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중생용 교과서 용지는 척 봐도 고급이다.

고급 용지에 속하는 서적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감촉은 매끄럽고 색은 표백제라도 넣은 듯 새하얗다.

중학교 교과서에 인쇄된 그림은 깔끔한 총천연색이다.

이쯤 되면 '인쇄 강국 한국'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인 우리나라에서 초·중생 교과서 인쇄 비용은 국가 예산이므로 그대로 국민들의 세금에서 나간다.

고급 교과서 용지가 필요 없는데도 다른 곳에 쓰일 예산을 들여 고급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낭비다.

실제로 초·중생용 교과서는 고급 용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요즘은 인쇄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현재의 고급 서적지보다 수준이 낮은 종이에도 충분히 깨끗한 인쇄가 가능하다.

국어나 도덕처럼 그림이 주 목적이 아닌 교과서는 사실 최고 기술로 인쇄된 그림을 넣을 이유도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교과서는 한 학기나 1년이 지나면 버려진다.

아무리 헌책 물려주기 운동을 벌여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기 초에 어차피 새것을 나누어 준다는 것을 알고 헌것을 물려쓰지 않는다.

사회과부도나 체육 교과서처럼 사실상 쓰이지 않는 교과서도 많다.

길어야 1년 쓰고 버려질 교과서에 서적지 대신 사용할 만한 종이가 없을까.

대안은 재생용지다.

재생용지는 다 쓴 종이를 재활용해 다시 만든 종이로 약간 누런빛이나 회색을 띠며 촉감은 서적지보다는 좀 더 거칠다.

재생용지의 최고 장점은 엄청난 예산 절감 말고도 가볍다는 데 있다.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 중 7번째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과 나머지 시리즈들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7권만 조앤 롤링의 특별 부탁으로 재생용지로 출판됐기 때문에 훨씬 가볍다.

매일같이 책을 가득 넣은 가방을 메고 다니는 성장기 학생들의 어깨에 얹힌 무게를 덜어 줄 기회다.

재생용지를 사용한 교과서는 최고의 친환경 교육이기도 하다.

환경 보호를 말로만 부르짖기보다 학생들이 매일 사용하는 교과서를 재생용지로 만드는 게 훨씬 피부에 와닿는 산교육이다.

조앤 롤링도 해리포터 마지막 권을 출판하느라 나무 수천 그루가 베어질 것을 우려해 재생용지로 출판하도록 부탁했지 않은가.

우리나라 전국의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를 재생용지로 출판하는 게 수많은 나무를 살리는 길이다.

재생용지의 인쇄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좋다.

해리포터 7권은 말할 것도 없고,마찬가지로 재생용지로 출판해 주목을 받았던 '야생초 편지'도 깨끗한 야생초 그림을 선보인다.

총천연색 야생초 그림을 보면 재생용지에 인쇄된 그림도 서적지에 인쇄된 그림 못지 않다.

21세기의 화두는 환경이라 한다.

교과서에 재생용지를 사용하면 예산도 절약하고,무게도 줄이고,환경에도 발맞추니 일석삼조다.

교육부는 2006년에 '학생들이 교육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하여' 교과서 용지 수준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보게 만드는 건 좋은 내용이지 좋은 종이가 아니다.

최은별 (민족사관고3년) coonyhoo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