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왜 다스토피아로 끝나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제5막에서 미란다가 외친다.

"아아,얼마나 신기한가! 여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군요! 오,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신세계여!"

그리고 이 대사는 시간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속을 흐르다가 1932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의 작품 제목으로 다시 탄생한다.

[고전속 제시문 100선] (94)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헉슬리가 집필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야만인 존은 희망에 가득 차 들뜬 목소리로 이 대사를 읊는다.

어머니의 실족사고로 자연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존은 곰팡이 핀 셰익스피어 전집을 벗 삼아 고독과 싸우다 우연히 문명인 관광객 눈에 띄어 문명세계에 발을 디딘다.

20년간 어머니에게 말로만 듣던 멋진 신세계가 그의 눈앞에 열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꿈이 반드시 다른 이에게도 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명세계에서 존은 다시 한번,'오 멋진 신세계여!'라고 외치나 말을 마친 후 미친 듯이 달려가 구토를 한다.

존에게 구토를 유발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 원문 읽기

83명의 짧은 머리 검은 델타가 냉각 압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네 개의 스핀이 달린 기계 5, 6대가 덜컹덜컹하고 돌아가고,56명의 허리가 굽고 조심성이 많은 감마들이 기계를 운전하고 있었다.

주물 공장에서는 열에 대해 습성훈련을 받은 세네갈 종의 엡실론 107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길쭉하고 골반이 좁고 얼굴이 황토색이며,모두 1m69㎝보다는 20밀리가량 모자라는 키를 가진 33명의 델타 여성들이 나사못을 끊고 있었다.

조립실에서는 두 줄의 감마 플러스의 난쟁이들이 발동기를 조립하고 있었다.

낮은 작업 책상 두 줄이 서로 마주보고 나란히 있으며,책상 사이에는 부품을 적재한 컨베이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47개의 금발 머리가 47개의 갈색 머리와 서로 맞대고 있었다.

47개의 매부리코가 47개의 갈고리코와,47개의 움푹 들어간 턱이 47개의 툭 튀어나온 턱이 맞대고 있었다.

조립이 끝나자 18명의 감마 초록빛 옷을 입은 일률적인 모양의 갈색 곱슬머리 여자들이 검사를 하고 34명의 다리가 짧고 왼쪽 팔을 쓰는 델타 마이너스 남자들이 상자에 넣어서,63명의 새파란 눈과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을 가진 반백치 엡실론이 대기하고 있는 트럭에 실었다.

해설

외양의 묘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공장에서 일하는 감마,델타,엡실론들은 모두 일란성 쌍둥이들이다.

문명세계의 공장은 이러한 쌍둥이들이 공정 과정을 하나씩 담당해 오차 없이 일을 처리한다.

알파,베타,감마,델타,엡실론은 문명세계의 계급 명칭이며,각 계급은 다시 알파와 마이너스로 세분화된다.

사회적 지위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계급에 맞춰 정해져 있고 일련의 세뇌 습성교육을 통해 개인은 할당된 역할을 자동적으로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고등학교 때 상대성 이론을 배우는 알파 더블 플러스로부터 정신노동이 전혀 요구되지 않는 노동계급인 감마,델타,엡실론은 철저하게 자신의 계급에 맞게 양육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문명세계의 사람은 제조와 가공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원문 읽기

부화기 위에 몸을 기울인 채로,국장은 이 과정의 외과적 도입에 대해 서술했다.

"난소를 적출하는 수술은 사회의 선(善)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받게 되는 수술이며,6개월분의 봉급에 해당할 정도의 보너스가 따르는 것입니다."

다음에 그는 이와 같이 도려낸 난소를 보존하여 발육시키는 기술을 설명하고,가장 적당한 온도와 염분도,점도에 관하여 설명한 뒤 분할 난자를 보존하는 용액에 관하여 이야기를 진전시켰다.

(중략) 한 개의 난자,하나의 태아,한 사람의 성인,이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포카놉스키 처리에 의하면 난자는 싹이 트며 이상발육을 하여 분열한다.

한 개의 난자가 여덟 개에서 96개에 이르기까지 배아하여 각기 배아는 완전한 태아가 되고,드디어 완전한 성인이 된다.

진보가 아니고 무엇인가?

포카놉스키 처리는 사회 안정의 중요한 수단이다.

표준형인 남자와 여자, 동일형의 무리, 작은 공장들은 모조리 단 한 개의 포카놉스키 난자가 생산한 인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96명의 동일형의 쌍둥이들이,96개의 동일형의 기계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열에 겨워서 목소리가 거의 떨릴 지경이었다.

"제군들은 바야흐로 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초로 실현된 놀라운 사실 앞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표어를 인용했다.

"공동,균등,안정." 위대한 말이다.

"만약 우리들이 무한정으로 포카놉스키화(化)를 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표준형인 감마에 의하며,변화가 없는 델타에 의하여,동일형의 엡실론에 의하여 해결되는 것이다.

