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행은 나무와 숲을 파괴하면서 시작됐다
살아가면서 가장 솔직한 경외심을 품게 되는 순간은 바람에 춤추는 나무들을 보고 있을 때이다.
그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려면,아니 무엇인가가 넘실넘실하게 가득한 그 충만한 느낌의 언저리라도 언어로 접근해 보려면 '경외심'이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느낌은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고용한 응시로 만나게 되는 위무이기도 하고,세상이 나무와 함께 춤추면서 나에게 다가올 때 그 다가오는 걸음 한 발자국마다 커지는 서늘한 엄숙함이기도 하다.
나뭇가지들은 그 손아귀로 하늘을 움켜쥐었다가 풀어놓으면서 거대한 세상을 잊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혹여,경외심 외에 다른 단어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들이 그 군무 속에서 일렁이는 빛의 향연을 펼치면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관통하고 지나간다.
바라보는 이를 꿰뚫는 그 순간을 드러내기 위한 적절한 말이 생명의 찬란함인지 기쁨인지는 확실치 않다.
비단 나처럼 몇 시간이고 매혹되어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만 그러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모든 이들이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만은 다채로운 감동의 발원과 마주한다.
릴케도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을 이렇게 남겼다.
"마치 나무의 내면으로부터,거의 감지할 수 없는 떨림들이 그의 가슴속을 지나간 것 같다.
그는 한 번도 이보다 더 부드러운 움직임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의 몸은 이를 테면 하나의 영혼처럼 다루어졌으며,물리적인 명료함으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사소한 움직임마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한 느낌에 덧붙여지는 것이 있다면,그가 받아들인 미묘한 동시에 광범위한 메시지의 의미를 처음에는 제대로 정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런데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있다.
자크 브로스(1922~)는 활발한 문필 활동을 통해 나무와 식물에 관한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는데,1987년에는 그의 모든 작품에 대해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대상이 수여되고 그 이듬해에는 자연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의 저자로 꼽혀 피에르 델베상이 수여되었다.
자크 브로스가 수목학 및 신화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결집하여 저술한 책이 <나무의 신화>로서,저자는 이 책에서 태초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우주목을 다루며 세계 여러 민족의 나무에 관한 신화를 풀어내고 있다.
사실 인류학자이자 민속학자였던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도 수목제의(樹木祭儀) 연구를 통해 주술과 종교에 관한 폭넓은 시야를 열어주었듯,나무와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은 이미 뿌리를 탄탄하게 내려 사방으로 가지를 뻗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전설,신화,민담의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인간 사고방식의 보편성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수목학은 인류학 발달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왔다.
⊙ 원문 읽기
그 옛날 인간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가 하늘까지 뻗어 있었다.
우주의 축인 그 나무는 삼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었는데,뿌리는 지하 깊숙이 내려 있었고 가지들은 천상에 닿아 있었다.
땅 속에서 길어 올려진 물은 수액이 되고,태양은 잎과 꽃 그리고 열매를 생겨나게 하였다.
이 나무를 통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나무는 구름들을 모아 엄청난 비를 내리게 하였다.
곧게 뻗은 나무는 천상과 지하의 심연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고,이로써 우주는 영원히 재생될 수 있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나무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보호했고,그들에게 양식을 주었다.
뱀은 나무의 뿌리를 휘감고 있었고,새들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신들도 이 나무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곳과 모든 전승 속에서 이 같은 우주목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며,그 자취가 사라진 곳에서조차도 한 때는 우주목이 존재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 해석
<나무의 신화>는 우주목에 관한 상기 구절로 시작한다.
옛 사람들은 우주가 하나의 중심축에 꿰인 세 영역-천상,지상,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보편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이자 각기 다른 세상의 이동 통로는 바로 생명의 나무로 불리는 우주목이었다.
거대한 우주목이 고대인들의 보편적 우주관이었던 것은 나무가 인간에게 신의 현존을 탁월하게 현시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신화의 역사는 죽음과 부활의 역사인데,나무는 계절의 주기에 따라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보여준다.
고대인들은 재생,영원한 젊음,불멸을 나무를 통해 체험하였다.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이그드라실,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알타이 신화에서 지구의 중심에 솟아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전나무,시베리아 샤먼의 자작나무를 비롯해 무수한 문화권에서 나무를 세상의 근원으로 숭배하였다.
