경험한 경우 사회적 부적응과 가치관의 혼란이 자살률을 촉진하기도 한다.
또 사업 실패,가족의 갑작스러운 사망,이혼 등에 의한 정서적 혼란도 자살을 부르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또에 당첨돼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획득했거나, 치열할 정도로 직장을 열심히 다니던 사람이 많은 퇴직금을 받고 은퇴해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자살률이 높게 나타난다.
이 같은 현상은 변함없이 지속돼 온 삶의 질서가 파괴되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아노미적 자살'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뒤르켐의 <자살론>을 읽고 자살은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자아'와의 내적 투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자살충동을 느끼는 모든 이들이 자살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살고 싶지 않지만,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자아의 존재가치를 되찾기 위해 애쓴다.
더불어 내가 삶을 포기했을 때 벌어질 일들,주위 사람들이 받게 될 상처를 떠올리며 자살 충동을 억제한다.
나약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가며 이뤄낸 것이 인간의 역사 아니었던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 산다는 말이 있다.
극한적 어려움을 이겨낸 후 바라본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삶의 가치도 새롭게 다가온다.
김영주 한국경제신문 인턴기자(한국외대 4년) cocom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