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사정부가 사이클론 나르기스(Nargis) 복구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3일 최악의 사이클론 재해로 최소 10만명이 사망하고 150만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떠돌게 됐지만 빠른 복구보다는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만 눈이 멀어있다는 비판이다.

국제사회가 내민 지원의 손길을 내쳤을 뿐 아니라 영구집권을 위한 국민투표까지 강행했다.

[Focus] 사이클론 할퀴고 간 미얀마…군부는 왜 빗장 거나


⊙ 군정 '외국 구호요원 오지 말라'

미얀마 군사정부는 지난 3일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자국을 강타한 직후 외무부를 통해 "외부의 지원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가 태도가 돌변했다.

외국의 구호요원은 제외하고 이재민 구호와 피해 복구를 위한 현금과 물품만 보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한마디로 돈은 받겠지만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다.

군정은 지난 8일 구호물품과 함께 항공편으로 미얀마에 입국한 카타르의 구조팀과 언론사 기자들을 도착 즉시 추방했다.

기독교 구호단체인 '월드 비전'은 20명의 비자 발급 신청자 가운데 2명, 유엔 세계식량계획(WFP)도 16명 가운데 1명만이 입국 승인을 받았다.

미얀마 외무부는 최근 국영신문에 낸 성명을 통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비상구호품을 받아 지체없이 재난지역 주민들에게 이송해주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그러나 외국의 수색·구조팀과 언론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으며 물품이나 현금만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구호과정에서도 미얀마 군사정부는 많은 의혹을 낳고 있다.

해외에서 지원해준 고품질 구호식품은 군용 창고로 빼돌리고 이재민들에게는 '썩은 쌀'을 배급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미얀마 옛 수도인 양곤에서 장기체류하고 있는 한 외국인의 입을 빌려 "유엔 WFP의 첫 원조물자 가운데 상당수의 고(高)에너지 비스킷이 군용 창고로 빼돌려졌다는 얘기가 정부 관리로부터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미얀마 군정은 해외에서 지원되는 에너지 비스킷 대신 국내에서 생산한 '저(低)에너지 비스킷'을 이재민들에게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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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인력 유입으로 군정 무너질까 두려워

이 같은 미얀마 군정의 모순적 태도는 국내외 비난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얀마 군정 지도부가 외부 인력의 유입으로 체제붕괴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 매쿼리대학의 숀 터넬 교수는 "군정 지도부는 외국인 혐오증이 심해 (체제붕괴를 초래할)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청해왔던 군정이 해외 구호인력의 유입으로 혼란이 발생할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터넬 교수는 "군정은 서구인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재해 현장에 나타날 경우 지도층의 나약함을 국민 앞에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미얀마 군사정부는 이재민의 목숨보다는 국민에 대한 통제력과 절대권력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뉴저지 주립대의 조세프 실버스타인 미얀마 전문가는 "군정은 구호인력조차 자국민에게 무기를 건네주거나 체제 전복 전략을 전수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이 때문에 외부 인력의 구호활동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국제사회 '빗장 풀라' 한목소리

유엔은 해외 구호요원들의 입국을 거부하는 것은 인도주의 활동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엔 WFP의 폴 리슬리 대변인은 그동안 10건의 입국비자를 신청했지만 한 건도 승인되지 않았다며 "겉으로는 서류작업 지연으로 보이지만 이는 구호활동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노일린 헤이저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 사무총장은 "엄청난 규모의 사망자 수가 질병 확산으로 다시 수배로 불어날 수 있다"며 "이를 막는 데는 단지 자그마한 기회의 창이 열려 있을 뿐"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88세대 학생운동' '전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승려동맹' '버마전국학생연합' 등 미얀마의 민주단체들은 국제사회가 군정의 입국 승인을 기다릴 필요없이 즉각 긴급 구호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의 구호와 지원에 모든 국경을 개방하고 구호 요원들에 대해서는 비자 발급을 면제할 것을 미얀마 군정에 촉구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14일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작업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긴급 유엔 정상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민생은 뒷전…군정 국민투표 강행

이런 가운데 미얀마 군정은 지난 10일 예정대로 신헌법 찬반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이라와디 삼각주 7곳, 옛 수도인 양곤 40곳 등 나르기스로 피해를 당한 47개 마을을 제외한 전국에서 국민투표가 이뤄졌다.

신헌법은 2010년 총선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지만 상·하 양원 의석의 25%는 군부에 할당하도록 명시, 사실상 군정체제를 굳히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헌법 초안에 따르면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끄는 수치 여사는 영국인과 결혼하고 두 아들이 영국 국적이기 때문에 대선과 총선 출마 자격이 모두 박탈된다.

미얀마는 1988년 군사정권이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제압한 후 1974년에 제정된 헌법의 발효를 중지시켜 현재 헌법이 없는 상태다.

군정은 투표 직전까지 국영신문과 TV 등 대중매체를 동원해 유권자들에게 '찬성'표를 던질 것을 독려했다.

또 모든 공무원에게 휴가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에 동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군정의 투개표 조작도 미얀마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사안이다.

미얀마의 옛 수도인 양곤에는 이미 신헌법 국민투표 찬성률이 84.6%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군정이 국제사회의 비난에 귀를 막고 있는 사이 미얀마 국민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인터넷판은 사이클론 피해자들을 신속히 돕지 않으면 질병 등으로 '2차 재앙'이 발생해 어린이 한 세대가 사라지는 비극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팸은 호수 등 식수원이 사체로 오염되고 뎅기열과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 등이 극성을 부려 최악의 경우 150만명의 이재민 모두 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