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증권선물거래소 등 증권사…투자자간 분쟁 조정
[Make Money] 내 탓아닌 증권투자 손실 보상받을 길 없나
주식 투자를 하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주변사람의 솔깃한 제안에 돈을 맡겼다가 원금이 반토막 나든가, 시중에 떠도는 악성루머를 듣고 황급히 주식을 팔았는데 주가가 크게 오르는 바람에 손해봤다는 식이다.

이렇게 손실을 보더라도 어디가서 하소연하기에는 마땅치 않다.

주식 투자에 따른 1차적 책임은 결국 본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권사의 부정행위나 오류, 실수 때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증권사 직원이 멋대로 고객의 주식을 매매했다면, 또는 증권사 전산상의 오류로 인해 거래 체결이 지연됐다면 '투자자 본인에 1차적 책임있다'는 말에 수긍할 투자자는 없다.

이처럼 증권사의 잘못으로 인해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의 민원을 접수해 해결해주는 곳이 바로 분쟁조정실이다.

⊙ 분쟁유형 어떤게 있나

증권사와 투자자 간의 분쟁조정 기능은 금융감독원과 증권선물거래소, 증권협회, 소비자보호원 등 4곳에서 수행한다.

이 중 가장 활발한 곳은 금감원이다.

전체 증권 관련 분쟁조정의 70%가량을 금감원이 맡는다.

증권선물거래소는 25%가량이며 소비자보호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많이 신청하는 이유는 금감원의 조정이 법적 효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조정안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아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반면 증권선물거래소의 조정은 민법상의 화해계약이다.

배상 명령을 받은 증권사가 이를 거부하면 투자자는 다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럼 투자자와 증권사 간의 분쟁유형은 어떤게 있을까.

증권거래법은 귀책사유에 따라 일임매매, 임의매매, 부당권유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임매매는 투자자가 증권사 직원에게 "당신이 잘한다고 하니 내 돈을 맡아서 불려달라"는 식으로 매매 권한을 맡기는 것을 말한다.

거래법에서는 서면계약을 통해 종목, 수량, 가격 등에 한해 일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넘어 거래의 전권을 증권사 직원에게 위임했다가 손실이 나면서 분쟁으로 발전하는 경우다.

임의매매는 증권사 직원이 고객 자산을 독단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고객의 주식을 매매할 때는 사전에 협의하고 보고해야 되지만 이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매매했다가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부당권유는 증권사 직원이 고객에게 "수익률을 보장해주겠다"든가 "모 기업 CEO랑 친한데 이번에 큰 계약건을 조만간 발표한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매매를 유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실제 증권사와 투자자 간의 분쟁은 이들 세가지 형태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전산장애나 거래체결 지연에 따른 분쟁 등도 그 중 하나다.

최근에는 투자자들이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통해 직접 온라인 매매에 나서다보니 HTS 이용 미숙에 따른 '주문집행' 관련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 증권사에 배상받기는 하늘에 별따기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전통적인 분쟁사항인 일임매매나 임의매매, 부당권유 등에 따른 분쟁은 점점 줄어들거나 정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당권유에 따른 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2005년 98건였지만 지난해는 83건에 머물렀다.

반면 주문집행과 관련된 분쟁은 2005년 51건에서 지난해에는 117건으로 늘어났다.

최근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나 ELW(주식워런트증권)가 인기를 끌다보니 이와 관련된 분쟁도 급증했다.

2005년 50여건 남짓이었지만 지난해에는 580건을 웃돌았다.

전산장애와 관련된 분쟁도 매년 심심찮게 제기된다.

특히 지난해에는 이트레이드증권의 전산장애가 발생하면서 전산장애 관련 분쟁이 810건에 이를 정도로 극심했다.

작년 증권선물거래소에 제기됐던 분쟁 사례 하나만 소개하면, 고령의 투자자인 A씨는 직원사 지점장인 B씨의 말을 듣고 주식을 사들였다.

B씨가 "이 종목은 확실하게 오른다.

내가 대주주와 연락하고 있다"며 매수를 종용했다.

하지만 주가는 오히려 폭락했고 B씨는 "정보가 틀린 거 같다.

우량주 위주로 매매를 다시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했지만 A씨는 이미 사들인 주식을 팔지 않았다.

결국 손실은 더욱 커졌다.

증권선물거래소는 이 분쟁건에 대해 쌍방과실을 인정했다.

B씨는 객관적 근거없이 매수를 권유했으며 주가가 폭락한 이후에도 한동안 "반드시 다시 오를 것"이라며 단정적 판단을 제시했다는 이유다.

A씨는 자기판단과 책임하에 투자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B씨의 말만 믿고 회사 내용 파악을 게을리했다.

또 B씨가 "블루칩 위주로 다시 시작해 손실을 만회하라"고 했음에도 매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해나가기 어렵다.

이에 따라 증권선물거래소는 A씨가 입은 손실의 일정 부분을 B씨가 재직 중인 증권사에서 배상토록 합의권고했으며 양측이 이를 수용해 분쟁이 마무리됐다.

분쟁조정 신청은 우편이나 팩스,또는 금감원과 거래소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분쟁 경위를 편지형식으로 쓰고 관련 증거자료를 첨부하면 된다.

별도의 신청양식은 없다.

다만 대리인이 신청할 경우는 신청인의 위임장이 필요하다.

금감원 등이 이를 접수하면 해당 증권회사에 관련 자료를 제출토록 한후 면담 등을 거쳐 판단을 내린다.

과거에는 증권사 직원들이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일임매매나 부당권유 등을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현저히 줄었다.

때문에 투자자가 증권 분쟁조정을 신청하더라도 증권사의 전적인 잘못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전산오류 등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상품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분쟁조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투자의 1차적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결된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투자자가 스스로 관련 상품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투자에 앞서 약관을 꼼꼼히 챙겨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