붓다 또한 성스러운 나무(Ficus Religiosa)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데,이는 인도에서 성행하던 수목 신앙이 불교에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나무의 신화>는 나무에게 '영혼'과 '신성'이 부여되어 있다고 믿은 고대인들의 수목 숭배를 문화권별로 정리해서 보여준다.
모든 나무들은 우주의 영혼들 중 하나를 소유하지만,몇몇 나무들은 최상의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과 구별되는 희귀하고 신성한 나무들은 계시,꿈이나 환영,신탁,나무를 만질 때 갑작스럽게 병이 낫는 것과 같은 일들과 결부되어 나무 기둥 아래에 희생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리는 등 특별한 제의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나무가 생과 사를 가로지르는 초월적 경건함 때문에만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불을 사용하게 되는 계기는 나무가 벼락을 맞고 숲에 불이 나면서이다.
이 불을 보면서 인간은 하늘로부터 신의 선물인 불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였고,나뭇가지들을 비벼 불을 발화시키면서 나무를 불의 아버지라고 명명하였다.
어둠을 쫓는 불 외에도 나무는 인간에게 양식을 제공하였고,나무에서 나온 장작과 석탄은 연료가 되었다.
⊙ 원문 읽기
교회가 승리를 거둔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는 나무가 오로지 하나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은 구세주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한 십자가이다.
다른 모든 자연 제의들은 금지되었다.
그리스도교 선교자들은 자연 제의들을 추방시키기 위해 정말로 열성적이었다.
'이교도주의'의 체계였던,상보성과 다양성에 기반을 둔 복잡하고 세분화된 우주의 체계의 뒤를 이어,독단적이고 비관용적이며 이원론적인 일신론이 등장한 것이다.
선과 악의 구별이라는 미명하에,그리고 낡아빠진 사고방식에 대한 반발로 영혼이 신에게 귀속되자 자연은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육체와 자연은 유혹을 부추기기 때문에,그것들은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추방시킨 데 책임이 있는 옛날 지식나무의 뱀,즉 악마의 도구들일 뿐이다. (중략)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화합에 근거한 생명의 균형은 파괴되었다.
이러한 파괴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이제야 깨닫는다.
먼 옛날 인간성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후로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그 의미를 잃어가고 말았다.
이러한 절대적인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을 더 이상 인간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모든 자연은 그 본래의 가치를 상실했다.
한 때는 자연 속에 모든 기호가 함축되어 있었다.
즉 자연 그 자체가 내적인 힘에 의해 솟아나는 하나의 의미를 상징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그 힘을 상실했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자연을 파괴했고,그 결과 응징을 받는 것이다.
▶ 해석
성림(聖林),즉 신성한 숲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종교적 경건함을 체험하는 장소였다.
인간은 숲의 수혜를 통해 문화를 성장시켰으며,나무로 대표되는 자연의 신성함과 교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해갔다.
그러나 인간을 낳은 성림(聖林)은 역사의 진행에 따라 파괴된다.
인간은 이전까지 숭배하던 성스러운 나무를 베는 것을 시작으로 심각한 자연 훼손을 자행하였고,신성한 숲은 점점 속화(俗化)되면서 그 중요성을 잃게 되었다.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에서 인간을 나무 및 자연으로부터 괴리시킨 주된 원인이 그리스도교의 전파라고 정리하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는 유일한 나무는 이제 그리스도교의 십자가밖에 남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브로스는, 유일 인격신 외의 다른 대상에 대한 숭배를 일절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교로 인해 나무의 박해자와 숲의 파괴자들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나무의 신화>는 그리스도교 전도사들이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했을 때,이들이 수행한 최초의 임무들이 수목숭배 제의를 금지시키고 성림을 파괴하는 것이었음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수목숭배 제의들을 추방시켰으나 그 제의가 남긴 여러 가지 흔적들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서 인간의 원초적인 나무 숭배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연구조사를 통해 복원이 가능하였고 이것이 바로 수목학과 인류학의 탯줄이 되었다.
<나무의 신화>는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 대화하면서 공존하여야 한다며 끝을 맺는다.
