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중심 세계관 선언…중세 神중심 세계관에 중지부

[고전속 제시문 100선] (88) 르네 데카르트 '성찰'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데카르트가 '방법서설'과 '철학의 원리'에서 언급한 유명한 이 구절은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도래를 포고하는 철학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유의 주체로서의 '나'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신 중심적인 중세적 세계관에서 개인 중심적인 근대적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며,'사유'로 대표되는 합리적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중세적 신앙성과 결별하는 근대적 합리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찰'의 표준 판본인 1642년 라틴어 재판본의 원제가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여기에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상이성이 증명됨'이며 '제3성찰'에서 신의 존재를 논하고 있는 점,그리고 신의 존재가 물체는 현존하며 사유와 상이하다는 논증의 전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적인 신의 그림자가 아직까지도 데카르트의 머리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에 대한 새로운 신념 때문에 교황청과 갈등을 빚었던 갈릴레오의 사망 연도,'성찰'의 재판본 출판 연도,그리고 근대 자연과학을 완성한 뉴튼의 출생 연도가 모두 1642년이라는 것 역시 중세와 근대에 한 쪽 발을 각각 걸치고 있으면서 중세와 근대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노정하고 있는 데카르트의 위치를 말해주는 듯하다.

데카르트의 탁월함이 빛나는 곳,그리고 인류가 데카르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런 중세와 근대의 긴장에 대처한 그의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중세적 권위를 지키려 애쓰던 신학자와 철학자들을 달랠 수 있었다.

동시에 인간 영혼과 신체(혹은 물체)의 상이함,즉 정신과 물체의 이원론을 주장해 물질세계를 불활성인 물질 덩어리들의 무정한 충돌만을 아는 생명없는 장소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데카르트는 신학자들이 더 이상 물질 세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만들었고,과학자들도 더 이상 철학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물질 세계의 연구에만 몰두하게 했다.

데카르트로 인해 근대과학의 탄생할 수 있었던 물리적 세계의 이론적 근거가 완성된 것이었다.

⊙ 원문읽기

유년기에 내가 얼마나 많이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간주했는지,또 이것 위에 세워진 것이 모두 얼마나 의심스러운 것인지,그래서 학문에 있어 확고하고 불변하는 것을 세우려 한다면 일생에 한 번은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전복시켜 최초의 토대에서부터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몇 해 전에 깨달은 바가 있다.

(중략) 내가 지금까지 아주 참된 것으로 간주해 온 것은 모두 감각으로부터 혹은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는 것을 이제 경험하고 있으며,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중략) 그래서 나는 이제 진리의 원천인 전능한 신이 아니라,유능하고 교활한 악령이 온 힘을 다해 나를 속이려 하고 있다고 가정하겠다.

또 하늘 공기 땅 빛깔 소리 및 모든 외적인 것은 섣불리 믿어 버리는 내 마음을 농락하기 위해 악마가 사용하는 꿈의 환상일 뿐이라고 가정하겠다.

나는 또 손 눈 살 피,어떠한 감관도 없으며,단지 이런 것을 갖고 있다고 잘못 믿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겠다.

나는 집요하게 이런 성찰을 견지하겠다.

이렇게 하면 비록 어떤 참된 것을 인식할 수는 없을지라도 거짓된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또 저 기만자가 아무리 유능하고 교활하더라도 내가 속임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해설

데카르트는 철학이란 지혜의 탐구이며,지혜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라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이런 완전한 인식은 제일원인 혹은 제일원리에서 연역적 방법으로 도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경험론이 인간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본 반면,수학적 연역법을 통해서만이 확실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는 합리론적 전통을 연 사람이 데카르트다.

인식의 연역을 위해서는 인식의 순서상 으뜸가는 명증적인 원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데,이런 탐구를 위해 데카르트가 제안한 방법이 확실하지 않은 모든 것은 의심해 본다는 '방법적 회의'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기 위해 교활한 악령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이른바 '악마의 가설'을 통해 확실하지 않은 모든 것을 소거해 버리려고 하고 있다.