해설

대량생산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수정란은 어머니의 자궁이 아닌 병 속에서 배양된다.

유전,수정 시일,포카놉스키 그룹 번호 등의 세밀한 분류표를 붙인 병은 사회적 예정실로 옮겨져 병 안의 태아에 알맞은 수준으로 관리된다.

노동계급의 태아가 들어 있는 병에는 태아를 표준 이하로 만들기 위해 산소 또한 적게 공급된다.

계급이 낮을수록 산소도 적어지는데,산소 결핍으로 제일 먼저 침범 당하는 기관은 두뇌이고 그리고 다음은 골격이다.

또한 혹여 모를 태아의 지능과 신체 발달을 막기 위해 독극물이 따로 주입된다.

이렇게 하여 머리가 좋고 키가 큰 알파 계급에서부터 원숭이만한 체구의 백치 엡실론에 이르기까지 지능과 체격 모두가 계급에 따라 순차적으로 정해진다.

공장에서 인간이 만들어지는 문명세계에서 자연출산은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불결함과 어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치욕스러움은 감히 그 단어를 입에 올릴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하다.

존이 야생 구역에서 그렇게 오래 떠돌아다닌 이유도,상상도 못할 자연출산을 해버렸다는 사실에 그의 어머니 린다가 사회적 치욕이 두려워 되돌아가기를 망설였기 때문이다.

린다와 존의 모자 관계는 사람들의 혐오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아낸다.

'인간은 모두 서로 공유(共有)하고 있는 것'이므로 고독,가정,일부일처,로맨스와 같은 배타적 태도는 용납되지 않는다.

존이 소중히 여기는 순결 또한 금기 대상이다.

문명세계의 아이들은 6, 7세부터 의무적으로 에로틱 플레이를 권장받는다.

분출되지 않은 욕구는 위험하기 때문에 문명세계는 그 어떠한 감정이나 욕구도 누적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정열과 불안정은 문명의 최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문명인들은 열정을 품지 않도록 한 달에 한 번씩 아드레날린으로 온 몸을 씻어내는 흥분대처 요법을 받는다.

이처럼 완벽한 질서로 짜인 안정된 세상에서 문명인들은 언제나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가끔 찾아드는 고민이나 불안은 환각성 도취제 '소마'를 먹어 씻어낸다.

문명은 세균을 박멸한 것처럼 번민과 우울마저 단 한 점조차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멋진 신세계'에 절망한 존은 문명세계의 총재 무스타파 몬드와 만나 문명세계를 떠나겠다고 한다.

총재는 존의 요청을 수락하지만,문명세계의 질서와 정당성에 대해 긴 설교를 한다.

⊙ 원문 읽기

현대처럼 적절하게 조직된 문명사회에서는,인격의 고결함이나 영웅적인 것을 결코 필요로 하지 않는다네.

그런 것은 정치적 무능의 징후이지.

그러한 기회가 발생하려면,우선 사회의 상황이 철저하게 불안정해야 하지.

전쟁이 일어난다든가,충성의 의무감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든가,항거해야 할 여러 가지 유혹이 있다든가,싸워서 쟁취하느냐,수호해야 하느냐 하는 식의 애욕의 대상이 있다든가,그러나 지금은 전쟁 같은 것은 없네.

누구든지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도록 최대의 주의를 다하고 있지.

충성의 의무가 두 갈래로 갈라질 염려도 없네.

즉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도록 길들여져 있지.

그리고 마땅히 해야 되는 것들이란,모두 지극히 즐거운 것이며,자연적 본능은 대부분 자유롭게 해방되어 있네.

그러므로 항거해야 할 유혹 같은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

그리고 만일의 경우에,우연히도 그 어떤 불행하고 불쾌한 일이 발생할 경우에는,그때야말로 불쾌한 대상으로부터 벗어나 휴식을 취하도록 소마가 준비되어 있지.

화를 진정시키는 데도 소마가,적과 융화하는 데도 소마가,끈기 있게 지구력을 강화시키는 데도 소마가 준비되어 있네.

옛날에는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하고 격심한 도덕적 훈련을 해야만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반 그램의 소마 정제 두 개 내지는 세 개만 마셔 버리면,그것으로 충분하다네.

지금은 어떤 사람이라도 도덕가가 될 수 있지.

해설

세상은 얼룩덜룩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화사하게 칠해버리려 노력했다.

냉소적인 제목의 <멋진 신세계>처럼 말이다.

그러나 혼란 속에서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허우적거리는 세상은 어쩌면 축복이다.

균열과 불안정,그리고 고통에서 우리 삶의 가치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인류가 꿈꿔왔던 완벽한 유토피아를 현실로 옮기면 모두 디스토피아로 화할 것이다.

천국의 새들이 노래하는 유토피아는 꿈속에서 존재했기 때문에 언제나 아름다울 수 있었다.

무수한 비난을 받았던 공산주의자들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종교의 이름이든,사회 이념의 이름이든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로 존재할 때에만 우리를 설레게 한다.

홍보람 s.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