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의 '제물론(齊物論)' 내세워 형평 운동 실천

⊙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우리나라는 부족국가(部族國家)가 성립되면서부터 여성의 지위가 점차 약화되어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주체적 활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가족 제도하에서 오직 남성에 대한 보조적인 역할로서의 여성의 지위만 인정되었다.

특히 고려 말 주자학(朱子學)의 도입 이후 유교사상(儒敎思想)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모든 생활 양식에 유교가 지도 이념이 된 조선에 있어서 여성은 일생을 두고 아무런 법적 보장이나 사회적 지원도 얻지 못하였다.

더욱이 칠거지악(七去之惡)ㆍ삼종지도(三從之道)ㆍ여필종부(女必從夫) 등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봉건적 굴레에 얽혀 여성들은 자주적인 주체성을 가지지 못하였다.

또한 법률적으로도 여성의 지위는 보장을 받지 못하였는데,1912년 일제가 공포한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에서도 여성의 신분적 지위는 관습에 따르도록 규정하여 종래의 유교적인 도덕률(道德律)을 중요시하였다.

따라서 여성의 분가(分家)를 허락지 않았고,호주(戶主) 상속이나 재산 상속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은 오랫동안 고질화된 유교적 인습에 얽매여 고통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부문의 부당한 차별에 대한 철폐를 주장하며 만들어진 단체가 근우회(槿友會)이다.

근우회는 1927년 2월15일 신간회가 조직되어 활동할 때 그 자매기관적(姉妹機關的) 성격을 띠고 같은 해 5월27일 서울에서 결성된 이후 1931년 5월27일 해산될 때까지 약 4년간 활동한 항일계몽적(抗日啓蒙的) 성격을 지닌 여성 단체였다.

이들은 남성 중심의 봉건적 질서를 극복하고 여성에 대한 일체의 차별적 행위 철폐를 주장한 계몽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최양진 선생님의 철학으로 만나는 역사] 14. 부당한 여성 차별 철폐를 주장한 '근우회'


⊙ 인간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도교 사상은 인간 세계의 모든 대립과 차별을 거부하는 제물론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제물론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옳고 그름(是非),아름다움과 추함(美醜),크고 작음(大小),화와 복(禍福),가난함과 부유함(貧富) 등 차별적이거나 대립적인 많은 가치 기준이 존재한다.

그러나 장자는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이러한 모든 가치 기준은 인간이 자신들의 입장에 얽매여서 인위적으로 빚어 낸 환상이나 착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구별과 차별에서 인간의 갈등과 불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였다.

「장자」서(書) 첫편 첫머리에 나오는 붕새 이야기는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9만리 푸르른 창공을 까마득히 날아 올라간 붕새가 이 지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 것인가?

지상에 있는 자가 위를 쳐다보면 창창하고 푸른 하늘이 보이듯이,끝없는 창공에서 지상을 바라보는 붕새에게 이 지상 역시 창창하여 푸르기만한 하늘로 보일 것이라고 한 이 이야기는 보는 입장에 따라 모든 인식과 가치가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나는가 하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

그리고 인간의 입장에 얽매여 있는 모든 가치관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즉 깨닫고 보면 일체(一切)는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러한 차별적 가치관에 얽매여 잘못된 인식을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인위(人爲)에서 찾을 수 있다.

인위란 세상만물 창조의 근원인 '도(道)'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나 기준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인위에 의해 만들어진 차별적 가치 기준을 가지고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옳고 그름,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구별이 생기는 이유는 절대적 경지인 제물론의 입장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지 않고 한정된 인간의 입장에서 현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이고 편협한 가치관에서 벗어나 절대적으로 차별이 없는 '도'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볼 때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선악(善惡),대소(大小),시비(是非),득실(得失),생사(生死) 등의 모든 차별과 대립은 없어지고 모든 것의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도교에서 주장하는 제물론(齊物論:모든 만물의 가치는 같다)의 핵심이다.

⊙ 차별에 대한 대안은 '도(道)'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장자가 제물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도교의 궁극적 목표인 '도'를 깨닫기 위해서이다.

도교에서 말하는 '도'는 현상 세계의 유한성과 모순ㆍ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다.

즉 인간의 인위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 세계의 갈등과 대립(선악·시비·미추)을 극복할 수 있는 궁극적 원리다.

따라서 도교에 따르면 '도란 분명히 실재하면서도 인위적으로 하는 바가 없고 형태도 없는 것이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될 수는 있어도 언어나 문자 표현에 의해서 전달될 수는 없다. ' 이 말은 도는 스스로가 존재의 근본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인위적 방법을 통해서는 인식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장자는 모든 존재의 근원인 '도'를 근거로 하여 제물론을 강조하였다.

즉 제물론의 궁극적 목적은 '인위'를 극복하여 본연의 '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도'는 사물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물에 내재(內在)하고 있다.

이 '도'를 가지고 사물을 보면 일체의 사물에 구별이 없어진다.

'도'는 원래 무한정한 것이므로 사물의 구별도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의 성질이 자연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위적인 지식은 무한정한 자연을 한정 지으려 한다.

인간은 사물을 구별하고 분별하는 방법을 통해 질서를 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사물을 인식해야 하는가?

모든 존재는 저것과 이것으로 구분되나,저것에서 말한다면 이것은 저것이고 저것은 이것이 된다.

즉 저것이라는 개념은 이것이라는 개념과의 대비에서 비로소 성립되며,이것이란 개념은 저것이란 개념과의 대비에서 비로소 성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판단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며,절대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들의 편견에 의해 자기가 판단한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서로 주장한다.

따라서 인간은 인위적 지식의 한계를 스스로 자각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자신이 만들어 낸 편견의 차별에 사로잡히지 말고,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성에 대한 차별도 인간의 인위에 의해 만들어 낸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의 차별적인 가치 기준에 의해서 남녀에 대한 차별이 만들어진 것이지 본래부터 남녀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의 철폐를 주장한 근우회와 같은 움직임은 인간의 인위에서 비롯된 차별과 편견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이 진정한 자유인 '도'를 깨닫기 위한 긍정적 시도로 평가받아야 한다.

서울 한성고 교사 cyjin7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