⊙ 원문읽기

극히 유능한 악의에 찬 기만자가 온 힘을 다해 나를 속이고 있다고 가정하는 지금,앞에서 물체의 본성에 속한다고 말했던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내가 지금 갖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중략) 내가 영혼에 귀속시켰던 것 가운데 나에게 속하는 것은 없을까?

우선 영양을 섭취하거나 걷는다는 것은 어떨까?

나는 지금 어떠한 신체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이것들은 허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한다는 것은 어떨까?

이것도 물론 신체 없이는 일어날 수 없고,나는 또 꿈 속에서 많은 것을 감각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나중에 감각하지 않았음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가?

여기서 나는 발견한다.

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만이 나와 분리될 수 없다.

나는 있다,나는 현존한다,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얼마 동안?

내가 사유하는 동안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유하기를 멈추자마자 존재하는 것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필연적으로 참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정확히 말해 단지 하나의 사유하는 것,즉 정신,영혼,지성 혹은 이성이며,나는 참된 것이며,참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것일까?

나는 말했다,사유하는 것이라고.

해설

악마의 가설을 통해 모든 불확실한 것을 소거한 후 얻게 된 확실한 것이 바로 사유하는 정신의 현존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혹은 "내가 사유하기를 멈추자마자 존재하는 것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로 인해 "존재의 물리적 원인이 사유",즉 "생각을 해야지만 존재할 수 있다" 혹은 더 나아가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사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직관적으로'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ergo)는 '추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런 '직관'의 과정을 의미할 뿐이다.

"내가 사유하기를 멈추자마자 존재하는 것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 역시 사유하지 않을 때에는,존재를 확증할 어떤 수단도 가질 수 없기에 존재여부조차 알 수 없다는 얘기일 뿐이다.

⊙ 원문읽기

이런 것을 고찰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정신과 신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즉 물체는 본성상 언제나 가분적인데 비해,정신은 전적으로 불가분적이다.

실제로 내가 정신을,즉 오직 사유하는 것인 한에서의 나 자신을 살펴보면,나는 이때 그 어떤 부분도 구별해 낼 수 없으며,오히려 나를 완전히 하나이자 통합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정신 전체가 신체 전체와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발이나 팔,그 밖에 다른 신체 부분을 잘라 냈다고 해서 정신으로부터 어떤 것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의지 능력,감각 능력,이해 능력 등이 정신의 부분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하나의 동일한 정신이 의지하고,감각하고,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없고 따라서 가분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없는 그 어떤 물질적인,즉 연장적인 사물을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정신은 신체와 완전히 다른 것임이 충분히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해설

'연장'이란 어떤 존재가 공간(혹은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개념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사유하는 정신의 확실성에 도달한 후,내 정신 안에 있는 신의 관념이 무한하게 완전한 존재자,즉 신에게서 왔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인과론적 신 존재 증명'과 신의 본성 혹은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신의 현존을 증명하는 '존재론적 신 증명'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 후 신이 완전한 존재자인 이상 성실하며 인간을 속이는 일이 없으므로,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하게 우리가 인식한 그대로 물체가 존재한다고 결론짓는다.

다음으로 데카르트는 정신은 사고만으로,즉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신체는 단지 연장을 지니는 한,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는데,그 후 정신과 신체의 차이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현대인이 이해하는 데에 별 어려움을 주지 않는 이 대목은 정신과 물질,영혼과 물체가 별개의 실체로 여겨지지 않았던 중세인 혹은 르네상스인들에게는 당혹스런 구절일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런 생각이 근대과학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고,우리의 현재 상식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그 때문에 데카르트가 아직도 읽히고 있으며,그 때문에라도 우리는 아직도 데카르트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김훈회 S논술 선임연구원 toatopia@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