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따금 천국이 시공의 틈새로 얼핏 나부끼다 사라지는 찰나가 있고,말 그대로 생지옥이 세상을 찾아올 때도 있다.
다만 천국은 개인의 현실에나 가끔씩 출현하지만,지옥은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크메르루즈처럼 사회집단적으로도 종종 현실 세상을 찾아온다는 점에서 인간의 어리석은 세상살이가 자아내는 씁쓰레함이 못내 아린 맛을 띤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서사시는 유토피아(Utopia) 작품과 디스토피아(Dystopia) 작품으로 구체적인 모양을 입고 형상화된다.
토마스 모어가 그의 작품을 위해 조어(造語)한 '유토피아'는 책 제목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였지만,그 반대말인 역 이상향(逆 理想鄕) '디스토피아'는 존 스튜어트 밀이 그리스어 디스(dys; 나쁜)와 토포스(topos; 장소)를 결합한 단어를 의회 연설에서 사용하면서 공식어로 등장하였다.
동경의 이상향(理想鄕) 유토피아가 사람들의 꿈을 자양분으로 줄기를 뻗어나간다면,그에 대립하는 절망향(絶望鄕) 디스토피아는 불안과 근심을 집어삼키며 어두운 형체를 갖춘다.
상상의 불길함이 구불구불 펼쳐나가는 디스토피아는 지금까지 다양한 문학과 영화 작품을 그 음험한 자식으로 낳았는데,누구나 첫 손에 꼽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문학으로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있다.
1945년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예리하게 희화화한 동물우화 <동물농장>을 집필하여 정치소설가로서 부동의 입지를 굳힌 조지 오웰-사실 조지 오웰은 필명이고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다- 은 1948년 지병의 악화로 병상에서 고생하며 <1984년>을 탈고하였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일당독재의 전체주의 국가로서,'전쟁은 평화,자유는 예속,무지는 힘'이라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사회를 지배하는 곳이다.
오세아니아 전역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한다.
텔레스크린은 절대 끌 수 없는 모니터 장치로서 사람들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당의 명령을 일일이 하달하고 그 명령에 즉시 따르지 않으면 곧바로 경고를 보낸다.
간혹 거리나 수풀처럼 텔레스크린을 장치하기 곤란한 장소에는 소리로 감독 기능을 하는 마이크로폰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통제 가운데 주인공 윈스턴 스미드는 용기를 내어 비밀스레 일기장을 몰래 구입하고 1984년 4월4일 텔레스크린의 사각지대에서 그의 글을 써 나가려 조심스럽게 펜을 든다.
그러나 막상 일기장을 펼치자 자기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과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이 엄청난 무력감으로 다가와 윈스턴을 무겁게 내려 누른다.
그는 한없는 무력감의 이유를 몰라 당황해 하지만 당국의 방침에 따라 생활해온 귀결로서 무력감은 당연한 소치라 할 수 있다.
오세아니아의 시민들은 항상 당국의 명령에 따라서 울고 웃기 때문이다.
⊙ 원문 읽기
기름을 치지 않은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방의 한쪽 끝에 있는 텔레스크린에서 터져 나왔다.
치가 떨리고 목덜미의 머리털이 빳빳해지는 듯했다.
'증오'가 시작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적인 골드슈타인이 화면에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중략) 30초가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듯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화면에 나타난 염소처럼 생긴 얼굴과 유라시아 군대의 막강한 힘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중략) 3분 째로 들어서자 '증오'는 절정에 다다랐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 스크린에서 나오는 그 미칠 것 같은 염소 소리를 제압하려고 했다.
자그마한 갈색 머리 여자는 상기되어 마치 물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입을 불룩거렸다.
오브리엔의 무게 있는 얼굴도 벌겋게 되어 있었다.
그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 파도에 버티기라도 하듯 큰 가슴을 벌떡거렸다.
윈스턴 뒤에 앉은 검정 머리의 여자는 "돼지야! 돼지! 돼지!" 하며 소리 지르더니,갑자기 묵직한 신어사전을 집어 들어 스크린을 향해 내던졌다.
사전은 골드슈타인의 코를 맞히고 떨어졌다.
아우성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윈스턴이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소리 지르고 발뒤꿈치로 의자를 맹렬히 차고 있었다.
▶ 해석
윈스턴이 되새기듯이,이 '증오의 시간'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증오에 의무적으로 가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저절로 합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증오의 명령이 시작되고 단 30초도 되지 않아 어떤 가식도 필요 없게 된다.
공포와 복수심의 강렬한 도취,위악의 충동이 전류처럼 흘러 모든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광적인 상태로 빠져 버린다.
그러나 이들이 느끼는 분노는 추상적이고 방향 감각이 없는 모호한 감정이다.
가상의 적인 골드슈타인과 과연 어느 나라와 싸우고 있는지 분간도 못하는 적국처럼 당국의 조정에 따라 분노의 대상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쉽게 옮겨간다.
사람들은 분노의 원인이며 이유도 전혀 모르는 채 당국이 시키는 대로 충성스럽게 분노하고 또 분노한다.
인민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당국은 사람들의 기억마저 장악하고 있다.
당의 결정에 따라 명예로운 당원은 순식간에 배역죄를 무수히 저지른 간교한 역모자로 변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