그리고 저자는 이는 나무와 숲을 파괴했던 인간이 그 과오를 반성하고 나무에 깃 든 생명력과 고대인들의 수목숭배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하리라고 말한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
살아가면서 가장 솔직한 경외심을 품게 되는 순간은 바람에 춤추는 나무들을 보고 있을 때이다.
그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려면,아니 무엇인가가 넘실넘실하게 가득한 그 충만한 느낌의 언저리라도 언어로 접근해 보려면 '경외심'이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느낌은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고용한 응시로 만나게 되는 위무이기도 하고,세상이 나무와 함께 춤추면서 나에게 다가올 때 그 다가오는 걸음 한 발자국마다 커지는 서늘한 엄숙함이기도 하다.
나뭇가지들은 그 손아귀로 하늘을 움켜쥐었다가 풀어놓으면서 거대한 세상을 잊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혹여,경외심 외에 다른 단어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들이 그 군무 속에서 일렁이는 빛의 향연을 펼치면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관통하고 지나간다.
바라보는 이를 꿰뚫는 그 순간을 드러내기 위한 적절한 말이 생명의 찬란함인지 기쁨인지는 확실치 않다.
비단 나처럼 몇 시간이고 매혹되어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만 그러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모든 이들이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만은 다채로운 감동의 발원과 마주한다.
릴케도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을 이렇게 남겼다.
"마치 나무의 내면으로부터,거의 감지할 수 없는 떨림들이 그의 가슴속을 지나간 것 같다.
그는 한 번도 이보다 더 부드러운 움직임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의 몸은 이를 테면 하나의 영혼처럼 다루어졌으며,물리적인 명료함으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사소한 움직임마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한 느낌에 덧붙여지는 것이 있다면,그가 받아들인 미묘한 동시에 광범위한 메시지의 의미를 처음에는 제대로 정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런데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있다.
자크 브로스(1922~)는 활발한 문필 활동을 통해 나무와 식물에 관한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는데,1987년에는 그의 모든 작품에 대해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대상이 수여되고 그 이듬해에는 자연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의 저자로 꼽혀 피에르 델베상이 수여되었다.
자크 브로스가 수목학 및 신화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결집하여 저술한 책이 <나무의 신화>로서,저자는 이 책에서 태초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우주목을 다루며 세계 여러 민족의 나무에 관한 신화를 풀어내고 있다.
사실 인류학자이자 민속학자였던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도 수목제의(樹木祭儀) 연구를 통해 주술과 종교에 관한 폭넓은 시야를 열어주었듯,나무와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은 이미 뿌리를 탄탄하게 내려 사방으로 가지를 뻗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전설,신화,민담의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인간 사고방식의 보편성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수목학은 인류학 발달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왔다.
⊙ 원문 읽기
그 옛날 인간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가 하늘까지 뻗어 있었다.
우주의 축인 그 나무는 삼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었는데,뿌리는 지하 깊숙이 내려 있었고 가지들은 천상에 닿아 있었다.
땅 속에서 길어 올려진 물은 수액이 되고,태양은 잎과 꽃 그리고 열매를 생겨나게 하였다.
이 나무를 통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나무는 구름들을 모아 엄청난 비를 내리게 하였다.
곧게 뻗은 나무는 천상과 지하의 심연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고,이로써 우주는 영원히 재생될 수 있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나무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보호했고,그들에게 양식을 주었다.
뱀은 나무의 뿌리를 휘감고 있었고,새들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신들도 이 나무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곳과 모든 전승 속에서 이 같은 우주목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며,그 자취가 사라진 곳에서조차도 한 때는 우주목이 존재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 해석
<나무의 신화>는 우주목에 관한 상기 구절로 시작한다.
옛 사람들은 우주가 하나의 중심축에 꿰인 세 영역-천상,지상,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보편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이자 각기 다른 세상의 이동 통로는 바로 생명의 나무로 불리는 우주목이었다.
거대한 우주목이 고대인들의 보편적 우주관이었던 것은 나무가 인간에게 신의 현존을 탁월하게 현시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신화의 역사는 죽음과 부활의 역사인데,나무는 계절의 주기에 따라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보여준다.
고대인들은 재생,영원한 젊음,불멸을 나무를 통해 체험하였다.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이그드라실,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알타이 신화에서 지구의 중심에 솟아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전나무,시베리아 샤먼의 자작나무를 비롯해 무수한 문화권에서 나무를 세상의 근원으로 숭배하였다.
