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백화점 세일기간 교통정체 불러 큰 불편"

반 "교통량 줄이자고 소비활동 가로막는 격"

서울시가 대형 건물 69곳을 교통혼잡 특별관리 시설물로 지정하고, 이르면 10월부터 이곳에 진입하는 차량에 통행료 4000원을 부과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도심 혼잡통행료 부과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서울시는 도심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해 교통량을 과다하게 일으키는 시설의 출입 차량에 통행료를 물리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교통량을 줄이자고 일상적인 소비활동을 저해하는 교통혼잡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백화점들도 "롯데와 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3사가 작년에 서울에서만 33억여원의 교통유발 분담금을 냈는데 고객에게 또 다시 혼잡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은 이중규제"라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지금도 서울 도심으로 들어오는 차량에 대해 남산 1, 3호 터널에서 통행료를 받고 있고, 대형 건물에 대해 교통 유발 부담금을 징수하는 등 통행차량 제한 대책이 시행되고있다.

하지만 서울 같은 거대도시가 교통문제를 풀 수 있는 적절할 대안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교통혼잡을 빚는다고 해서 특정 건물에 출입하는 차량에 별도의 혼잡통행료를 징수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 찬성 측, "교통혼잡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부담 줄여야"

혼잡통행료 부과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에너지를 절약하고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개선하고,교통혼잡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혼잡통행료 부과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요 대형 건물들은 대중교통 접근이 양호한데도 대형 주차시설을 확보해 시민들의 승용차 이용을 유인하고 있고, 백화점은 세일기간에 극심한 교통혼잡을 초래해 다른 통행 차량에 불편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국토연구원의 분석 결과 서울 도심에서 혼잡통행료 3000원을 물리면 출근시간 도심의 통행속도는 19% 정도 빨라지고 승용차 이용률은 3% 정도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서울은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이 잘 운영되고 있으며 버스와 택시도 넘쳐나는데도 시민들이 굳이 승용차를 몰고 다니려는 태도는 이제 고쳐져야 한다고 꼬집는다.

준공영제를 핵심으로 하는 대중교통 지원 대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혼잡통행료 부과 확대를 통해 개혁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반대 측, "통행료 부과로 교통혼잡 문제 해결은 행정 편의적 발상"

이에 대해 반대 쪽에서는 "교통난의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하고 '돈을 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행정 편의주의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교통 혼잡을 빚는다고 특정 건물에 출입하는 차량에 별도의 혼잡 통행료를 징수하겠다는 것은 행정력으로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발상으로, 비합리적이라고 꼬집는다.

교통혼잡 특별관리 시설물에는 대형 백화점은 물론 서울대병원,삼성의료원,예술의전당 등도 포함돼 있어 과잉 규제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미 만만찮은 액수의 교통유발 부담금을 내고 있는 백화점과 고객들에게 이중 부담을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방안은 실효성이 없다는 데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고객이 통행료가 무서워 백화점에 들르지 않을 리 만무하며, 백화점들이 여러 형태로 통행료를 사실상 대납 혹은 보전해주는 식의 마케팅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 혼잡통행료 징수 방침 철회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세워야

도심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승용차 이용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서울시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혼잡시설물을 이용하는 게 마치 잘못인 것처럼 돈을 내도록 해 통행량을 줄여보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백화점으로부터 교통유발 부담금을 걷어 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용객에게까지 부담을 지우려는 처사를 누가 과연 수긍할 수 있겠는가.

이뿐만 아니다.

대부분 백화점 고객들은 통행료를 감수하고라도 승용차를 이용하게 마련이므로 교통난 해소에 보탬이 될지 의문이다.

만약 백화점이 매출 하락을 우려해 통행료를 보전해주는 방법이라도 쓴다면 그 효과는 왜곡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오죽하면 '4000원짜리 교통정책'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겠는가.

서울시는 일방적으로 통행료를 물리기에 앞서 교통난 해결을 위해 그동안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자성부터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동차부제 운영이나 대중교통 이용에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

서울시는 혼잡통행료 징수 방침을 철회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혼잡통행료 = 대도시 중심부의 교통량을 줄이고 대기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특정 구역을 통과하는 차량으로부터 일정한 요금을 걷는 제도.

1975년 싱가포르가 관련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이래 노르웨이 베르겐시, 미국 뉴욕 맨해튼, 프랑스 파리 등에서 교통혼잡 지역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대해 부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11월부터 서울 남산 1,3호 터널을 통과하는 차량에 대해 혼잡통행료를 부과하고 있다.

◆교통유발 부담금 = 교통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원인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교통유발 요인이 많은 시설에 대해 그 정도에 따라 건축물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부담금.

도시교통정비촉진법에 따라 1990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서울특별시 등 대상 지역의 법정 시설에 대해 매년 1회씩 부과한다.

◆행정 편의주의 = 정부가 제도나 규정을 바꾸고 서비스를 강화하면 많은 국민들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이나 공무원의 입장에서 편리한 쪽으로만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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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5월15일자 A12면>

이르면 오는 10월 말부터 서울에 있는 연면적 3만㎡ 이상의 대형 건물에 진입하는 차량은 주차비와 별도로 혼잡통행료 4000원을 내야 한다.

서울시는 교통혼잡특별관리시설물 진입 차량에 혼잡통행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서울시 혼잡통행료 징수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이르면 오는 10월 말부터 본격 적용한다고 14일 밝혔다.

교통혼잡특별관리시설물은 총면적 3만㎡ 이상인 판매·업무·관람시설 중 주변 지역 교통혼잡을 유발하는 시설이나 건물 중에서 선정된다.

시는 지난해 5월부터 3만㎡ 이상의 판매·업무·관람시설 290곳을 대상으로 주변 교통여건 등을 분석해 최근 69곳을 '교통혼잡특별관리시설물'로 확정했다.

시는 이어 69곳의 '교통혼잡특별관리시설물' 중 코엑스와 롯데백화점·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 등 10개 내외 건물의 진출입 차량에 대해 혼잡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 이 같은 정책에 대해 차량 이용자들은 남산 1·3호 터널을 통과할 때 혼잡통행료 2000원을 내는 데다 또 4000원을 내는 것은 이중과세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형 건물 진입 차량에 대해서는 터널 징수와 달리 탑승자 수와 관계없이 부과할 방침이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재철 한국경제신문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