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30원이상 급등락…금융시장 '주름살'

[Focus] 요즘 '환율'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데…그럼 럭비공?
9월 들어 원·달러 환율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지난 8월 말 1089원 선에 머물던 환율이 이달 3일에는 1160원 근처까지 치솟았다가 지난 8일에는 다시 1080원대 초반으로 고꾸라지는 등 마치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할 정도로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평소 종가가 10원만 오르내려도 급변동으로 받아들여지는 외환시장에서 하루에 20~30원 이상 환율이 오르내리자 외환딜러들(외환거래 담당자)조차 "환율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 급등락은 바람직하지 않아

환율은 국가 간 화폐 교환비율이다.

예컨대 원·달러 환율은 한국의 원화와 미국의 달러화 간 교환비율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환율의 움직임을 시장에 맡기는 변동환율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오르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환율이 너무 큰 폭으로 움직이는 것은 경제 전체로 봤을 때 별로 좋을 게 없다.

경제 주체들이 미래 계획을 세우는 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 A씨가 있다고 하자.

그는 아이들 생활비로 매달 3000달러를 송금해야 한다(편의상 송금 수수료는 없다고 가정하자).

A씨가 필요한 원화는 환율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만약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라면 송금 비용으로 300만원이 필요하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이면 330만원이 있어야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900원이면 270만원만 있으면 충분하다.

미국에서 자녀가 받게 될 돈(달러화)은 똑같은데 A씨가 보내야 하는 돈(원화)은 환율로 인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환율이 급변할 경우 A씨는 환전 타이밍을 잡기 위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대개 연초에 사업계획을 짤 때 그 해의 예상 환율을 정해놓는데 환율이 예상치를 크게 빗나가면 낭패를 보게 된다.

가령 달러당 1000원을 받고 수출하기로 했는데 환율이 떨어져 달러당 900원밖에 못 받게 된다면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달러당 1000원을 주고 원자재를 수입하기로 했는데 환율이 뛰어서 달러당 1100원을 줘야 한다면 역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물론 반대로 수출대금으로 달러를 받았는데 환율이 크게 오르거나 수입대금으로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는데 환율이 크게 떨어지면 해당 기업들은 이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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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得)도 되고 실(失)도 되는 환헤지

문제는 기업들의 경우 환율 때문에 이익이 이렇게 크게 변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차피 미래의 환율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업외적인 환율 때문에 이익이 들쭉날쭉 변하면 사업 계획을 제대로 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아예 회피하기 위해 '환헤지'를 한다.

환헤지란 환율과 헤지(위험회피)의 합성어로 가령 지금 환율이 1000원 안팎에서 움직일 경우 달러로 받은 수출대금을 달러당 1000원에 환전하기로 은행들과 사전에 약속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환율 변동을 신경쓰지 않고 본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도 유리하다.

그러나 자칫하면 환헤지가 더 큰 위험을 부를 수도 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을 읽다보면 '키코(KIKO)'에 대한 기사가 자주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키코는 일종의 환헤지 상품으로 작년 하반기 환율이 900원대 초반에서 움직일 때 은행들이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많이 팔았다.

이 상품은 환율이 특정 구간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이득을 보지만 특정 구간 이상으로 치솟으면 기업이 큰 손해를 보는 구조다.

기업들이 이 상품에 많이 가입한 작년 하반기에는 '환율이 계속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올해 들어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피해를 보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영업에서는 이익을 내고도 환율 급등에 따른 손실(환차손)로 막대한 손해를 보기도 했다.

⊙ 환율이 급등락하는 이유는

그렇다면 요즘 들어 환율이 급등락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외환시장의 여건상 환율 상승 요인이 강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올해 경상수지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 적자규모는 100억달러 안팎에 달한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감소하게 된다.

경상수지 적자에 따른 외환시장의 달러 부족을 메우려면 자본수지가 흑자여야 한다.

즉 외국인이 국내에 직접투자를 하거나 국내 주식 및 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달러를 갖고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국제 금융시장이 신용경색에 빠지면서 외국인들은 '현금 확보'를 위해 국내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

자본수지도 악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쏠림현상'도 환율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쏠림현상은 일종의 '양떼현상' 같은 것이다.

환율이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가 일단 시장에 번지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달러를 매수하려고 하고 이에 따라 환율이 펀더멘털(기초여건)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르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환율 안정을 명분으로 지난 7월 이후 대규모 시장개입에 나섰다.

과도한 환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보유 중인 달러를 시장에 풀어 환율을 떨어뜨리려고 한 것이다.

정부 개입은 처음에는 효과를 냈고 환율도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오르게 될 환율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눌러놓다보니 막상 정부의 시장개입이 사라졌을 때 환율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현상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환율 변동성이 커졌다.

9월이 되자마자 금융시장에서 '9월 위기설'이 위력을 떨친 것도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쳤다.

'9월 위기설'은 외국인이 9월에 만기도래한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고 밖으로 빼갈 경우 금융시장이 혼란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올해 9월에 외국인 채권만기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우리 정부와 무디스 S&P 등 세계적 신용평가회사들이 "위기설은 과장"이란 평가를 내놓은 데 이어 외국인들이 9월에 채권을 순매수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며칠 만에 조기 진화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환율이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된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