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시장 만능주의 한계 입증…궤도 수정 불가피"

반 "금융산업 경쟁력 높이려면 규제 완화 시급"

미국 월가 거대 투자은행(IB)들의 잇단 붕괴로 미국식 금융시스템이 도마에 오르면서 우리나라 금융개혁 방식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쪽에서는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했던 미국 금융이 실은 자본의 지나친 탐욕을 제어하지 못해 지금 같은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우리 금융기관과 정책 당국이 실패한 월가 모델을 추종하다 파국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식 금융모델을 재검토하고 규제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월가와 같은 방종을 막기 위해 우리도 현재 추진 중인 금융규제 완화를 철회하거나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며 "규제 개혁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뒷다리를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마치 모든 규제 완화는 필연적으로 파국적인 위기를 불러올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준 미국의 금융위기는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이 입증됐다.

눈앞의 이익에 현혹돼 금융회사 내부의 건전성과 투명성 관리를 소홀히 하면 개별 회사는 물론 시장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이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몰락으로 증명됐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도 그 동안 추진해온 금융규제 완화계획을 수정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금융개혁 방안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한다.

⊙ 민주당 등, "시장만능주의 실패 거울삼아 금융규제 강화해야"

민주당과 일부 시민단체 쪽에서는 "미국 금융위기는 경영자의 경쟁·실적 지상주의가 만연하고 있는데도 감독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며 감독기관도 감독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됐다"며 이번 사태로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이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시장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율적 기능을 갖췄다'는 논리에 근거해 지난 20여년 구가해온 신자유주의 신화는 여지없이 깨졌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보듯 시장 영역을 확대하는 감세와 작은 정부,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주의 정책은 재정의 건전성을 해치고 불평등사회를 고착화하는 등 위험요인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시장만능주의로는 시장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며 우리 정부는 지금 추진 중인 정책들이 실패한 미국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문제가 있다면 그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규제완화보다는 시장리스크 관리시스템 구축이 급선무라는 얘기다.

⊙ 정부 여당,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 위해 규제완화정책 계속 펼쳐야"

이에 대해 정부와 한나라당 쪽에서는 "금융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며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규제개혁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뒷다리를 잡으려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반박한다.

정부 방침대로 규제 완화가 이뤄지더라도 당장 자유방임에 가까운 미국식 금융시스템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금융투자업 신규 진입과 겸영,다양한 파생금융상품 개발을 허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의 경쟁력을 해치는 불합리한 규제를 제거하는 차원으로 봐야 하며,금산분리 완화 역시 조심스럽게 첫 걸음을 내딛는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식 금융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우리도 금융규제 완화를 일관되게 추진하되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를 위한 감독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는 더욱 철저하게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여야는 가을 국회에서 각종 금융개혁 입법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규제완화 순기능은 극대화하되 시장교란 위험요인은 철저히 관리해야

우리가 자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금융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 금융시스템의 강점을 많이 벤치마킹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년 초 시행될 자본시장통합법도 미국식 투자은행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우리가 규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월가의 실패가 국내에서 재현될 위험이 없는지 철저히 재점검하고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야 한다.

월가의 위기를 면밀히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업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성장동력산업이다.

한국 금융이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것은 당국의 감독이 허술해서가 아니라 수익 모델을 찾으려는 금융회사의 자발성까지 차단한 과도한 규제와 간섭 때문이다.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제거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는 것과 금융산업의 규제를 푸는 것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도 아니다.

규제완화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되 시장을 교란할 위험이 있는 일탈은 철저한 감독과 처벌로 제어하면 된다는 얘기다.

우리의 금융규제 개혁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규제 완화는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 국가권력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

1970년대부터 케인즈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내세운다.

국가권력의 시장 개입은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 투자은행(Investment Bank;IB) = 유가증권 매매 중개를 비롯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자문, 부동산투자, 부실기업 인수 등 투자업무를 하는 금융회사로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첨병역할을 해왔다.

2000년대 들어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렸지만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금융위기가 몰아닥치면서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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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9월24일 A6면

미국발 금융쇼크를 계기로 최근 일각에서 정부의 투자은행(IB) 육성 및 금융규제 완화정책에 대한 재고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는 23일 "정부의 IB육성 및 규제완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IB 육성은 자본시장 발전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며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금융쇼크는 기본적으로 IB들이 지나치게 돈을 많이 벌려고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데다 금융 당국도 건전성 감독을 느슨하게 해서 생긴 문제"라며 "그런 문제 때문에 IB를 육성하지 말자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담그지 말자'는 소리와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기업 입장에서도 상업은행에서 돈을 대출받는 것보다 IB를 통해 주식 발행을 하게 되면 안전하게 자금 조달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시장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IB 육성은 경제정책 중 매우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IB들이 상업은행들과 결합하려는 움직임과 관련해선 "미국 IB들이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업은행과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상업은행을 베이스로 한 IB만 가능하고 독립된 IB는 유지불가능하다는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수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