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개 대학 동시에 학위 받을 수 있게 된다
교과부 대학자율화안…학과 통폐합도 활성화


지난 5월 KAIST와 충남대는 이공계 중심의 지식재산권 분야 변호사를 양성하겠다며 복수 학위 과정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다.

충남대 로스쿨에 입학한 예비 법조인이 KAIST에서 일정 시간 과목을 들으면 공학석사학위를 받아 특허권 등 기술 관련 이슈에 특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교과부는 이 같은 구상에 대해 '외국 대학과 국내 대학의 공동·복수학위는 할 수 있지만 국내 대학끼리 공동·복수학위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불가' 통보를 했다.

경북대 역시 영남 지역의 대학들과 공동으로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방안을 구상하다가 같은 이유로 추진을 멈춰둔 상태다.

앞으로는 이 같은 불합리한 대학 관련 규제가 대폭 풀린다.

국내 대학 간 공동·복수학위 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되며 국내 대학 교수들이 외국 대학 교수를 겸직할 수 있게 되는 등 대학의 자율성이 보다 확대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대학 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교과부는 지난 7월24일 45개 규제 개혁 과제로 구성된 추진계획을 내놓았으며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 중 7개 과제를 수정, 보완해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교과부의 대학자율화 안은 대부분 그동안 '관치'에 익숙해 있던 대학에 대한 세세하고 불필요한 규정을 없애고 대학 내 경쟁과 대학 간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안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는 인기가 없는 학과나 지방 캠퍼스라 하더라도 각종 규제에 묶여 정원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관련 규제가 대폭 사라져 대학의 '군살빼기'와 구조조정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 2개 대학 동시에 학위 받을 수 있게 된다


⊙ 국내대학 공동·복수학위 가능해진다

교과부가 내놓은 대학자율화 방안에 따르면 우선 이르면 내년부터 국내 대학끼리 공동·복수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서울대와 KAIST에서 각각 수업을 듣고 두 대학의 학·석·박사학위를 공동으로 따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공동·복수학위는 대체로 같은 학문을 두 곳에서 각각 배우거나, 서로 섞일 수 있는 영역의 학문(공학+법학, 경제학+법학 등)을 묶어 진행된다.

커리큘럼이 알차게 운영된다면 학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다.

단 의료인, 약사, 한약사, 수의사, 교원 등 정부가 입학정원을 관리하는 전문인력 양성 분야는 공동 명의의 학위를 주는 것을 제한하기로 했다.

공동학위와 복수학위는 서로 조금 다르다.

연세대와 고려대 경제학과가 만약 공동학위 협정을 맺는다면 졸업생은 '연세대·고려대 경제학과 공동학위'라고 쓰여진 졸업장을 1개 받는다.

반면 두 학과가 복수학위를 맺었다면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장과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장이 각각 발급된다.

하지만 두가지 과정 모두 이력서에 '두 대학을 모두 졸업했다'고 기재할 수 있다.

⊙ 우수 교수 확보 경쟁 시작

교과부는 또 우수한 교수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의 전임교원을 겸직하는 것도 허용키로 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서울대 교수가 MIT에서 전임교원으로 강의하는 것은 '겸직 불가' 규정에 걸려 불가능하지만 앞으로는 MIT에서 2년간 강의한 뒤 다시 서울대로 돌아와 강의하거나 여름·겨울학기에만 MIT에 출강하는 식으로 양쪽 대학에서 모두 강의할 수 있게 된다.

교과부는 이와 함께 대학 강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전임강사' 제도를 폐지하고 대학교원을 교수와 부교수, 조교수 3단계로 구분키로 했다.

교과부는 당초 전임강사에 '준교수' 명칭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조교수와 준교수를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전임강사를 조교수에 편입 운영토록 했다.

전임강사 명칭이 사라지는 것은 1963년 교육공무원법에 명칭이 규정된 후 45년 만이다.

이 같은 조치는 모두 대학이 우수한 교수를 확보해 대학 간 경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교수의 '역할분담'도 생길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교수는 무조건 교육과 연구를 병행토록 했으나 앞으로는 교육만 전담하거나 산학협력이나 연구 부문만 전담할 수 있게 된다.

교수들 간에 전문화와 특성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 학과 통폐합 등 활성화

대학이 학과별로 정원을 늘리거나 줄이는 '구조조정'도 보다 쉬워진다.

정부는 그동안 학과별로 정원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학교 건물(교사)·땅(교지)·교원(교수)·수익용 기본재산 4개 요건이 모두 전년도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앞으로는 교원 확보율만 기준에 맞으면 대학이 자체적으로 정원을 조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영학과 등 인기학과 정원을 늘리고 인문학·자연과학 등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 한 학과의 정원을 줄이거나 통폐합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본교와 캠퍼스 정원 비율을 조정하는 것도 보다 자유로워진다.

그동안 정부는 본교·캠퍼스 중 학생 정원이 늘어나는 쪽은 이에 맞춰 학교 건물과 땅, 교원을 각각 추가로 확보토록 했으나 앞으로는 전년도만큼만 유지해도 자체 정원 조정이 가능하다.

⊙ 외국교육기관 본국 송금 가능

이번 대학자율화방안에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국제자유도시 등에 설립되는 외국 교육기관이 본국에 학교 운영기금 일부를 송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외국교육기관의 국내 진입을 활발하게 해 기존 대학들과 경쟁 체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투명한 회계 운영을 위해 재무제표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기존에는 대학에서 반경 20㎞를 넘어가는 곳에 있는 기업체나 기관과는 계약학과를 운영할 수 없었으나 앞으로는 이보다 먼 곳에 있는 기업체와도 계약학과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구자문 교과부 대학자율화팀장은 "45개 추진과제 중 대통령령이나 지침만 변경하면 되는 과제는 올해 안에 바로 시행하고, 고등교육법 등을 개정해야 하는 경우에는 국회를 거쳐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