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성 교육' 지름길…대학 학비 줄이는 이점도

[기획] AP·CE제도 우리도 적극 활용하자
지난 4월16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 자율화 정책을 발표한 데 이어 여러 시·도 교육청에서 후속조치를 발표하자,사회 각계 각층에서 그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나섰다.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은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펼치며,"학교 자율화는 99%의 아이를 방치하고 포기하는 일"이라며 정부의 교육정책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고등학생 아들 딸을 둔 한모씨(42·여)는 "어차피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차라리 학교에서 외부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하게 되면 가계 부담이 좀 줄어들지 않겠느냐"며 새 정책에 기대를 나타냈다.

⊙ 수준별 이동수업은 우열반과 다르다

정부가 내놓은 학교 자율화 정책 중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바로 '수준별 이동수업의 확대'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기존 일체식 수업과 개별화 학습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학업 성취도와 학생의 희망에 따라 수준별로 반 편성을 해 동일한 내용을 각 반의 수준에 적합한 학습 자료를 사용하여 수업을 하는 것.동일한 교과서와 동일한 교육 내용이지만 수준을 달리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쉽게 말해 수준별 이동수업은 과목에 따라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춰 우수한 학생은 우수한 대로,열등한 학생은 열등한 대로의 교육을 제공받는 것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의 이러한 측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열반이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구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현기군(18)은 "성적에 따라 반을 편성하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

또 수준별 이동수업이나 우열반을 나누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말했다.

학생의 수준에 맞춰 과목별로 수업을 들을 경우 결국은 우열반을 나누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수준별 이동수업은 우열반을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

우열반을 나눌 때는 학생의 과목별 수준차가 아닌 총점에 의한,그러니까 전체 석차를 기준으로 반을 편성하는 것이다.

일명 서울대반 연·고대반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수준별 이동수업은 과목별 수준차에 따라 과목별로 반을 편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 성적이 좋은 학생은 수학 성적에 관계 없이 영어 과목만큼은 수준이 높은 우수반에서 수업을 듣는다.

수준별 이동수업이 심화될 경우 수업의 수준과 진도는 학생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은 매우 제한적인 조기졸업이나 월반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으며,학생의 성취도에 따라 상급학교의 수업들을 미리 들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린다.

결국 초·중등학교의 학년제가 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 AP·CE제도와 맥이 통한다

[기획] AP·CE제도 우리도 적극 활용하자
요즘의 수준별 이동수업은 선진국의 '수월성 교육'과도 일정 부분 그 맥이 닿아 있다.

'수월성 교육'이란 평준화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보통 학생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의 능력을 계발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교육이다.

이미 미국 핀란드 독일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수월성 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기자는 미국의 학교와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월성 교육의 일부로 AP(Advanced Placement Program·대학과목 선이수제) 제도와 CE(Concurrent Enrollment·동시 이수) 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AP 코스가 미국 내 대부분 고등학교마다 개설되어 있어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미리 대학 과목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AP과목 수업에 참여할 경우 해당 학생들은 고등학교 학점은 물론 대학 학점까지도 취득할 수 있다.

물론 수업을 듣기만 해서는 대학 학점을 취득할 수 없다.

매년 5월에 실시되는 AP시험에 합격해야 고등학교 학점과 더불어 대학 학점까지도 취득할 수 있는 것.AP시험을 주관하는 칼리지 보드(College Board)에서는 "단지 AP과목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그 학생이 대학 수준의 수업을 성취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AP시험에 합격해야만 비로소 그 학생이 대학 수준의 수업을 이수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말한다.

AP과목 수강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고교시절 대학 학점까지도 취득할 수 있어 학생들이 시간은 물론 등록금도 절약할 수 있다.

미시간 주립대학을 졸업한 니키양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다수의 AP과목을 수강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내가 1년 동안 들어야 할 수업들의 학점을 미리 취득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대학을 1년 빨리 졸업했고,3만달러의 등록금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AP과목 수강생, 대학 성적도 좋아

또한 AP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높은 학업 성취도를 나타낸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2개 이상의 AP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의 61%가 대학에서 조기졸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AP과목을 전혀 수강하지 않은 학생들의 조기졸업 확률 29%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하버드대 입학처장 윌리엄 피츠사이먼스는 "하버드 대학의 가장 기본적인 성공요소 중 하나는 AP과목 이수 여부"라고 말한 바 있다.

AP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은 '나는 준비된 학생'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각 대학들에 보내게 된다.

각 대학들은 AP과목 이수 여부를 고려해 해당 학생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AP제도와 UP제도를 도입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기존에는 외국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만 AP시험 준비를 했으나,고려대나 연세대와 같은 명문대학들이 글로벌 인재 전형,국제학부 전형을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AP시험 성적을 요구하자 최근 들어 AP시험 준비 열기가 도를 넘고 있다.

학교 교육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음은 물론 AP시험 대비를 위한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AP과목을 정식 수업 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민족사관고를 포함해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AP시험에 대비하려는 학생들은 비싼 돈을 주고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AP시험 준비의 열기가 도를 넘자 연세대는 2010학년도부터, 고려대는 2011학년도부터 AP 성적을 대입전형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AP 제도를 본뜬 UP(University-level Program) 제도 역시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UP 제도는 우수 고교생들에게 대학 수준의 이공계 과목(수학 물리 화학 생물)을 가르친 뒤 그 결과를 대학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인데,대입전형에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어 학생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지난해 지원서를 받은 16개 대학 중 4개 대학은 지원자 미달로 인해 강좌를 폐강하는 등 표류하고 있다.

미국은 AP 제도와 더불어 CE 제도 또한 실시하고 있다.

CE 제도는 AP와 마찬가지로 대학 수준의 과목을 미리 수강하는 제도인데 11학년,12학년 학생들만 CE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또한 AP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5월에 AP시험에 합격해야만 대학 학점을 취득할 수 있으나,CE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별도의 시험에 응시할 필요 없이 학교에서 수강만 하면 대학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다만 CE과목 이수 여부를 인정해주는 대학들의 수가 AP과목 이수 여부를 인정해주는 대학들의 수보다 적다는 게 CE 제도의 단점이다.

미국 코퍼힐스 고교에 재학 중인 제니양(17)은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서는 동시 이수(CE)과목을 인정해주고 있다.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이 CE 과목을 인정해주고 있는지 여부를 잘 살펴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수준별 이동수업의 확대를 '결국은 우열반을 나누는 것'이라고 무작정 비판할 것이 아니라 각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수월성 교육의 실태를 잘 파악하고 이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등학교 교육은 보다 다양화된 교육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수업을 하기 위해 학생은 물론 교육계와 정부가 다함께 노력할 때다.

정민선 생글기자(미국 코퍼힐스고 2년) haraceoliv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