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남미국가연합 출범…남미판 EU, 자원 공동체 되나
남미판 유럽연합(EU)을 지향하는 '남미국가연합(UNASUR)'이 공식 출범했다.

세계적으로 에너지와 식량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원유와 농산물 등 풍부한 자원을 갖춘 남미지역의 공동체가 탄생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남미의 입김은 한층 세질 전망이다.

지난 23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남미 12개국 정상들은 이날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UNASUR 창설조약에 서명했다.

남미대륙에서 12개국이 모두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단일기구가 등장한 것은 UNASUR가 처음이다.

이번 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UNASUR의 기본 원칙으로 △조화로운 정치△자유무역협상 지향△에너지와 통신부문의 통합 가속화△농업 및 식량정책 공조△과학기술 협력 확대△기업 및 사회공동체 통합노력 확대 등을 제시했다.

UNASUR는 남미의 양대 경제블록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과 안데스공동체(CAN:페루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를 묶어 경제성장을 가속화하고 정치ㆍ외교적 사안에도 대외적으로 한목소리를 낸다는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EU와 같은 정치ㆍ경제적 통합체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UNASUR는 앞으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상설 사무국을 두고 고위급 협의 기구 등을 설치하면서 조직 체계를 정비해 나갈 예정이다.

정상회담은 매년마다, 외무장관 회담은 6개월마다 열리게 된다.

또 2019년까지 남미 역내 관세를 폐지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UNASUR의 초대 임시 의장국은 칠레가 2년 동안 맡게 됐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UNASUR는 21세기 남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명실상부한 대표기구가 될 것"이라면서 회원국 정상들의 긴밀한 협력을 당부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UNASUR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남미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특히 에너지 환경 식량 문제 등에서 남미지역이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룰라 대통령은 또 이번 기회에 남미지역의 통합중앙은행과 단일통화 창설을 추진하자는 뜻을 밝혔다.

남미의 대표적 좌파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도 "하나의 남미를 향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UNASUR 출범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UNASUR 출범을 계기로 남미의회 남미안보협의회 등 역내 국제기구가 잇따를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콜롬비아를 제외한 11개국 정상이 남미안보협의회 창설안을 검토하는 기술그룹을 구성하는 데 합의했다.

콜롬비아는 좌익 게릴라조직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대한 성격 규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남미안보협의회 창설에 대해 유보적이다.

이와 관련해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은 UNASUR의 순번 의장직을 거부했다.

남미지역 단일 통합기구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은 2004년 12월 페루 쿠스코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시작됐다.

이후 수차례의 정상회의와 각료급 회의 등을 거쳐 지난해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남미 에너지 정상회의'에서 UNASUR라는 명칭을 갖게 됐고,그후 각 분야의 세부적인 통합 계획을 추진해왔다.

UNASUR 12개 회원국의 인구는 3억8000여만명이며,전체 국내총생산(GDP)은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으로 2007년 현재 3조7000억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GDP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16조달러)이나 EU(15조달러)의 약 4분의 1 규모다.

특히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주요 산유국들의 석유 생산량이 전 세계 산유량의 8.8%(2006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UNASUR의 공식 출범으로 국제 사회의 다극화 현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UNASUR가 미국과 EU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국제 사회의 새로운 축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면서 천연자원이 풍부한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의 위상은 예전과 달라졌다.

지구 환경문제에서도 아마존이 있는 남미를 제외하고는 국제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UNASUR가 EU처럼 실질적 통합 단계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많다.

경제와 금융,국방 관련 분야에서 각국들 간 입장 차이를 분명하게 조율하지 못한 채 출범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 내 빈부격차가 너무나 크다.

국가별로 보면 브라질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GDP 규모를 갖춘 데 비해 볼리비아 가이아나 파라과이 수리남 등은 브라질 국영 에너지회사인 페트로브라스 시가총액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

남미 각국의 이념 성향 차이도 문제다.

상대적으로 친미ㆍ친시장적인 칠레 페루 등과 그 반대 성향인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간 정책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미의 맹주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갈등 또한 본격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두 나라의 알력은 이미 지난해 12월 남미은행(Bancosur: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에콰도르 볼리비아) 창설 때부터 불거졌었다.

남미은행 출범 당시 브라질은 개발원조를 제공하는 역할에 중심이 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반면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대통령이 주창해온 21세기 사회주의의 노선에 입각한 남미 지역 통합을 위해 남미 은행이 건설돼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남미은행 운영위원회의 의결권 행사 방식에 대해서도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었다.

브라질 정부는 자본금 분담 규모가 달라질 경우 의결권 행사에도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차베스 대통령은 "의결권을 달리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맞섰다.

이 밖에 △볼리비아 정부의 에너지산업 국유화 정책에 따른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의 천연가스 공급난△콜롬비아-에콰도르-베네수엘라의 영토 침범 논란△칠레-페루 간의 태평양 연안해역 영유권 다툼△볼리비아의 태평양 진출권 주장 등 또 다른 난제들도 쌓여 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