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다음 [가],[나],[다]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나타내고 있다.

세 제시문 각각의 입장에서 [라]에서 제시된 새로운 유형의 가족 현상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 기술하고,이를 바탕으로 미래 한국사회에서 바람직한 가족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1401자 이상 1500자 이하)

<제시문>

나의 유전자의 생존은 내가 자손을 갖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등하다면 진화는 나의 자식의 생존과 번식을 증진시킬 수 있는 행위를 선호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 본다면,부모가 자식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진화가 이타성을 산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유전적으로 가까운 혈연을 돕고자 하는 성향,이것이 바로 혈연이타성의 기초를 이룬다.

따라서 공동체 일반에 대해 관심을 갖기보다는 가족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으며,그러한 관심은 생물학적으로 따져 볼 때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이 모두 덕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 도덕적 탁월성의 지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가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의 이익보다 자녀들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을 단순히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칭송하기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가족에 대한 관심이 보편성을 지니며 강렬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즉 가족을 돌보았을 때 얻어지는 사회 전체의 이익 때문에도 가족에 대한 관심은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양육될 수 있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으며 적절히 보호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또한 환자가 간호를 잘 받고 노인들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가족이 없었다면 공동체 자체가 짊어져야 했을 문제들을 가족은 자연스러운 애정의 결속을 통해 스스로 처리하게 될 것이다.

가족에 대한 관심이 모르는 사람들의 복리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강하다면,가족의 이익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성향을 인정하는 윤리적 규칙을 채택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가족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는 궁극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범국민적 차원에서 발휘된 높은 경제적 동기와 헌신적 노동 투입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이것이야말로 경제성장을 이끈 결정적인 동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동기와 투입을 자본주의 일반에서 발견되는 평범한 한 사례로 보기에는 분명 석연찮은 면이 없지 않다.

경제성장의 욕구는 사실상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고 더구나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도 우리만큼 아니 우리 이상으로 경제성장에 목말라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달랐고 한국의 자본주의는 예외적인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교문화와 가족주의가 한국 자본주의의 긍정적 배경의 하나로 지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유교의 효라는 의미의 원천으로부터 헌신적인 노동의 원동력을 제공받아온 현대자본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가족주의의 기저에는 효의 실천이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효의 실천이 혈연관계를 전제로 하고 또 그러한 혈연관계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효의 지향은 한국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높은 혈연적 신뢰의 규범적 기반이기도 하다.

이렇게 높은 혈연적 신뢰는 단순한 도덕규범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주의를 매개로 한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가족주의가 일정 측면 집단이기주의의 폐단을 노정한 것도 사실이지만,가족 간 신뢰가 결과적으로 경제적 성과를 유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혈연적 신뢰는 가족 상호 간 강한 책임의식을 불러일으켰고,이것이 경제적 동기화와 함께 긴밀한 상호부조로까지 이어졌던 탓이다.

지난 세기 경제발전의 성취는 이 같은 혈연적 신뢰와 혈연적 응집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가족적 상호부조에 의한 사회적 복지비용 절감이 중요한 효과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에드워드 밴필드(Edward Banfield)의 저작 『후진 사회의 도덕적 기초』(The Moral Basis of Backward Society)는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도시인 몬테그라노(Montegrano)에서의 사회생활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개인의 애착이 몬테그라노의 도덕규범을 설명하는 데 있어 출발점임에 틀림없다.

성인(成人)이 그 가족과는 별개의 사익(私益)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는 '자아(ego)'로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존재한다. (중략)

몬테그라노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는 다른 가족에게 주어지는 어떤 이익도 자기 가족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선을 베푸는 데 있어서도 마땅히 내야 할 것 이상으로 타인에게 베풀 여유가 없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주어야 할 공평한 몫을 낼 여유조차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이라는 작은 집단 밖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인 경쟁자이며,잠재적인 적이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이성적인 태도는 의심인 것이다.

부모는 다른 가족이 자기 가족의 성공을 시샘하고 두려워한다는 것과 피해를 입히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들을 두려워해야 하고,또 이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해를 끼칠 힘을 갖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피해를 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

몬테그라노 주민들이 느끼는 유일한 도덕적 의무란 자신의 핵가족 구성원에 대한 것뿐이었다.

밴필드는 이러한 형식의 가족에 근거한 고립을 '무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라고 명명했는데,이 용어는 곧이어 대부분의 사회과학 사전에 수록되었다.

'2000년 인구 주택 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1인 가구 수는 1995년보다 35.4 %가 증가해 전체가구의 15.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부부와 1~2명의 자녀로 구성된 전형적인 형태의 혈연중심의 핵가족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예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유형의 가족 형태들이다.

"예술과 관련한 개인 사업을 하는 최씨는 비슷한 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과 5년 전 결혼했다.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결혼 조건이었다.

이들의 생활은 완벽한 부부 중심이다.

동호회 등 취미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며,서로의 여가나 사생활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

"김씨에게 있어 가족이란 혈연으로 맺어진 자손들이 아니다.

그녀가 이 집의 중심이라고 안내하고 있는 부엌은 60명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대형 식당이다.

이곳은 일흔 살 이상의 노인들 50여명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이곳의 노인들은 가끔 자신의 실제 혈연가족들을 불러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들에게 혈연가족이란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생일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에 만나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