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연구소 장비와 대학 인력 활용해 시너지 효과"

반 "원칙과 명분없는 통폐합 움직임 즉각 중단을"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간 통합 문제가 불거지면서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소 구조조정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한 쪽에서는 "최고 수준의 이공계 인력 교육기관과 출연연구기관 간 통합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구인력의 연계 활용 등으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까지 올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출연연구소와 대학은 운영 체제나 설립 근거 등이 다른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고 강제적으로 통합할 경우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출연연구소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출연연구소들이 들어서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가 크게 술렁이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40%를 투입하는 국가 입장에서 볼 때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구소 운영은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사안이며,새로운 시대적 역할을 정립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출연연구소들의 역할과 기능이 도마에 올라 홍역을 치르고 있는 현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점이다.

출연연구소 통폐합 문제의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해본다.

⊙ 찬성 측, "연구소 장비와 대학 인력 활용으로 시너지 효과 기대"

KAIST와 출연연구소 간 통합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출연연구소 설립 목적 중에는 교육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생명공학연구원이 KAIST와 합친다면 학생들은 오히려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공동의 목표만 뚜렷하다면 연구소의 좋은 장비와 대학의 인력이 합쳐지면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틀에 박힌 운영이나 연구보다는 다양하게 접촉하면서 새로운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시스템과 시스템,기관과 기관의 통합만을 봐서는 안 되며 사람과 사람의 융합이 이뤄진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자와 교수들의 사회는 사뭇 다르지만 각계의 인력이 섞여 브레인 스토밍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계는 당장 눈앞의 처우나 운영 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통합 논의와 혁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조직개편에 따른 후속적 조치를 취하는 데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얘기다.

⊙ 반대 측, "원칙과 명분 없는 출연연 통폐합 추진 즉각 중단해야"

이에 대해 반대 쪽에서는 "정권교체 때마다 출연연구소에 대한 구조조정 소문으로 연구 분위기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새 정부의 원칙과 명분 없는 통폐합 움직임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KAIST와 생명공학연구원 간 통합은 정부 측 설명대로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보다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과학원(KAIS·현 KAIST) 간 통합 등은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이는 연구원들의 이탈과 청소년 이공계 기피의 원인이었다며 새 정부가 과거의 구조조정 악습을 되풀이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과학기술계 연구소의 기관장 인사까지 관여하고, 대부분의 연구원들과 교수들이 반대하는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반발한다.

정부는 출연연구소들이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한국'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며 연구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 출연연 위상을 강화하고 연구원 우대 풍토를 조성하는 게 급선무

출연연구소도 시대 변화에 맞춰 혁신하고 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소를 대학 또는 다른 연구소와 통폐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구소 조직을 흔들어대서야 어떻게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겠는가.

제5공화국의 전면적 통폐합 등 지난 40여년에 걸친 갖가지 개혁 조치들은 과학기술 경쟁력 향상보다는 '변화를 위한 변화'와 '구조조정을 위한 구조조정'에 그치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게 현실이다.

정부 당국은 통폐합설 등으로 또다시 조직을 흔들어대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연구개발로 무엇을 달성하려는지,그를 위해 연구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깊이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원들의 공감을 얻는 데 우선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연구소 위상을 강화하고 연구원을 우대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연구소들이 기초원천 연구와 거대 과학 프로젝트 등 본래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도록 PBS 개선,평가 시스템 구축 등에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소 =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특별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기관으로 총 44개에 이르고 있다.

1999년 독일식 연구회 모델을 벤치마킹해 각 부처에 속했던 출연연구기관들을 기능별로 모아 기초 산업 공공 등 3개 연구회 체제로 개편됐다.

과기부 소속 26곳 가운데 기초연구를 제외하고 산업적 성격이 강한 13곳이 지식경제부로 이관됐다.

◆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 기초과학기술 개발을 주임무로 하는 국책 종합연구기관으로 1965년 설립됐다.

과기 분야 첫 출연연구소로 서울 홍릉에 있다.

대학원으로 1971년 설립된 한국과학원(KAIS)과 1981년에 통합됐으나 연구 기능과 학사 기능의 통합을 이루지 못함에 따라 1989년 6월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다시 분리됐다.

◆ PBS(Project based system) = 정부 출연연구소 간 경쟁을 유발, 연구개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프로젝트 중심제 또는 연구과제 중심제도로 불린다.

연구원들이 인건비와 연구비 일부를 프로젝트 발주처로부터 경쟁적으로 수주해 자체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

<서울신문 5월30일자 기사>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 산하 27개 정부 출연연구소의 통폐합 및 구조개편 작업이 오는 9월까지 마무리될 전망이다.

특히 정부가 출연연구소를 305개 공공기관에 포함시켜 개편을 추진,통폐합 규모가 예상보다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4월 KAIST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시작으로 본격화한 출연연의 구조개편 작업을 오는 9월 안에 매듭짓기로 했다.

교과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9월까지는 개편 작업이 끝나야 내년 예산 편성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김창경 과학비서관도 최근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델을 출연연 스스로 찾도록 하자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며 "9월이면 결과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과부와 지경부 산하 기관장들이 지난달 제출한 일괄 사표의 처리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것도 통폐합 작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9일 현재 지경부 산하 13개 기관장 중 한국전자통신연구원,생산기술연구원,에너지기술연구원 등 3개 기관장만 재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이마저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또 교과부 산하 14개 기관장들도 대부분 재신임 여부에 관해 언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 관계자는 "인사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통폐합할 출연연을 고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