붓다 또한 성스러운 나무(Ficus Religiosa)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데,이는 인도에서 성행하던 수목 신앙이 불교에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나무의 신화>는 나무에게 '영혼'과 '신성'이 부여되어 있다고 믿은 고대인들의 수목 숭배를 문화권별로 정리해서 보여준다.
모든 나무들은 우주의 영혼들 중 하나를 소유하지만,몇몇 나무들은 최상의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과 구별되는 희귀하고 신성한 나무들은 계시,꿈이나 환영,신탁,나무를 만질 때 갑작스럽게 병이 낫는 것과 같은 일들과 결부되어 나무 기둥 아래에 희생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리는 등 특별한 제의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나무가 생과 사를 가로지르는 초월적 경건함 때문에만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불을 사용하게 되는 계기는 나무가 벼락을 맞고 숲에 불이 나면서이다.
이 불을 보면서 인간은 하늘로부터 신의 선물인 불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였고,나뭇가지들을 비벼 불을 발화시키면서 나무를 불의 아버지라고 명명하였다.
어둠을 쫓는 불 외에도 나무는 인간에게 양식을 제공하였고,나무에서 나온 장작과 석탄은 연료가 되었다.
⊙ 원문 읽기
교회가 승리를 거둔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는 나무가 오로지 하나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은 구세주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한 십자가이다.
다른 모든 자연 제의들은 금지되었다.
그리스도교 선교자들은 자연 제의들을 추방시키기 위해 정말로 열성적이었다.
'이교도주의'의 체계였던,상보성과 다양성에 기반을 둔 복잡하고 세분화된 우주의 체계의 뒤를 이어,독단적이고 비관용적이며 이원론적인 일신론이 등장한 것이다.
선과 악의 구별이라는 미명하에,그리고 낡아빠진 사고방식에 대한 반발로 영혼이 신에게 귀속되자 자연은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육체와 자연은 유혹을 부추기기 때문에,그것들은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추방시킨 데 책임이 있는 옛날 지식나무의 뱀,즉 악마의 도구들일 뿐이다. (중략)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화합에 근거한 생명의 균형은 파괴되었다.
이러한 파괴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이제야 깨닫는다.
먼 옛날 인간성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후로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그 의미를 잃어가고 말았다.
이러한 절대적인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을 더 이상 인간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모든 자연은 그 본래의 가치를 상실했다.
한 때는 자연 속에 모든 기호가 함축되어 있었다.
즉 자연 그 자체가 내적인 힘에 의해 솟아나는 하나의 의미를 상징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그 힘을 상실했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자연을 파괴했고,그 결과 응징을 받는 것이다.
▶ 해석
성림(聖林),즉 신성한 숲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종교적 경건함을 체험하는 장소였다.
인간은 숲의 수혜를 통해 문화를 성장시켰으며,나무로 대표되는 자연의 신성함과 교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해갔다.
그러나 인간을 낳은 성림(聖林)은 역사의 진행에 따라 파괴된다.
인간은 이전까지 숭배하던 성스러운 나무를 베는 것을 시작으로 심각한 자연 훼손을 자행하였고,신성한 숲은 점점 속화(俗化)되면서 그 중요성을 잃게 되었다.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에서 인간을 나무 및 자연으로부터 괴리시킨 주된 원인이 그리스도교의 전파라고 정리하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는 유일한 나무는 이제 그리스도교의 십자가밖에 남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브로스는, 유일 인격신 외의 다른 대상에 대한 숭배를 일절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교로 인해 나무의 박해자와 숲의 파괴자들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나무의 신화>는 그리스도교 전도사들이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했을 때,이들이 수행한 최초의 임무들이 수목숭배 제의를 금지시키고 성림을 파괴하는 것이었음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수목숭배 제의들을 추방시켰으나 그 제의가 남긴 여러 가지 흔적들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서 인간의 원초적인 나무 숭배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연구조사를 통해 복원이 가능하였고 이것이 바로 수목학과 인류학의 탯줄이 되었다.
<나무의 신화>는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 대화하면서 공존하여야 한다며 끝을 맺는다.
그리고 저자는 이는 나무와 숲을 파괴했던 인간이 그 과오를 반성하고 나무에 깃 든 생명력과 고대인들의 수목숭배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하리라고 말한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